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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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친구사이 구성원 인터뷰입니다. (기획의도 등은 https://chingusai.net/xe/index.php?mid=newsletter&page=2&document_srl=620205 참고) 인터뷰 대상은 친구사이(소모임, 사업팀 등 모두 포함)에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퀴어 당사자 모두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께서는 언제든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 인터뷰 신청 링크: https://forms.gle/h2BsEmMNBsoQko2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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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해보는 친구 인터뷰 #4
: 윤하(지보이스)
1. 들어가며: 친구사이 입문 스토리 |
‘요새 친구사이 새로 와서 잘 노는 애들은 다 윤하 친구들이야.’ |
1. 들어가며: 친구사이 입문 스토리
플로우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하 네 감사합니다.
플로우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 주시고, 오늘 어떤 기분으로 인터뷰에 오셨는지를 얘기를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윤하 저는 서울 사는 30살 윤하라고 합니다. 주쉬직(주말 쉬는 직장인)이고요. 오늘 인터뷰하는 기분은, 우선 (플로우님이) 먼저 제안을 주셔서 영광이었고, 어떤 이야기들을 재밌게 할 수 있을까라는 좀 궁금한 기분으로 왔습니다.
플로우 어떤 얘기를 할 것 같다고 예상을 하고 오셨나요?
윤하 뭐, 친구사이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랑, 이쪽(게이)으로 살게 된 얘기, 커밍아웃하고 그 이후 단계들에 대해 얘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플로우 잘 알고 계시네요(웃음). 그럼 바로 가볼까요? 친구사이는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어떤 이유로 나오게 되셨나요?
윤하 친구사이는 올해 나왔어요. 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그때 (관련 정보를) 좀 찾아보면서 친구사이라는 단체의 이름은 그때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보이스는 비교적 최근에 알았는데, 2020년 코로나 터질 때 방에서 이것저것 보다가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어요.
플로우 ‘위켄즈’ 보신 건가요?
윤하 아뇨. ‘빛은 무지개’ 보고 알았어요. 이쪽 생활을 하면서 단톡방도 들어가고 어플로 친구도 사귀는데, 그것보다 좀 더 지속성 있고 내가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데가 어딜까 고민했어요. 마침 전 같이 노래하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지보이스를 들어왔습니다.
플로우 원래 노래를 좀 하셨나요?
윤하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합창을 했었고, 대학교에서도 음악 동아리도 했고요.
플로우 이쪽 생활 시작하면서 단톡방도 들어가고 어플도 하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모임이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윤하 거기서 만난 관계가 피상적이라고 일반화해서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요. 다만 모임의 방장이 계속 모임을 운영하는 걸 버거워한다던가, 아니면 그 안에 무슨 드라마가 있었다던가, 이런 이유로 모임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았죠.
플로우 드라마라고 하면 주로 치정극...?
윤하 그렇죠. 누구랑 누가 사귀다 헤어지는 게 제일 흔한 드라마죠. 아니면 어느 날 누가 무슨 말을 했는데 그게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 싸웠고, 그래서 방이 깨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운이 좋게 가장 마지막에 들어갔던 직장인 단톡방에서 친한 형들을 사귀었고, 또 동갑 단톡방에서도 좋은 친구를 만났어요. 그러면서 굳이 새로운 톡방을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앞으로 계속 우정을 쌓아갈 수 있는 친구들을 사귀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별로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거죠.
플로우 친구사이의 어떤 점을 보고 지속 가능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나요?
윤하 친구사이는 단톡방에서 사람들 만나는 거랑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기분도 다르고 마음가짐도 다른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게이 커뮤니티라는 곳이기 때문에 약간 사회생활을 하는 기분이기도 해요.
단톡방은, 만약에 그 방에 10명이 있다고 하면, 그 10명이 엄청 케미가 잘 맞고, 끼가 잘 맞아야 유지가 돼요. 근데 친구사이는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또 오고 싶을 때 오고 안 오고 싶을 때 안 오고 그런 곳이고 나도 여기 나와서 그냥 내가 더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들하고 얘기 나눈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친구사이는 콘텐츠도 다양하고, 일단 우리가 하는 일이나 행사들도 있는데 그런 것들도 좀 다양하다 보니까, 그냥 맨날 종로에서 술 마시고 이태원에 클럽 가고 하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요.
플로우 그렇죠. 다양한 소모임이 친구사이의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지금은 지보이스에서 활동하고 계시고요. 친구사이에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나요?
윤하 일단 지보이스는 계속 할 계획이에요. 다른 활동들은 내년에도 친구사이의 운영에 대해 배워가면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나 도울 수 있는 일들에 참여하려고 해요.
2. 지보이스, 뚝딱였지만 즐거웠던 첫 공연
플로우 이번 지보이스 정기공연에 처음으로 참여를 하셨어요. 이 얘기를 좀 더 해볼까 하는데요. 우선 준비하면서는 어떠셨어요?
윤하 사실 사회인 공연 준비하면서 이렇게 곡을 많이 한 건 처음이었어요. 다른 데서는 뭐, 한두 곡씩 그냥 축가를 하는 경우만 있었죠. 여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연습하니까, 이 단체의 연습에만 의존할 수 없었고 개인 연습도 많이 했어요. ‘준비할 게 생각보다 많구나’라는 생각들이 들었죠.
저는 평단원이었고, 홍보팀 맡은 게 전부여서 그렇게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사실 우리 단장이 일을 많이 해서 제가 할 게 많이 없었거든요. '여기서 중책을 맡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지금 일주일 중에 이 공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실까' 싶어서 대단하면서도,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편 들었어요.
플로우 다른 퀴어 합창단 하시는 분이 이번 공연 보고 연출님한테 ‘너는 지보이스가 직업이냐’고 물어봤다던 얘기가 생각나네요. 공연 끝나고는 좀 어떠셨어요?
