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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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호][기획] <Seoul For All> #16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자요. 밤의 시민 여러분.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 이 이야기는 천삼백팔십세개의 문장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천삼백팔십세개의 문장에 매달려있는 천삼백팔십세개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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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2020년 2월 한국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COVID-19, 잠시 후면 끝날 것만 같았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당연하게도 지금 즈음 전국 방방곳곳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도 즐기고, 종로와 이태원, 더 넓게는 방콕과 샌프란에서 한바탕 놀고 있을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이 전염병은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그림 1] 2020년 5월 이태원 발 COVID-19 확산의 진원지로 평가받아 온 이태원 일대 게이 클럽 거리의 풍경
* 사진의 배경이 된 2020년 2월 마지막 주말, 이태원의 게이 클럽 King, Him, Trunk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유행에 따라 클럽 내 성소수자 및 앨라이의 감염을 우려, 클럽의 휴업을 결정한 바 있다.
벌써 몇 년 전 같지만, 지난 5월에는 이태원의 킹클럽에서부터 시작된 COVID-19이 논현과 종로3가(익선동) 일대 게이들의 상업공간들을 휩쓸기도 했습니다. 회사 동료로부터, 대학 선후배로부터 블랙과 쉘터라는 장소의 이름들이 오르내리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죠.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태원에 방문한 사람들을 추적하고 관리하기 위해 핸드폰의 위치기반 데이터, 신용카드 거래내역, 대중교통 이용기록과 CCTV(폐쇄회로영상)기록, 그리고 추적 대상의 약물 사용 여부까지를 포괄하는, 이태원 소재 유흥업소 5곳을 직접 방문한 5,517명, 그리고 그 일대를 방문한 57,536명의 방대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대국민 스마트시티 서비스를 구현해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유흥업소 추적 시스템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신종감염병 저널(EID: Emerging Infectious Diseases)’를 통해 전세계로 홍보되기도 했죠. 서울시는 해당 논문에서 “유흥업소 등 특정 다중이용시설 내 집단 감염이 얼마든지 국내 전체로까지 확산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방역당국은 유흥업소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철저한 방역관리체계를 유지해나갈 필요가 있다”라는 정책적 시사점까지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림2] 2020년 5월, 대한민국 주요 도시와 지방에서 진단된 서울 이태원 나이트 클럽 발 COVID-19 사례.
결과적으로, 이태원 킹에서부터 시작된 감염 전파는 지역적으로, 서울은 마포구를 제외한 24개 자치구 전역에서, 그리고 국내 전체 17개 시도 중 12개 시도에서 확진자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이태원의 한 유흥업소가 바로 전국적인 확산의 시작점이었다는 것. 이에 대해 과연 게이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대체 이태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길래, 유흥 몇 시간 즐기자고 전국에서 저렇게 사람들이 몰리나?’ 다들 궁금했을 거에요.
맞아요. 왜 우리는 바로 그 날 제주에서, 부산에서, 강원에서 서울 용산의 이태원까지 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여기서 여러분께 잠시 시간지리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할까 해요. 사람은 누구나 24시간을 부여받고, 사람은 동시에 둘 이상의 공간을 점유할 수 없으며, 사람이 서로 다른 두 장소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양의 이동 시간을 소비한다는 개념이죠. 그리고 이러한 시간지리학은 사람이 이동하는데 있어서 크게는 1) 신체적, 사회경제적 능력의 제약, 2) 다른 활동과의 연계 속에서 이뤄지는 연결제약, 마지막으로 3) 개인적 혹은 사회적 권위에 의해 이동이 제약되는 권위제약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림 3] 시간지리학의 관점에서 베이징 내 게이커뮤니티의 시공간에 따른 영역을 시각화한 자료.
The distribution of gay community in Beijing over 28 September 2016.
시간과 공간은 분리할 수 없으며, 사회 시스템의 구조는 시공간 상의 관계를 통해 묶이게 됨을 주장하고자 했던 시간지리학은 [그림 3]과 같이 시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개개인의 생활 경로, 궤적 이면 속에 숨어있는 목적, 의도, 역사의 흐름 간의 복잡한 상호연관성을 설명하고자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그리고, 이번 COVID-19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게 되면 이 시간지리학이라는 개념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재난은 여러 면에서, 현대 도시들의 근본적인 권력 구조, 오랫동안 무시된 부당성, 잘 인식되지 않는 불평등을 드러내기 때문이죠.
