책읽당

title_Reading
임운 2011-12-05 22:55:04
+6 2974
지난 시간에 나누어보려고 했다가 시간을 지나치게 잡아먹는 것 같아 접었던 논의를 뒤늦게 글로 풀어 써 보려고 함미다.

1.

지난 시간에 제가 아래 문단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했었는데요.

"모든 성 정체성은 선택되는 것이며, 이같은 유동성은 어느 방향으로든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모든 사람은 전면적인 성적 자기 표현을 저해하는 억제 요인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당신은 왜 동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당신은 언제 경직된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선택(Choice)이라는 단어가 과연 저기에서 적합한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 심리학회(APA)에는 동성애 관련 FAQ 코너가 있는데, 십 수개의 질문 중 하나가 "동성애는 선택(Choice)입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APA의 답은 "아닙니다(No)" 였구요. 현재 APA는 공식 입장을 약간 수정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하여 전혀, 또는 거의 선택(choice)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데, "No"라는 단정적인 문장을 조금 더 엄밀하게 가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성 정체성 / 지향은 선택되는 것"이라는 문장은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며, 따라서 그 의지에 따라 이성애자 / 동성애자 / 무성애자 / 비성애자 등 다양한 지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적 정체성 / 지향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저 문장을 본다면 십상 그런 의미로 해석할 거에요. 저는 이 자료가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자료가 아니라 교사를 위한 지침이라는 점에서 이런 곡해 가능한 - 어쩌면 곡해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 문장이 왜 쓰여졌는지, 저게 꼭 필요한 문장이었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2.

이런 의아함은 뒤따르는 문장 때문에 오히려 더 커졌는데요.

‘당신은 왜 동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당신은 언제 경직된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저는 이 뒤에 나올 만한 자연스런 결론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은 이성애자가 되기로 '결정'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성애자들이 이성애자가 되기를 의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것처럼, 성적 지향은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모든 성적 지향은 '선택'된다"는 문장과 정 반대죠.

이하는 사족인데요, 사실 이성애중심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이성애는 '자연스러운 상태'고, 동성애자들은 굳이 자연스러운 상태를 버리고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저런 질문이 얼마나 유효할지도 회의적입니다.

3.

궁극적으로, 저는 여전히 "모든 성적 지향은 선택된다"는 문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1) "모든 성적 지향은 유동적이며, 다양한 '변곡점'을 갖는다". 여기에서의 변곡점을 선택이라고 표현. 이건 무난한 해석이긴 한데 선택이란 단어가 너무 쌩뚱맞고...
2) "우리는 어떤 성적 지향을 외부적으로 '표현할지'를 선택한다". 즉, 한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처럼 행동할지 동성애자처럼 행동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경우, 이는 APA의 공식 입장처럼 보다 정확히 쓰여져야 했겠죠. "우리는 어떤 성적 지향을 외부적으로 표현할지를 선택할 수는 있으나, 성적 지향 그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
3) "모든 성 정체성은 (신에 의해) 선택된다." ... 죄송합니다... 라고 쓰고 보니 어쩌면 정말 이게 맞을지도!?...

박재경 2011-12-06 오전 02:19

운이는 섬세하게 의미를 찾아가는 지적인 스타일 이구나 ㅎㅎ
나는 대충 읽었는데 ㅋㅋㅋ

일단은 네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해
sexuality와 관련된 학문들이 우리 일상과 배움의 과정에서 널리 사용되어지지 않다보니
우리 스스로도 때로는 그 의미가 헛갈릴 때도 있는 것 같아

우리가 보았던 자료와 미국 심리학회 의견에서 선택은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추가적인 의미는 데미지 언니가 원문 번역자므로 설명해주면 좋을 텐데
언니가 학위논문 때문에 바쁘니 송년회 때 와서 운이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미카 2011-12-06 오전 08:01

저자도 2번의 의미를 내포하고 말을썼으나- 뭐 중간에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기위한 내용이 생략되버려서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슴묘. 난 읽으면서 그 사이에 좀 추가설명이 들어갔으면 하는 부분이었음묘. 갑자기 너무 이야기가 진전되는것같아... 정숙조신님 말대로 문맥상 선택이라는 단어보다는 결정이라는 단어가 더 맞았을지도 모르겠슴묘.
요즘 논문을 쓰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인쇄된 매체라고해서 맹신할 것은 못된다는 것임묘. 단어 선택에 신중해야하지만 저자입장에서는 책의 용어를 하나하나 제대로 쓰였는지 판단하기가 보기보다 참...힘들다는점. 결국 개떡같이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중요함

존슨 2011-12-09 오후 18:38

나는 어째서 오타쿠가 되길 선택한것인가...아아~아무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마르스 2011-12-10 오전 03:09

ㅋㅋ 오랜만임닷! ^^
(위에 쓰신 내용대로라면!) 임운님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감함...
다만 원문과 번역문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죄송! 아래 있나요? 있으면 찾아볼께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미카님의 '개떡같이찰떡같이' 이론은....
연애하는 사이에서는 좋은 이론입니다만...
학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될수록 멀리해야 할 이론이죠...
누구에게나 쉽고 명확하게, 될 수 있으면 같은 개념으로 인지시키는 것이 학문의 언어라고 생각하는지라...^^
(오랜만에 까칠한 마르스.....ㅋㅋㅋ!)