윤하 공연 끝난 지 지금 한 3주 정도 됐네요. 공연 당시에는 그냥 몸에 배어 있는 대로 했어요. 무대가 긴장되거나 힘들지는 않았어요. 끝나고 나서 실감한 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왔었다는 거랑, 내가 그 무대에 서서 같이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느 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있고, 우리가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를 노래라는 형태로, 공연이라는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죠. 공연 전에도 (이런 의미를) 생각 안한 건 아닌데, 하고 나서 보니까 그 의미가 생각보다 컸어요.
지보이스 공연을 위해 단원들은 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공연 당일에는 이를 반복하는 데 집중한다. 오로지 관객들이 이들의 퍼포먼스를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의미를 해석한다. 공연자였던 윤하는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그 의미를 되짚고 있다. 개인적인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
윤하 저희 앵콜곡(Raise you up, Up)에서 다 하이힐 신고 공연했잖아요. 저는 크롭탑도 입었고요. 힐을 그렇게 제대로 신어본 건 처음이었어요. 5cm, 6cm 정도 되는 기본 힐이었는데, 신고 다니니까 생각보다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 맛은 또 뭐지? 시선이 좀 높아지니까 약간 자신감도 높아지고, 자세도 좀 더 곧아지고. 그러고 나서 다다음 날 출근을 하는데, 저는 항상 정장 입고 출근하거든요. 정장 차려입고 전철 앞에 서서 스크린도어에 비친 모습을 보는데, 그 이질감이 너무 웃긴 거예요. 주말하고 너무 다른 내 모습이. 그동안 이쪽 생활을 하면서 제가 대단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처음으로 ‘아, 내가 이중생활을 하고 있구나. 언젠가 이중생활을 할 필요가 없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고 뭐 제가 힐 신고 출근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플로우 힐 신고 출근할 수 있으면 더 좋죠!
윤하 네 그렇긴 하죠. 근데 그것보단, 내가 하는 어떤 공연이든 회사 사람들도 마음껏 초대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플로우 지보이스 공연이 영상으로도 남아있잖아요. 지난 일요일(10.23.)에는 같이 상영회도 했고요. 관객 입장에서 자기 모습을 다시 보니까 어떠세요? 이런 건 잘했다, 이런 건 후회된다, 이런 포인트가 있을까요?
윤하 우선 ‘내가 진짜 뚝딱거렸구나’ 생각도 들고, 근데 뭐 어쩌겠어요. 제가 그런 무브를 갖고 태어난 걸. 안무를 크게 틀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굉장히 전 (스스로) 장하다고 생각해요. 또 사실, 연습할 때도 우리 모두가 노래하는 모습을 전체적으로 볼 기회가 잘 없잖아요.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게 좋았고, 멋있었어요. ‘저쪽 사람들은 저러고 있었구나, 공연 때는 실수했는지 몰랐는데 저런 실수를 했구나.’ 이런 생각하면서 봤죠.
플로우 그렇군요. 아까 뚝딱거렸다는 얘기 나와서 생각난건데, 같이 공연했던 단원이 ‘윤하가 식당이나 이런 데서 걸그룹 노래 나오면 춤 다 알고 그래서 춤을 잘 출 줄 알았는데, (영상으로 보니까) 생각보다 너무 뚝딱거리더라’라고 하더라고요.
윤하 (눈을 흘기며) 누구야 대체? 지금 녹음 중이라 못 말해요?
플로우 (웃음) 나중에 알려줄게요. 아무튼 무대에서 특별히 더 긴장을 했던 건가요?
윤하 아니 사실 식당에서도 그렇고, 저는 막 춤을 잘 아는 건 아니에요. 그냥 몸을 흔든 거지. 리듬을 탄 거지. 포인트 안무 정도는 알아요. 원래 케이팝을 많이 듣지도 않긴 해요.
플로우 이번 정기공연에 곡을 많이 준비했다고 했잖아요. 저도 보니까 거의 10곡이 넘었고, 곡 스타일도 각자 달랐어요. 발랄한 곡도 있고 진지한 곡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제일 좋아했던 곡은 어떤 곡이었나요?
윤하 사실 이번 공연에서는 진지한 곡들이 더 좋았어요. 노래할 때 좀 더 이입해서 부른다고 해야 할까요. 곡들이 매력이 각자 다 달라서 고르기가 좀 그런데... 노래로서 가장 좋았던 곡은 ‘Upon the wind there comes a song’이라는 노래였어요.
플로우 모든 가사가 다 영어였던 곡이죠?
윤하 맞아요. 합창곡으로서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가사가 좋았던 건... 저는 ‘세상아’(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가 일단 워낙 명곡이니까 좋았고, 발랄한 노래로는 ‘Up’도 좋았던 것 같아요. 막 삔 꽂고 달려가서 립스틱 던지고 끼 떨면서 싸우겠다는 내용이 좋았어요. 공연하는 당일에는 사실 ‘당부’가 생각보다 더 심금을 울렸어요.
플로우 맞아요. ‘당부’가 이번에 단식하신 활동가 두 분(종걸(친구사이 사무국장), 미류(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올해 2022년 4월 11일, 두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하였고, 이는 5월 26일까지 46일간 이어졌다-작성자 주)이 무대 나오셔서 말씀하신 다음에 나온 노래였잖아요.
2022 지보이스 정기공연 '그래도레미'에 참여한 윤하와 단원들
플로우 지금 지보이스에서 파트(성부)는 어디에요?
윤하 저는 바리톤이에요.
플로우 잘 맞는 것 같으세요?
윤하 네 저는 좋아요.
플로우 지보이스 들어갈 때 바리톤이 될 거라고 예상했나요?
윤하 아뇨. 저는 원래 테너를 할 줄 알았어요. 말할 때 목소리가 높아서요. 근데 바리톤이나 베이스에 의외로 노래할 땐 목소리가 안 높은 사람들이 좀 있어요. 아무튼 그래서 바리톤으로 배정을 해 주셨어요.