누군가 우리에게 전염병도 위험한데 각자의 집 근처 술집에서 놀면 될 것을, 굳이 왜 이태원까지, 왜 종로3가까지, 왜 강남의 찜질방까지 가서 놀았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유흥을, 여가를 즐길만한 곳이 바로 그 곳밖에 없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COVID-19라는 재난이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 현실은, 비록 방콕이라는 도시가 비행기로 수 시간 떨어진 거리일지라도, 비록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비행기로 반나절 떨어진 도시일지라도, 우리는 집이나 우리 동네라는 표준화된 안식처보다 때로는 조금은 떨어져있는, 혹은 바다를 건넌 장소에서 도리어 자유로움과 안식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그림 4] 모빌리티의 시대, 왜 우리에게는 이동의 정치학이, 모빌리티 정의(justice)가 필요할까?
그렇게 비록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할지라도, 이로 인해 입는 재해는 사회정치적 요소를 지닐 수 밖에 없는 현실, 즉 불균등한 모빌리티(uneven mobility)는 그 재난이 가한 충격에 내포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차별의 다차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어떤 학자의 말처럼, 사람, 상품, 자본이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가의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정치적인 문제이며 “비참한 빈곤”과 “놀랄 만한 풍요”가 함께 존재하고, 이렇게 불평등한 “극단의 도시(에슐리 도슨, 2017, Extreme cities)”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 말이죠.
# 그렇다면 과연, 대안은 있을까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벌써 9월이 찾아왔네요. 여전히 재택근무, 휴교령은 계속되고 있고, 좋든 싫든 하루종일 집에서 가족을 마주쳐야 하는 청소년 퀴어들과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성인 퀴어들은 그렇게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태원 이후로는, 혹여나 내 동선이 추적되지 않을까, 과거에는 간간히 즐겼던 크루징 혹은 원나잇도 웬만한 용기가 없어서는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앱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매체를 통해 만남이 보편화된, 모든 만남이 추적될 수 있는 지금의 문화 속에서는, 동선 공개로 인해 회사와 가정에서 벌어질 감당하지 못할 아웃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림 5] 핸드폰 안전 안내 문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확진자 정보들
물론 당연하게도 한국만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전세계 곳곳의 프라이드가 취소되었고, 대도시 속 퀴어 상업 공간들은 급격한 매출 감소로 인해 빠른 속도로 문을 닫고 있죠. 물론, 미국과 유럽의 퀴어 상업 공간들이 이미 2000년경부터 쇠퇴가 시작되고 있었고 오늘날 그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의 폐업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퀴어 중 가장 취약한 누군가는 이러한 공간을 필요로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해, 종로3가의 게이바가 혹은 이태원의 한 클럽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지긋지긋한 꼰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겨우 찾은 의지할 만한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정부 규제가 지속된다면 몇 년 뒤, 종로3가와 이태원이라는 상업공간을 통해 교육되고 전달되어왔던 지금의 '게이 문화'는, 코로나 이후의 퀴어 세대에게 더 이상 전승(?)될 수 없는, 죽은 문화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친구사이는 어디에서 활동가를 모집해야 할까요?)
[그림 6]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를 기념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거리에 세워진 하비 밀크 플라자
영미권 퀴어운동의 발자취를 참고하고 있는 우리에게 1) 오프라인의 퀴어 공간을 발판으로 지역기반의 정치공동체를 형성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2) 동성결혼 법제화를 통해 일부 퀴어 집단이 주류 사회에 멀끔히 동화되지도 못했고, 3) 80년대 HIV/AIDS 시절에는 경험도 못한 스마트폰 기반의 대국민 감시의 시대, 나아가 익명화된 온라인 기반 퀴어 공동체의 형성을 마주하고 있다는 현실은, 도대체 앞으로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어떤 불확실한 미래가 다가올지 모르는 요즘, 그나마 자본을 갖춘 대도시의 퀴어 상업 공간들은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매체를 활용해 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책이 오프라인만큼의 수입을 대체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의 시기를 이겨낼 최소한의 수입원을 제공해준다는 점, 그리고 기존의 오프라인, 술 중심의 퀴어 공간에 나올 수 없었던 익명의 누군가, 혹은 LGBT 장애인 및 청소년들에게 더욱 접근하기 쉬운 문화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일 것입니다.