'모든 성 정체성은 선택되는 것이며'....
(choice라는 단어가 바로! 자주! 등장하는 걸로 보아 원문이 choice인 게죠?
주어가 뭔지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람 혹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대자, 혹은 신이) 선택하는 걸 수도 있다는...
왜 영어에는 그런 표현 많잖아요... 피동, 수동이 서로 교체수비하는....ㅋ (데미지님이 잘 아시겠군요!)
후자라면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선택되어졌다는 뜻도 되겠길래....)

흠.....
ㅜㅜ... 머리 아프게 고민할 일이 있어서
괜히 여기서 신경질부려보는겁니다...우웅.....ㅋ

정숙조신 2011-12-10 오전 05:45

마르스/ 밑에 미카님이 올리신 '11월 자료' 글에 있습니다. 2장의 질문 5번입니다.

2011-12-14 오전 05:46

저는 왠지 불편한 느낌을 받지 않고 '선택'이라는 말을 넘어갔었어여;..
여기서는 선택이라는거는 결정보다는 약한 의미로 쓰인것 같아요.

확정이라는 결정보다는
성정체성을 고민한 후, 선택한다는것 아닐까여.

또 위의 '이같은 유동성은 어느 방향으로든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모든 사람은 전면적인 성적 자기 표현을 저해하는 억제 요인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이런 말을 하기위해 '선택'이라는 단어를 쓴것 같아여.

이성애자 또한 선택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것 같아요.
이성애와 동성애를 평등한위치에 두는 느낌인것 같아여.



동성애자라해서 처음부터 선을 그어 거리를 두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선택하는것이다.
라고해서,
고민을 통해서 자신을 동성애자라 느낀다면, 초이스해라.
결정은 그 후에 또 고민해서 해라. 라는 것같아요.
'당신이 꼭 무조건 이성애자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 라는 음.....

의식적인 선택이라기 보다는,
고민을 통한 선택.. 인것 같아요.

이제와서 보니 저걸 선택이라 표현해야 하나 싶고 그렇네여..ㅋㅋ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
책읽당 가입 안내 +2
275 7월 1일, 8일, 22일 책읽당 - 독서모임 <2017 책읽당 - 글쓰기 강좌> * 신청 마감 책읽당 2017-06-21 231
274 5월 27일 / 6월 17일 책읽당 - 독서모임 '책읽당&퀴쓰 연대 세미나', 선정도서 : 푸른 알약 책읽당 2017-05-18 416
273 5월 20일 책읽당 - 독서모임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 책읽당 2017-05-12 381
272 5월 06일 책읽당 - 독서모임 <소년이 온다> 책읽당 2017-04-27 337
271 4월 22일 책읽당 - 독서모임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 책읽당 2017-04-12 304
270 책읽당 2017년 2분기, 4월 - 6월 책읽당 모임 안내 책읽당 2017-04-06 287
269 4월 08일 책읽당 - 독서모임 <거짓말이다> 책읽당 2017-03-31 229
268 3월 25일 책읽당 –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책읽당 <문학기행 2017 서촌> 책읽당 2017-03-17 272
267 3월 4일, 11일 책읽당 – 봄에 열리는 샘이 나는 세미나 시즌4 <헌법강좌> 책읽당 2017-02-23 247
266 2월 18일 책읽당 – 독서모임 <이것이 인간인가> 책읽당 2017-02-08 246
265 2월 04일 책읽당 – 작가초청 독서모임 <코끼리 가면> 책읽당 2017-02-03 237
264 [2017년 봄, 책읽당 - 2017 책읽당 첫 번째 이야기] 책읽당 2017-01-18 217
263 1월 21일 책읽당 - 독서모임 <만약은 없다> 책읽당 2017-01-12 255
262 1월 7일 책읽당 - 독서모임 <성찰하는 진보> 책읽당 2016-12-21 345
261 ★ 책읽당 향후 일정 공지 ★ 책읽당 2016-12-19 253
260 《 2016 책읽당 4회 낭독회 & 문집발간회 》 책읽당 2016-10-22 255
259 9월 24일 책읽당 - 성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 +3 책읽당 2016-09-03 548
258 8월 27일 책읽당 - 문집회의 +1 책읽당 2016-07-31 356
257 8월 13일 책읽당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책읽당 2016-07-31 351
256 7월 30일 책읽당 - 악어프로젝트 책읽당 2016-07-18 262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