플로우 파트 배정은 누가 하는 거예요?
윤하 지휘자님하고 음악 감독님, 여러 파트장들이 모여서 상의하는 것 같아요. 주로 지휘자님이랑 음악감독님이 하는 것 같아요.
플로우 배정하기 전에 한사람씩 노래 불러보라고 시키기도 하고 그러겠네요?
윤하 네 그렇죠. 음악 하시는 분들은 소리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걸 고려해서 배치를 하세요. 그런데 또 지보이스 오래 한 사람들은 파트도 왔다 갔다 한다던데요.
플로우 앞으로도 지보이스 공연은 계속할 생각이신가요?
윤하 네. 계속 공연해야죠.
플로우 해보고 싶은 노래나 만들어보고 싶은 무대가 있어요?
윤하 아뇨. 전 그냥 시키는 거 잘 할래요(웃음). 이번에 ‘Temptation’(하리수 원곡. 지보이스에서 이번 ‘그래도래미’ 공연에서 간단한 안무를 곁들여 무대를 꾸몄음-작성자 주)같이, 군무가 멋있는 노래를 좀 더 해보고 싶긴 해요.
플로우 사실 지보이스를 아는 사람이 은근히 많잖아요. 저도 잘 몰랐는데 벽장에 숨어 있는 게이들이 알게 모르게 꽤 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지보이스 공연을 궁금해하거나, 나중에 직접 공연을 해 보고 싶어 하는 벽장 게이들에게, 지보이스 홍보도 할 겸 한마디 한다면요?
윤하 우선 이쪽 분들이 지보이스를 생각했을 때, 공연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으신 것 같아요. 물론 그게 가장 좋긴 하지만, 사실 연습 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서 노래하는 시간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면, 본인한테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같이 뒤풀이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요. 벽장 속 게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빨리 나오셔서 꼭 본인하고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전 그게 힘이 많이 되거든요.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한데, 이쪽(게이 커뮤니티) 나온다고 우리가 물지 않으니까(웃음), 해치지 않으니까 얼른 나오셔서 재밌게 놀아요!
3. 커밍아웃: 유리벽장이라도 문은 내 손으로 열어야
플로우 벽장을 나오는 용기 얘기를 해 주셔서, 윤하님의 커밍아웃 이야기로 넘어갈까 해요. 우선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자각한 순간이 있었나요?
윤하 구체적인 순간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변성기도 딱히 없었거든요. 이 목소리로 계속 살았어요.
플로우 아니 그래도 남자 목소리긴 한데. 어렸을 때부터 지금 목소리는 아니지 않았을까요?
윤하 그런가요? 사실 내 목소리가 어떤지 잘 모르긴 하니까요. 어쨌든 명확하게 ‘내가 목소리가 낮아졌구나’라는 걸 느끼지 않았어요. 또 어렸을 때부터 ‘여자 같다’라는 얘기도 많이 듣고요. 이름도 ‘윤하’라서 좀 여자애 이름 같고. 고등학교 때 어느 날부터인가, 주변에 친구였던 남자애들한테 마음이 다르게 가는 것 같고, 뭔가 아무튼 이상한 거예요. 근데 그때 진짜 교회 열심히 다닐 때였거든요. 학교에서도 기도 모임이 있었어요. 보통 한 3-4명 모였는데, 거기서 고민을 털어놨어요. (얼굴을 가리며)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하긴 한데... ‘애들이 나를 자꾸 게이 같다고 놀리고 그러니까 그게 내재화되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 기도해달라’. 이런 식으로요.
플로우 애들이 나를 세뇌시켜서 내가 이런 (남자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군요.
윤하 자꾸 남자 생각을 하게 되니까, 뭐 세뇌까진 아니더라도 이젠 나조차도 나 스스로에게 게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거죠. 그게 내재화되는 것 같다는 고민을 기도모임에서 털어놓고, 기도 부탁하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토 나와.
플로우 (웃음) 뭐라고 기도했어요?
윤하 기도문이 정확히 생각나진 않아요. 그냥 뭐, ‘이런 마음이 더 안 들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였겠죠.
플로우 그것도 진짜 억압인데... 그러면 그때 실제로 좋아하던 (남자) 친구가 있었던 거예요?
윤하 누구를 오래 짝사랑했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뭐, 고등학교 내내 몇 년씩 누굴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요. 주로 쓱쓱 지나간 애들이 많아요. 잘생긴 애를 보면 마음이 부끄럽고 쑥스럽고, 그랬던 것 같아요. 좋은데 말을 못 걸고, 친구처럼 편안하게 못 대하겠고, 그런 거죠.
플로우 교회 열심히 다녔다고 했는데, 모태 신앙인가요?
윤하 어릴 때부터 다니긴 했어요. 초등학교 때 간식 먹으러 쫓아다니는 정도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학교에서 기도모임도 하고, 그런 ‘씹 아멘’ 상태가 됐던 계기는,
플로우 ‘씹 아멘’, (웃음).
윤하 그 계기는 중학교 때 미국 경험이었어요. 저희 엄마가 교육에 열성적이셔서 초등학교 때부터 많이 시키고 하셨어요. 근데 중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괴롭혀서 공부를 잘 못했어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너 그럴 거면 미국 가서 영어나 배워오라’고 그래서 미국에 저를 보냈어요.