[그림 7] 닷페이스를 통해 진행된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대부분의 퀴어 상업 공간은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여 부수적인 수입을 얻을 정도의 자본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개인의 신용-재정적 문제를 부담하며 유지되고 있었다는 현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비정기적인 급여를 제공받고 있었던 바텐더, 드랙퀸, 고고보이를 비롯한 수많은 퀴어들이 그나마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반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현실은 때때로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마주한 퀴어 커뮤니티를 대하는 각국 정부의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 '유흥'이 대체 뭐길래.
우선, 한국은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하여 지역사회 추가 확산 위험성과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 4월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클럽 등 유흥주점, 감성주점, 콜라텍 등에 집합금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행정명령에 따른 업주들에겐 중앙정부 차원에서 단 1원의 지원도 시행되지 않았죠. 이는 지자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생존자금을 지원했지만, 유흥·도박·향락업종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콜라텍, 나이트클럽, 바 등의 유흥업소들은 보증제한업종으로 분류하여 대출 지원 또한 받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물론 업종 상 단란주점은 제외되었으며, 식품접객업-유흥업소 중 룸살롱 등 일반유흥시설의 집합금지 명령은 수시로 완화되었고, 업종분류 상 유흥업종이 아닌 '일반음식점-춤 허용업소'인 클럽들은 행정상 제재를 받지 않고 영업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계획-건축법의 측면에서 광의의 유흥업(말 그대로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유흥업)에 관한 지금의 법 조항은 어디서부터 꼬여있는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점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가 역사적으로 이러한 공간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는, 이어지는 글 "#17 : 서울은 천박한 도시"에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합니다.)
* 부산광역시,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는 유흥업소에 대한 지원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 필자가 개인적으로 유흥업의 폐쇄 조치를 공공기관(특히 박물관, 미술관, 학교와 같은 교육문화시설)의 개폐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공공기관의 경우 폐쇄 조치가 이루어져도 해당 기관의 구성원에게 급여가 지속적으로 지급되지만, 유흥업 등 민간 사업체의 경우 폐쇄 조치가 이뤄지게 되면 해당 사업체의 존폐는 물론 구성원의 급여를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림 8] NASA의 위성사진을 통해 본 서울의 밤
당시 유흥업이 이와 같이 긴급재난지원금에서 광범위하게 제외된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는 소상공인 매출 타격에 대한 지원과 내수 진작이며, 클럽 등 유흥업이 대상이 되는 것은 골목상권 살리기와는 무관하여 부적절하다. 또한, 이태원 클럽 발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지금 밀폐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하는 클럽을 지원하는 것은 코로나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4개월이 지난 지금,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도시의 모든 공간, 학교에서, 회사에서, 카페에서, 교회에서 코로나 환자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유흥업에 대한 일방적인 낙인에 근거한 행정 조치는 적절했을까요?
이러한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정 조치에 억울했는지, 일부 업주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집합금지명령을 즉각 해제하고 손실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강북구에서 나이트 클럽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서울시 명령이 떨어지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문을 닫아 거의 반년 동안 수입이 없었다"며 "웨이터, 밴드 등 고용했던 직원만 80~90명인데 이들은 물론 사장인 나까지 아무런 기약 없이 ‘반(半)백수’ 상태"라고 말했다. "세금도 성실히 납부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 해왔는데 아무 지원 없이 문을 아예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니냐"며 "강력한 방역지침을 준수할테니 제발 문이라도 열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송이 기자, 2020, "“룸살롱도 문 여는데”… 클럽·코인노래방 업주들, 기약없는 영업정지에 반발", 조선비즈. |
그렇다면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혹은 우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타국의 정부들은 유흥업에 대해 과연 어떤 조치를 시행했을까요?
