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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씨의 커밍아웃 발언을 비판한다' 를 발표하며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이하 끼리끼리)는 지난 4월 17일, 7일자 한겨레 <왜냐면> 지면에 실린 서동진 씨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오류에 대한 지적을 담은 글을 동 지면에 투고한 바 있다. 그런데 서동진 씨 글이 게재된 이후 그것과 관련하여 병무청 선병국 병역정책과 사무관 박희수 씨의 '누가 양심적이란 말인가' 라는 제목의 글과 병역거부자모임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용석 씨의 '백만 명의 사람에겐 백만 개의 양심이 있다' 는 글이 연달아 실리는 동안에도 끼리끼리의 글은 <왜냐면> 지면에 게재되지 못하였다.

끼리끼리는 투고 글의 이후 게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의 통화 시도 끝에 간신히 지면 담당 기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하루 뒤에 기자의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답변의 내용은 같은 글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이미 게재된 상황에서 더 이상 해당 글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을 싣기에는 지면 사정이 허락하지 않기에 끼리끼리의 글은 게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끼리끼리에서 의아해 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성애 혐오적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은 병무청 직원의 글은 게재하면서 서동진 씨의 글에 녹아있는 커밍아웃에 관한 위험한 시선에 대해 지적한 끼리끼리의 글은 게재하지 않는 한겨레 측의 태도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내고자 하는 것이 지면의 지향이라면 동성애 혐오증적인 병무청 직원의 글을 먼저 실을 게 아니라 (아니면 그 글을 싣더라도) 끼리끼리의 입장을 지면에 담는 게 한겨레 측의 보다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끼리끼리는 서동진 씨 글에 대한 반론으로 <왜냐면> 에 투고했던 글을 그대로 발표한다. 이는 성적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데 서슴지 않는 서동진 씨에게 성적소수자의 '커밍아웃' 에 대해 좀 더 숙고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위함이다. 아래는 투고 글 전문이다.

2004년 5월 2일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서동진씨의 커밍아웃 발언을 비판한다
이민정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회원)

7일자 한겨레 ‘왜냐면’ 지면에 실린 서동진씨의 ‘양심적 병역거부 동성애자 임태훈을 석방하라’ 제하의 글에서 몇 가지 심각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서동진씨는 커밍아웃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라면 비겁하고 또한 옹졸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라는 것이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며,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가 “비겁하고 옹졸한” 것이라고 폄하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적어도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에서 커밍아웃 자체를 반대하는 이는 없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신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은 모든 동성애자들의 바람이자, 서동진씨가 이야기한 대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차이를 일깨우고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으로서 사회적인 의의를 갖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들은 극소수인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곧 개인적, 사회적 ‘매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들은 커밍아웃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을 상담하고 지지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커밍아웃 이후에 겪게 될 상황들에 대해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결코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권운동단체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다.

최근 한국여성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는 타인에 의해 성적소수자의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아웃팅’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아웃팅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웃팅’은 동성애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가장 지독한 인권침해의 한 유형이며,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이 이러한 문제를 활동이슈로 받아 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서동진씨의 글은 마치 (일부)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과 활동가들이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에 반대”하고, “비겁하고 옹졸”하게도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 폄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커밍아웃’은 서동진씨와 같이 대사회적으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고 동성애자 정체성을 통해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밍아웃은 자기 스스로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식시키는 단계부터 시작해서, 친구, 동료, 동성애자 커뮤니티, 가족, 직장 등 범주를 넓혀가는 것이며, 이러한 범주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커밍아웃도 의미 있는 일이며, 존중 받아야 한다.

두 번째,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열악한 여건 속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운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동성애자’ 이름을 걸고 문화평론을 하거나, ‘동성애자’ 이름을 걸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더 많은, 더 중요한 활동들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대사회적인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비겁하고 옹졸”하게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 만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 번째,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서동진씨는 “나는 이미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얼마나 대단한 실존적인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고 했지만, 이 말은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수많은 동성애자들, 혹은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이 서동진씨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서동진씨가 과연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인권활동가를 비롯해 기존에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소외 당하고, 사회적인 활동영역을 아주 잃어버린 이도 있다. 오히려 지난 날 언론을 통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인권활동가들 중에는 후배들에게 “성급하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며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커밍아웃한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자신의 위치와는 아주 다른 위치에 있는 수많은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쉽게 말해선 안 된다.

네 번째,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할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은 한편으로 커밍아웃을 한 활동가가 전체 운동진영에서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서동진씨가 지지의 입장을 밝힌 임태훈씨는 커밍아웃한 인권운동가로서의 독단적인 행보와 개인의 도덕성 문제, 타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에 대한 터무니없는 비난 등의 사유로 동성애자 63명이 성명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에 그 행실을 고발하고, ‘탄핵’을 요구했던 바 있는 인물이다. 서동진씨가 진정으로 동성애자 인권향상을 원한다면, 왜 동성애자 인권운동진영이 임태훈씨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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