미국에서 1년을 호스트 가족하고 살았는데, 그 가족이 지금 미국의 트럼프 열성 지지자 기독교인들 같은 가족이었어요. 복음주의(evangelical)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엄청 보수적인 사람들이고, 교단도 남침례교단(southern baptist, 미국 보수 기독교의 주류이자 가장 큰 교단-작성자 주)이었어요. 이른바 ‘서던 뱁티스트 화이트 패밀리(Southern Baptist White Family, 남침례교도 백인 가족)’ 였던 건데, 신앙심이 너무 독실하고 규칙이 엄격한 집안이었어요. 맨날 밥 먹으면서 기도하고, 일요일마다 교회 가고요. 또 호스트해주는 조건이 기독교 사립학교에 꼭 입학해야 한다고 해서, 학교 채플도 월요일에 매주 있었어요.
플로우 진짜 수도원 같은 곳이었네요. 예비 수도사 같은 생활을 하셨던 거네요.
윤하 그렇죠. 아무래도 환경이 그렇다 보니까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어떻게 보면 사실 그때 교회를 다닌 거는 저한테 생존의 문제기도 했어요.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종교적인) 행동을 다 해야 하는데, 그게 설명이 돼야 하니까 믿음을 받아들인 것 같아요.
플로우 그렇게 중학교 때 기독교인이 되시고, 한국 돌아와서도 쭉 교회를 다니셨던 거예요?
윤하 맞아요. 왜냐하면 그때부 ‘주 예수가 답이오. 주 예수가 나의 은총이시니’ 이렇게 돼가지고 (플로우: 아하하하) 한국에서도 쭉 이어갔죠.
플로우 그러면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교회 안에서 퀴어들에 대한 혐오 발언(hate speech) 같은 것들을 좀 들으셨나요?
윤하 누군가의 말로 들은 건 별로 없었어요. 생각해 보면 동성애 혐오적인(homophobic) 순간들은 있었죠. 미국에 있을 때 리얼리티 쇼가 유행했고, 제가 좋아했던 건 인테리어 디자인 리얼리티 쇼였어요. 그쪽에 좀 관심이 있었거든요. 거기 나오는 남자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게이에요. 바비 버크(Bobby Berk)라고 퀴어 아이에도 나오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있는데, 그때 (제가 보던) 쇼에 나왔었어요.
아무튼 그런 걸 보고 있으면, 호스트 가족들이 ‘저런 사람들 나오는 거 보지 마라. 저런 거 보고 너도 모르게 배운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한 거죠.
플로우 일상생활에서도 알게 모르게 간섭이 심했네요.
윤하 그러니까요. 또 제가 한국에 부모님하고 통화할 때는 한국말로 할 거 아니에요. 그걸 듣고는 ‘한국말로 얘기할 때는 톤이 좀 다른 것 같다. 네가 영어를 할 때보다 남성적으로 들리더라. 그건 왜 그런 거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난 내가 원래 하던 대로 말한 건데 왜 그러냐’고 되물었더니, ‘네가 미국에서는 친구들한테 조금 더 인기를 얻으려고, 영어로는 괜히 더 과장된 톤으로 말하는 것 같다’라고 하는 거예요.
플로우 관종이라 일부러 여성스럽게 말했다는 거예요?
윤하 그런가봐요. 물론 다른 언어를 말할 때 다른 성격이 나오는 게 좀 있긴 하겠지만, 전 한국어나 영어나 끼스러운 건 똑같거든요.
플로우 그러게요(웃음). 한국말도 이렇게나 끼스러운데. 그것도 못 알아들으면서 무슨 남성적이니 어쩌니 말을 하나요.
윤하 그러니까요.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너 영어가 왜 이렇게 끼스럽냐는 거잖아요. 그런 게 이해가 안 갔어요.
교회에서는 막 누가 얘기하진 않았지만, 기본 베이스가 ‘동성애는 죄악이다’라는 거였죠. 한국 와서는 친구들이 놀리는 그 모든 게 사실 혐오였다고 할 수 있죠. ‘너 목소리가 왜 이렇게 여자 같냐’, 어떤 친구는 보자마자 ‘너 게이 같다’라고 하고.
플로우 학창시절 별명이 하리수였다고 얘기한 적 있었잖아요. 언제부터 붙은 별명이에요?
윤하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고, 초등학교 때부터 내내 있었어요. ‘하리수’라던가 ‘여자’라던가. 중학교 때는 애들이 ‘게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배워 와서, 거기다 제 성을 붙여서 ‘O게이’라고 불렀어요. 돌이켜 보면... 나로 사는 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죠.
플로우 혹시 남학교였나요?
윤하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고등학교는 남고요. 고등학교 가서부터는, 애들이 좀 커서 그런지 좀 덜 유치해졌어요. 친한 친구들도 생겼고, 학교 다니는 게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요. 미국 다녀와서 한국 공부 따라가는 게 급해서 사실 공부하는 데만 신경을 많이 썼죠.
플로우 아까 벽장에서 나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오고 나서는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언제부터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커뮤니티에도 나오게 되신 건가요?
윤하 종태원(종로+이태원) 나오기 시작한 건 24살부터예요. 교회를 떠나오면서 이쪽에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원래 다니던 교회는 대형교회였는데, 그 당시에 또 뭔가 문제가 있어서 시끄러웠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뭐 이런 걸 가르치는 게 교회인데, 교회 내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파벌이 생기고 서로 험한 말을 하는 거예요. 담임 목사도 설교할 때 공개 석상에서 반대파를 비난하고요.
또, 교회가 저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았어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여름 수련회 못 가면 엄청난 죄짓는 것처럼 말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거리감이 생겼고, 군대를 가면서 아예 안 가게 됐어요. 처음엔 교회 안 가면 세상 무너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플로우 맞아요. 생각보다 하나님은 관대하세요(?). 나 한 사람쯤 교회 안 가도 하늘 안 무너지잖아요.
윤하 (웃음) 그러게요. 왜 이렇게 편한지 생각해봤는데, 당장 나한테 이번 여름에 수련회 가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죠. ‘나한테 이렇게까지 죄의식을 주는 사람들이 교회 사람들밖에 없었구나’라는 거를 나와보고 깨달았어요.