우선 가장 가까운 일본의 경우, 야간에 영업하는 유흥업 중 문을 닫는 업체에게 500,000엔(4,664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일부 지자체마다 상이한 금액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정부의 행정조치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물론 일부 언론은 일본에 강제적인 폐쇄 행정 조치를 시행할 수 있는 법이 없는 것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글쎄요. 정부가 닫으라면 닫고, 열라면 여는 것이 꼭 올바른 시민상의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 9] 영미권 정부 및 시민단체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야간문화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
LGBTQ+에 대한 항목이 눈에 띈다.
바다 건너 영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LGBTQ+를 포함한 예술, 문화 및 유산에 관한 산업을 대상으로 15억 7천만 파운드 규모의 펀드를 마련해서 지원할 예정이며, 지자체인 런던 시의 경우 문화, 창조 및 야간 산업을 대상으로 2억 3천만 파운드 규모의 행재정적 지원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특히 LGBTQ+ 상업공간을 대상으로 임대료, 공과금, 대출, 직원 급여 등을 지원하기 위한 225,000 파운드 규모의 추가적인 지원 제도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아직까지도 감염이 지속되고 있어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정부 차원에서 뉴욕과 LA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재개장이 이뤄지고 있으며, 유흥업은 개장 우선 순위 중 후순위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뉴욕의 야간문화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 구호 기금(NYC Nightlife United Fund)이 설립되었으며, LGBTQIA 및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야간문화공간을 대상으로 금전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 물론 이뿐만은 아니다. 관심이 있다면, 다음의 링크를 통해서 각국의 지원 정책을 살펴보자.
같은 유흥업을 다루는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도시마다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네요. 하지만, 한국과 그 외 국가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바로 긴급 사태로 인한 유흥업의 폐쇄 조치를 마치 “유흥업은 당연히 존재해서는 안되지만, 우리가 잠깐 풀어준 거야, 언제든 우리는 너네를 문 닫게 할 수 있어”와 같은 낙인과 시혜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유흥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주 또한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행정의 주체이자 협력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느냐의 차이일 것 같습니다.
[그림 10] 각국의 야간 도시 정책을 팔로업하고 있는 시민단체 VibeLab의
The Global Nighttime Recovery Plan(“GNRP”) 보고서
어쩌다가, 한국은 유흥업에 대해 낙인과 시혜라는 이중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걸까요? 이를 고민해보기 위해서, 과연 ‘대도시(metropolis)’의 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대도시 '서울'은 밤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뤄왔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대도시의 밤이란 무엇일까?
밤이라는 건 물론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니 밤은 명사로는 “해가 져서 어두워진 때부터 다음날 해가 떠서 밝아지기 전까지의 동안”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또 유의어로 야간, 어둠이라는 단어도 있구요. 하지만, 굳이 이러한 설명이 아니어도, 우린 모두 ‘밤’이라는 시간에 대해 어떠한 느낌, 감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각자에게 밤이라는 시간은 정말 다양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을거에요. 그렇다면 이러한 ‘밤에 젖어든 도시’라는 시공간은 과연 학문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요?
먼저, 시간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을 규율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 학자가 말하길 “24시간”이라는 제도가 우리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후기 산업화 이후의 일이라고 해요.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효율적인 노동생산성에 자본가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 이후로 우리 세계는 근대적 시간체제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시간이라는 발명품을 통해 우리는 어느 위치에서든 동일하게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측정할 수 있죠.
[그림 11] GOOGLE EARTH ENGINE을 통해 확인가능한 통일된 하나의 시공간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지구인의 모습들
한편, 시간이라는 숫자는 비록 같을 지라도, 우리는 이 시각에 모두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홀(Hall, 1959)이라는 사회학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각자가 어떠한 문화와 경험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서로가 다른 사회적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밤이라는 시공간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우선, 대표적인 20세기 공간사회학자 르페브르는 도시공간을 1) 금지의 ‘낮의 공간’과, 2) 몸, 섹스, 쾌락이 존재감을 획득하며 유사일탈이 일어나는 ‘밤의 공간’으로 나누고, ‘밤의 공간’을 사회적으로 매개된 공간이라 정의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밤의 공간이란 대안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어둠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집단들이 경합하는 공간으로, 낮과 밤 동안 특정장소에 ‘일어나야만’ 하거나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둘러싼 사회적 투쟁으로 구성되는 공간입니다. 즉, ‘밤의 공간’은 이를 구성하는 사회 내 무수한 욕망들을 결합시키기 때문에 다중적이고, 중첩적이며 모순적인 공간입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밤이라는 공간을 보자면, 최근 번역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죠? ‘제3의 장소(1989)’를 내세운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이런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주장에 의하면 그동안의 도시계획과 건축은 '제1의 장소'인 가정(집)과 '제2의 장소'인 일터에 역량을 지나치게 집중해왔다고 해요. 하지만 사람은 단순히 가정과 일터에서만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겐 ‘비공식적인 생활’이 이뤄질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죠. 이러한 '제3의 장소'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가정과 직장에 과하게 의존하게 되고, 소외감과 중압감으로 인해 각자의 삶이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렇게 황폐해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3의 장소’가 긍정적인 재미와 역할을 찾아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도시라는 공동체는 제3의 장소를 통해 새롭게 건설될 수 있음을 제안합니다.