플로우 탈교회하고 바로 종태원으로 나오신 거예요? 어플도 하고?
윤하 아, 그 전에 또 하나의 계기는 교환학생이에요. 군대 전역하고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다녀왔어요. 일단 성인이 되고 난 다음 처음으로 집에서, 좀 더 넓게 보면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대한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그런 곳에 가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 진짜 편하게 숨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플로우 그동안 되게 답답했구나.
윤하 그랬나봐요. 아무튼 멕시코에 처음 도착해서 임시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어요. 집을 구하려는데, 에어비앤비 주인이 집을 하나 소개해주는 거예요. 자기가 알던 한국인 여자가 곧 방을 빼는데 관심 있으면 소개해주겠다고요. 인터뷰를 미리 하자고 해서 그래서 그 (세입자였던) 한국 분을 만났어요. 미리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사실은 퀴어 프렌들리한 세입자를 원해서였어요. 자기 집주인이 게이고 이미 남자친구랑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분이 아는 한국사람들은 다 보수적이고 퀴어 혐오적인 사람들이어서 미리 좀 만나야겠다고 생각을 하셨대요. 전 안 그래도 다른 집들 알아보면서 ‘게이 룸메이트 구함’ 이런 조건들 보면 관심 가고 그랬거든요. 그쪽도 제가 전혀 혐오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저도 그 집이 너무 좋아서 바로 다음 날 살게 됐어요. 게이가 집주인인 집에서.
플로우 그때 혹시 집주인한테 커밍아웃도 하셨어요?
윤하 아니요. 바로 하진 않았어요. 편안하게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니었고, 한 3개월쯤 지냈을 때 했던 것 같아요.
플로우 멕시코에서 했던 게 첫 커밍아웃이었던 건가요?
윤하 사실 이게 좀 애매한데, 커밍아웃을 ‘내가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주체적으로 남한테 알리는 거’라고 한다면 그때가 처음이 맞아요. 근데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고민 상담 형식으로 나 약간 그런(게이인) 것 같다고 한 적은 있었고...
플로우 그러면 교환학생에서 돌아와서 좀 더 뭐랄까, ‘주체적으로’ 커밍아웃을 다시 했어요?
윤하 좀 얼렁뚱땅 했었어요. 누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여럿이 만났는데, 연애 얘기가 나오니까 ‘너네 알아둘 게 있는데 나 남자 좋아한다’고 했어요. 근데 황당했던 게, 걔네가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어떻게 알았냐니까 고등학교 때 그런 고민 얘기한 적 있었고, 딱히 강하게 부정도 안 하길래 계속 그런 줄 알았다고 했어요.
플로우 아이고, 너무 유리벽장이었네. 내가 게이인 거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네.
윤하 (웃음) 유리벽장이라는 말이 있나요? 처음 알았어요. 아무튼 그 이후로 인생에 계속 두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거의 했어요.
종로에서 우연히 만나자마자, 윤하에게 '난 너 이쪽(게이)인 줄 알았다'고 했던 친구의 공연
플로우 가족들한테도 얘기할 생각이 있어요?
윤하 있어요. 언젠가는 하고 싶어요. 특히 부모님한테요. 사실 가족 중에 작은누나는 이미 알아요.
플로우 작은누나는 반응이 어땠어요?
윤하 덤덤하더라고요. ‘네가 워낙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고 하더라고요.
플로우 부모님께는 언제쯤 얘기하고 싶어요?
윤하 딱히 시점을 정해놓진 않았어요. 제 생활이 좀 더 안정됐다고 느낄 때 얘기하고 싶어요. 돈도 좀 벌고, 집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거도 좀 안정이 되고 그런 상태에서 하고 싶죠.
플로우 부모님 반응은 어떨 것 같아요?
윤하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사실은 예전에 저를 떠본 것 같아요. 동성애가 선거 TV토론회 같은 데 나와서 이슈가 될 때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시고, 동성혼 지지하는 쪽 의견에 찬성한다고 하시기도 하고요. 가상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나는 OO(여자)가 여자 좋아해도 괜찮을 것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
플로우 많이 열려있으신 편이네요. 뭔가 안전판을 깔아주신 게 아닐까요?
윤하 그런데 또, 취업하고 나서는 계속 ‘여자친구 없냐. 결혼 생각은 없냐’ 이런 걸 물어보시기도 해요. 원래는 작년 말에 커밍아웃을 하려고 했어요. 숙제처럼 느껴졌고, 이걸 ‘완성’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죠. 망설이다가 결국 못했는데, 지금은 꼭 완성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편안한 때 말씀드려야겠다. 당장 몇 년 뒤가 아니더라도, 그냥 돌아가시기 전에, 그리고 어쨌든 정신이 온전하실 때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죠.
4. 게이 인싸, 어렵지 않아요: ‘이쪽’ 친구 만들기
플로우 멕시코에서 교환학생 하면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한국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이쪽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처음에 어떻게 이쪽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나요?
윤하 운이 좋았어요. 주변에 이쪽 자원(?)이 많았다고 할까요. 군대 선임 중 하나가 게이였어요. 케미가 잘 맞아서 친했는데, 걔는 저한테 커밍아웃을 했어요. 전역할 때쯤에 걔가 저도 이쪽이냐고 물어봤는데, 그때는 제가 아직 디나이얼(denial, 본인이 성소수자임을 부인하는 상태-작성자 주)이어서 아니라고 했어요.
교환학생 돌아와서 다시 만났을 때 커밍아웃을 했고, 그 친구가 너무 기뻐하면서 저한테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줬어요. 길잡이 역할을 해준 거죠. 이태원도 데려가고, 이쪽 단톡방도 들어가라고 거의 등 떠밀고.
플로우 이태원 어디 데려가줬어요?
윤하 클럽들 갔죠. 퀸이랑 소호를 처음으로 가고, 킹도 가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루킹’이라고 있었어요. 거기도 갔었고, 트렁크도 갔고요.
플로우 요즘 친구사이에서, 새로 나온 애들은 다 윤하 친구들이라고 (윤하: 아하하하) 단톡방에서 그냥 나 혼자 친구들 만나서 재밌게 놀 수도 있는데, 어떻게 친구사이로 데리고 나올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해요.
윤하 저는 이런 친구사이 같은 커뮤니티 생활이, 거기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인권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의 정체성(identity)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걸 저만 느끼고 싶지는 않아서 친구들을 데려온 것 같아요.
이번에 제가 데리고 온 친구들은 연초부터 거의 매주 이태원 같이 가던 애들이거든요. 근데 맨날 클럽 가는 거에서 벗어나서, 우리 좀 다른 것도 해보자, 이런 걸 해야 또 우정이 재밌지 않겠어요. 그렇게 생각해서 친구들한테 한번 와보라고 얘기를 했던 거고, 고맙게도 친구들이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줘서 같이 와서 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플로우 또 신기한 게, 친구들이 다 다른 소모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윤하님 따라서 다 지보이스 간 게 아니고, 누구는 책읽당 하고, 누구는 정기모임만 나오고, 그거는 왜 그런 것 같으세요?
윤하 일단 저는 제 친구들이 저를 따라 지보이스를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거든요.
플로우 같이 클럽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이면 다 노래를 좋아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군요.
윤하 네. 심지어 그 친구들은 다 만난 루트가 달라요. 한 명은 직장인 단톡방에서 알게 된 형이예요. 한 명은 또 다른 그룹에서 알게 됐는데, 이것도 웃겨요. 처음에 어떤 애랑 틴더에서 연락했는데, 걔가 제가 탑인 줄 알고 있다가 톡 몇 번 해보니 아니어서(플로우: 아하하하)... 그 친구가 그럼 그냥 우리 친구하자고 했죠. 한 번 보기로 해서, 저는 그래도 첫 만남은 둘이서 볼 줄 알았는데, 아예 친구를 두 명 더 데리고 나오더라구요. 정말 100% 친구일 수 있게 ㅎ.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잠깐 있던 동갑 단톡방에서 알게 됐고요. 근데 그렇게 온 애들이 합이 잘 맞아서 진짜 다행이죠.
포지션 겹치면 말도 잘 걸지 않는 어플 바닥에서, ‘어머 우리 둘 다 바텀이에요? 그럼 친구해요!’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을 거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윤하의 따뜻함이 새삼 소중했다. 그렇게 친구들을 데리고 ‘지속 가능한 활동’을 기대하고 들어온 친구사이가 지금의 윤하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
플로우 친구사이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친구사이에 대한 생각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인권단체니까 부담스럽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고, 반대로 인권단체니까 좀 안전하겠다, 여기는 나를 내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어요. 어떤 쪽이었나요?
윤하 특별히 어느 쪽이진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권에 관심이 많아요. 관심은 있었어도 본격적으로 인권단체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건 좀 부담스럽긴 했어요. 대단한 활동가여야 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처음 시작도 지보이스만 했던 거죠.
근데 지보이스를 가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꾸 정기모임 얘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모르는 뭐가 있었대. 근데 난 들은 게 없어. 들어보니까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5월부터인가는 정기모임도 꼬박꼬박 나가고 있죠.
플로우 친구사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초중반 정도가 많은 것 같아요. 특별히 이 나이대 친구들이 친구사이를 찾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윤하 그러게요. 사실 왜 30대가 많을까 하는 생각은 잘 안 해봤고, 어린 친구들이 왜 많이 없을까 하는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지금 매체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까, 게이로서 인생에 레퍼런스(참고)로 삼을 만한 자료도 유튜브나 이런 데서 너무 많이 구할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런 커뮤니티에 대한 니즈가 상대적으로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여기 나오는 데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죠. 그거 관심 안 가져도 다른 재밌는 영상 보면 되니까. 정모 가서 그냥 놀고 오면 되고, 단톡방도 많으니까 거기서 만나도 되고요. 친구사이가 어떻게 하면 그런 친구들도 좀 더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죠. 좀 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오면 좋겠어요. 커뮤니티의 나이대가 다양해지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플로우 윤하님은 그러면 20대 초중반에 누구를 보고 레퍼런스를 삼았어요?
윤하 잘 없었죠. 그냥 단톡방에 기갈진 언니들만 몇 명 있었고(웃음). 나 고생 많이 했다 진짜.
플로우 전 여기 30대들이 많은 게, 헤테로(이성애자)들이 20대 때 막 놀다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교회 가기 시작하는 거랑 비슷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장 다니고 정착하면 이제야 좀 삶의 루틴이 생기고 안정을 찾게 되니까, 커뮤니티를 찾아 교회를 가는 거죠. 애 낳으면 애들도 좀 반듯하게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고. 게이들도 20대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놀다가, 자기 생활이 생기고 나면 커뮤니티를 찾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윤하 그러게요. 좀 놀아본 다음에 이제 좀 인생을 찾아야겠다 싶을 때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그게 꼭 시간 순서대로 딱딱 하라는 법은 없죠. 충분히 놀면서도 자기 인생 찾아가는 애들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20대 친구들이 못 올 곳도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친구사이에만 있는 분들도 다른 모임을 좀 나가보면 좋겠단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요. 막 다 나가시라는 건 아니고(웃음), 혹시 여기에만 매여있는 느낌이 드신다면, 여기 밖에도 좋은 사람이 많잖아요.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찾아 나서야 하거든요. 갑자기 나타나지 않아요. 전 사실, 요새는 또 친구사이에만 집중하다보니까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마음이 왔다갔다해요. 그래서 그냥 가볍게 술번개 하고 올까 싶은 생각도 하고 있어요.