[그림 12] 1980년대 세계 대도시를 강타한 HIV/AIDS 당시 "안티 에이즈 유니폼", 패션은 반복되는가.
* 1987년 1월 24일 토요일 이른 아침, 수술용 고무 장갑을 낀 경찰들이 런던 남부의 게이 펍인 Royal Vauxhall에 강제 진입했다.
그러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들어가서 도시계획과 건축 등 공간의 설계와 계획을 다루는 학문들에서는 밤의 공간을 과연 어떻게 다루고자 했을까요? 사실 밤이라는 시공간은 도시계획과 건축 분야에서 향락과 소비문화의 장으로 폄하·혐오되어 왔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밤의 도시공간은 낮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통제되고 관리되어야만 하는, 일상에서 벗어난 위험한 대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일탈, 범죄, 소음, 음주, 성도착, 중독과 같은 이슈로 밤의 도시공간을 이해해왔죠. 어쩌면 밤이라는 시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영미권에서 유흥 산업 관련 업소들은 치안과 안전, 그리고 부동산의 가치 측면에서 70년대부터 한국의 용도지역제와 같은 Zoning System을 통해 그 입지를 엄격하게 규제받았습니다. 또한 유흥업소들이 집단적으로 입지하여 특정 지역이 유흥특화지역으로 변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체 간의 이격거리를 확보해야하는 법적 규정을 두기도 했죠. 또한 주류를 판매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발행하여 유흥업의 총량 자체를 규제하는 방식도 활용되었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유흥업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그림 13]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영화관의 게이 크루징에 대한 에세이,
성(sex)이라는 이슈와 도시계획을 연결하여 오늘날까지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Samuel R. Delany, 1999, Time Square Red, Time Square Blue, New York University Press.
당시 유흥업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은 주거인구 밀도는 낮지만 높은 유동인구를 가진, 주요 교통 환승지(기차역, 버스터미널 등)가 입지한 지역들에 유흥지구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고, 그 곳에 안정적인 수요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높은 익명성이 이러한 유흥지구의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깨진 유리창 이론 등을 활용하여 이러한 지역을 없애는 것은 짧게는 숫자를 줄인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다른 지역의 유흥업소를 증가시키는 풍선효과를 불러온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유흥업의 입지 요건과 풍선효과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해석이 분분할 뿐, 아직까지 명확하게 실증된 바는 없습니다. 그리고 겨우 최근에 들어와서야, 일부 학자들이 ‘야간 경제(night-time economy)’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밤의 시공간을 낮 시간에 이미 포화되어버린 교통, 전력, 인구 밀집, 공간 수요 등의 문제를 해결해줄 방안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도시라는 자원의 효율적인 분산을 유도하는 측면에서 밤을 바라본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짧은 시간이지만 밤의 도시공간에 대한 논의들은 전통적인 “범죄, 유흥, 일탈”이라는 연구 주제에서 “소수 문화, 거버넌스, 창조 경제”라는 주제까지 그 범위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거버넌스하니까 생각나네요. 아마 [Seoul For All]에 관한 글을 계속 읽어오신 분이라면, 런던의 Night Czar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글이 2018년 4월이니까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넘었네요. 당시 제가 글을 쓸 때만해도 몇 도시 사례 밖에 없었는데, 최근 발표된 한 눈문을 읽어보니 아래 그림과 같이 참 많은 도시에서 야간공간에 대한 도시계획(혹은 통치계획)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것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치안의 관점에서 “엄격한 라이센싱 운영과 해당 사업체들의 영업 시간 단축을 통해 야간 도시공간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밤의 공간(혹은 시장)’을 도시공간의 새로운 이해관계자이자 시민 주체로서 인정하고 중재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밤의 통치 질서를 만들어내겠다는 욕망이 글로벌 도시 곳곳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죠.