플로우 그러네요. 저도 좀 부지런히 찾아봐야겠어요.
윤하 네 진짜요. 저는 완전 추천해요. 제가 진짜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난 데가 오픈 카톡방이었어요. 그때가 코로나 한창 때라 정모를 많이 못 했는데, 어느 날 방장이 갑자기 방을 닫겠다는 거예요. 근데 오픈 단톡은 폭파시키면 복구도 안 되고, 그 방에 있던 분들이랑 다시 연결될 수도 없어요. 제가 그때 너무 아쉬워서 그 방에다가, ‘방장님 뭐 사정이 그러시면 방장을 다른 사람한테 그냥 넘기고 퇴장하시는 건 어떠시겠냐.' 이렇게 했는데, 방장을 새로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우물쭈물하던 사이에 이분이 그냥 나간 거예요. 근데 그렇게 되면 그 방은 원래 있던 사람만 남고 새로 누가 들어오진 못해요. 방장이 나가니까 우르르 사람들이 따라 나가고 몇 명밖에 안 남았어요.
저는 여전히 아쉬워서, 거기에다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고 했어요. 그렇게 한 다섯 명이 모였는데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같이 캐리비안 베이 놀러가기도 하고, 저희 집에서도 놀고, 그 중 두명은 심지어 춘천이랑 대전 사는데 대전, 춘천도 같이 놀러갔다 오고요. 지역마다 방역수칙도 다를 때이어서 서울에선 집 갈 시간에도 밖에서 놀고 그랬어요.
플로우 와 너무 괜찮다.
윤하 제가 생각하는 게이들의 장점은, 일단 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약간 친근감이 든다는 거예요. 물론 그것만으로 다 친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거기에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하면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플로우 단톡방은 동호회처럼 관심사 위주로 찾는 걸 추천하시나요?
윤하 보통 나이 기준으로 동갑 단톡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거기서 좋은 친구도 사귀었지만, 나중에는 좀 힘들었어요. 나이가 같다는 것 말곤 삶의 배경도 너무 다르고, 이미 친한 애들이 카르텔처럼 텃세 부리는 데도 있고 그래서 좀 별로였거든요. 직장인 단톡이 훨씬 잘 맞았던 게, 직장이 지금 내 생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내가 게이로서 겪는 직장생활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였어요.
취미 동호회도 찾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스쿠버 다이빙을 하니까, 이쪽 단톡방 중에 스쿠버 다이빙 동호회가 있으면 들어가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에 친구들과 간 춘천 여행. 가족여행같은 기분.
5. 전직 페미전사, 현 30대 직장인 게이가 본 사회문제
플로우 인권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하셨는데 성소수자 인권 위주인가요? 아니면 인권 전반에 대한 관심인가요?
윤하 예전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더 많았어요. 사실 페미 전사였거든요(웃음). 예전에는 회사에서 회식을 한다거나, 친구들이랑 술마시고 이럴 때 갑자기 언피씨한(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얘기가 들리면, 바로 반박하고 왜 틀렸는지 조목조목 얘기해주고 그랬어요. 요즘은 좀 달라진 게, 그 자리에서 내가 들이는 에너지만큼 그 사람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소모전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은 짚고 넘어가긴 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상무님이 ‘여직원하고 일하는 거 불편해’라고 얘기하면, 요새는 ‘요즘에 그런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정도 말하고 넘어가요. 예전에 페미 전사일 때는 ‘왜 불편하다고 생각하세요? 상무님께서 여자들과 일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는 생각 안 하세요?’라고 따박따박 따졌어요.
플로우 페미니즘을 접하고 여기에 마음을 싣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윤하 그것도 멕시코 교환학생 때였죠. 그 저한테 집 소개시켜준 누나가 엄청난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에 많이 배웠어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던 때였는데, 힐러리 클린턴하고 트럼프가 붙었을 때였어요. 트럼프가 여성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고, (반면) 힐러리는 실수를 해도 더 많이 타격을 입는 게 여성이어서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걸(정치적인 상황을) 보면서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을 많이 실감했죠.
근데 저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남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전체 성의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성평등이자 정체성의 평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게이들한테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해요.
플로우 게이들 중에 여성 혐오적인 친구들을 보면 어때요?
윤하 페미전사이던 시절에는 그런 애들하고도 싸웠어요. 술자리에서 누가 ‘나는 끼순이들은 싫어’ 이런 얘기하면, ‘왜 싫은데? 끼순이가 뭔데? 나한테 설명해. 너 그거 왜 싫은 줄 알아? 그거 여성혐오야.’ 이러면서. 근데 그런 얘기는 술자리에서 절대 안 끝나죠.
플로우 맞아요. 절대 안 끝나죠.
윤하 ‘너 내가 얘기한 거 자고 일어나서 내일 다시 생각해 봐.’라고 하면서 끝까지 얘기했어요. 그래도 그중에 진짜로 ‘내가 나중에 다시 생각해봤는데 너 말이 맞는 것 같아.’ 라고 해준 친구도 있긴 있었어요. 전에는 그렇게 내가 일일이 얘기해줘야 바뀌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지금은 게이들의 여성혐오에 대해서는 좀 더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사적으로는 그냥 그런 말 하는 친구들을 제 곁에 두지 않아요.
플로우 그러니까요. 누구랑 싸워서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애정이고, 에너지가 있을 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내 에너지를 아껴서 현명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죠.
윤하 맞아요. 제가 아까 말한 동갑 단톡방에서도 얼마 전에 그냥 나왔어요. 너무 고민 없이 빻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서, 뭐 예를 들면 끼순이에 대한 조롱도 있고, 말끝마다 팔렸네 안 팔렸네 이런 얘기도 하고. 심지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얘기들도, 본인들은 장난이라지만 막 하고요. 이건 선 넘었다 싶어서, 더 이상 같이 못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뭘 바꾸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분들이 좀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런 말들이 결과적으로 게이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안타까워요.
플로우 지난 8월 워크숍에서, 반성폭력 교육에서 게이들이 쓰는 용어에 대한 얘기가 있었잖아요. 서로를 ‘년’이라고 부른다던가, ‘팔렸다, 안 팔렸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쓴다던가. 이런 언어 습관이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는 여성혐오라고 비판받지만, 게이들이 이런 말을 쓰게 된 데는 나름의 맥락이 또 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언어습관이) 이해는 가거든요. 게이들이 여성들과 아이덴티티를 동일시하는 거는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고 세계적 현상이에요. 제가 그런 말을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좀 더 생각해볼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윤하는 페미니즘을 통해 구조적인 차별의 존재와 그로 인한 피해자의 존재,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일상의 언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듯하다. 이러한 구조적 차별은 게이들을 포함한 성소수자들에게도 당연히 존재한다. |
플로우 성소수자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게 불편한지, 그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ㆍ제도적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느끼는 게 있으신가요?
윤하 평소에는 사실 매일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제도가 어떤 건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까, 적응해서 사는 것도 있어요. 다만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건,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제도권 안에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죠. 그런 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도 여기에 포함되는 거고요.
저는 또, 제가 성소수자인 것뿐만이 아니라 싱글 남성으로 살아가는 데서도 사회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는 혜택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으로 스물 여섯 살때부터 무주택 세대주였는데, 청약에서는 제 무주택 기간을 인정받지 못해요. 왜냐하면 아직 만으로 서른이 안 됐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근데 내가 만 서른에 미혼인 것과 내 무주택 기간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일하면서 세금도 많이 내고 부가가치도 많이 창출했는데, 집을 살 때 기회나 대출 같은 혜택에서는 불이익을 받는 거죠. 일종의 싱글세예요. 이건 저의 정체성이나 지향성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이 아니라 내가 게이로서 살 수밖에 없는 라이프스타일이 차별받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요.
플로우 그렇죠. 누군가가 말로 차별한 게 아니라, 이미 설계되어 있는 경제적인 제도 자체가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거죠.
윤하 그러다보니까 불만은 있는데, 고쳐보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회피하게 돼요. 미래에 대해서도 오히려 ‘아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되고요. 미래를 그리기가 어려운 거죠. 미래를 그릴 때 그래도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데, 넘어야 할 산들밖에 없어 보이니까 미래를 그리기가 재미가 없어요. 올해 대선 이후로는 특히 더 재미가 없어요. 원래 정치나 시사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의도적으로 뉴스 보는 걸 좀 줄이고 있어요.
플로우 그러면 지난 (문재인) 정부 때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섰으니까 내 삶이 좀 나아지겠다는 기대를 하셨었나요?
윤하 초반에는 그런 기대가 조금 있었죠. 그런데 당시 문재인 후보가 이미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말해놓고는(대선후보 TV토론에서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가 ‘동성애 반대하십니까?’라고 묻자,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반대하죠’라고 대답하였음-작성자 주) 대통령이 됐잖아요.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겠나, 싶은 마음에 금방 기대를 접었던 것 같아요. 심상정 후보한테 기대를 걸긴 했었는데, 뭐, 현실적으론 어려웠던 거겠죠.
플로우 사실 심상정 님이 대통령 되는 것보다 차별금지법 통과가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심상정을 대통령으로 만들 정도로 진보적인 국민이라면 차별금지법 정도는 진작에 통과시킬 것 같아요.
윤하 그건 그래요. 사실 차별금지법이라는 의제 자체는 나온 지가 꽤 됐잖아요. 의제가 나왔을 때 뜨겁게 토론하고 빨리 결론을 짓는 방향으로 가야 제일 효과적인데, 그렇게 안 된 게 좀 아쉬워요. 이번 대선에서도, 차별금지법만 놓고 보면 만약 이재명 후보가 됐어도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사실 차별금지법이 될 거였으면 2년 전에 총선 끝나고 됐어야죠. 이건(법 제정은) 입법부의 권한이잖아요. 민주당이 지금 이 정도 다수당인데, 그래도 안 된 걸 보면 민주당이 진지하게 차별금지법을 밀고 나갈 생각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6. 마무리
플로우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가는데요. 오늘 어떠셨나요?
윤하 일단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가 잘 되어서 너무 좋고, 처음엔 인터뷰라서 사실 어디까지 얘기할지 조금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굉장 편안해서 저도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웃음).
플로우 원하는 부분 다 편집해드려요. 걱정 마세요. 개인적인 이야기(실제로 다 편집되었다-작성자 주) 다 빼드립니다.
윤하 다행이네요. 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 친구사이에 가볼까 고민을 하고 계시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나와보시라고 하고 싶어요. 반갑게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뭐 이미 친구사이 열심히 하고 계신 분들은... 그냥 잘 지내시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플로우 괜히 어디 아프지 마시고.
윤하 네. 그리고 후원 많이 하시고. 인터뷰에 댓글 많이 달아 주시고. 혹시나 시간 되시면 지보이스 나오시고요.
경복궁역사 내 전시공간. '꽃이 피어나는걸 보니까 제 퀴어 인생이 피어나는 느낌이네요'
인터뷰는 10월 29일 토요일 오후에 이루어졌다. 시종일관 즐거웠고, 무거운 내용을 얘기할 때도 분위기가 밝았다. 서로 반응을 주고받으면서 오디오가 물리는 경우도 많았다. 비장하지 않고 재밌게 당당한 사람 주변에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꼈다. 게이로서 어두운 과거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윤하는 자기 방식대로 그 시절을 소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인터뷰 잘 읽었어요~ 술자리에서만 봐서 그런지 깊게 알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 인터뷰를 통해 윤하님과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네요~ 플로우님의 마지막 인터뷰 소회도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