[그림 14] 야간의 도시를 통치하기 : 새로운 형태의 도시 거버넌스로 야간 시장(Night Mayor)가 떠오르다.
이렇게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야간 도시계획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야간 도시공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조 환경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야간 대중교통 서비스를 확대하거나 야간에 공중 화장실을 개방하거나, 지나치게 어두워서 일부에게 두려움 혹은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역에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정책들이 있죠. 둘째, 기존의 운영시간 규제나 통금, 혹은 공공 장소의 여러 규제까지 야간 활동을 방해해왔던 여러 법제도들을 개선하는 정책들이 있습니다. 셋째, 야간 도시공간과 관련된 여러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합의를 중재하고 촉진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정책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렇다면 서울은 또는 한국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야간이라는 도시공간을 다뤄왔는지 궁금해지네요.
# 서울에 딴스홀을 許하라.
* 1937년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과 영화배우 오도실, 기생 박금도 등 조선 여성 8명이 총독부의 치안담당자에게 '딴스홀'을 허가해 달라는 청원 보낸 공개 탄원서의 일부로, 당시 ‘삼천리’지에 실렸던 내용을 김진송씨가 자신의 저서 「현대성의 형성-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의 제목으로 인용하며 이슈되었다.
우리나라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보급한 최초의 프로탱고 공명규씨의 공연 장면 “우리들은 이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여 줍시사고 연명으로 각하에게 청하옵나이다… 일본 제국 판도내와 아시아 문명도시에는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딴스홀이 유독 우리 조선에만, 서울에만 허락되지 않는다함은 심히 통탄할 일로… (중략) 하루속히 서울에 딴스홀을 허락하시어, 우리가 동경 갔다가 ‘후로리다홀’이나 ‘일미홀’ 등에 가서 놀고 오는 것 같은 유쾌한 기분을 60만 서울 시민들도 맛보게 하여 주소서.” |
하지만, 다행일지 불행일지 모르겠으나 야간의 도시공간을 바라보고자 한 국내 연구는 많이 없었습니다. 일부 1) 조경학 분야에서 일제강점기부터 근대 서울의 야간 경관에 대해 살펴보거나, 2) 여성학 분야에서 기지촌과 같은 성매매가 이뤄지는 공간을 다루는 제도와 그 내부의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거나, 3) 사회학 분야에서 1980년대 초까지 존재했던 야간 통금 제도를 다루는 정도의 파편화된 연구가 대다수였습니다. 왜일까요?
1912년 ‘경성시구개구예정선로’의 발표, 그리고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제정과 함께 한국에 근현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이라는 행정기술이 뿌리내린 이후로, ‘도심, 더 나아서 도시’라는 공간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질서와 차이를 은폐한 채, 합법성과 경제성만을 추구해야하는 규범적인 공간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게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서울시 도시계획의 목표는 "도시의 면모를 해치는 도시 발전 저해 요소"이자, "열등의식을 조장하여 사회병리를 야기"하는, "서울의 불량지역을 발본색원"하여 "쾌도난마와 같은 대량 철거를 시행"해야하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림 15] 서울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불량주택을 개량하는 주택개량재개발사업을 시행한 바 있다.
김광중, 1996, 주택개량재개발 연혁연구, 서울시정연구원.
그 때문일까요? 국내 몇 없는 공간 속 섹슈얼리티를 다루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연구를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이야기하고는 합니다. 한국에서 밤의 (도)시공간은, 공적인 공간인 낮과 달리, 철저하게 사적인 공간이자 제도가 개입할 수 없는 시간으로 다뤄져 왔다구요. 철저하게 이성애-남성의 관점에서 다뤄져 온 한국의 밤이라는 시간은 성매매의 공간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다뤄져 왔다구요.
유흥업 현장에서의 ‘윤락’의 낙인은, ‘타락’의 원인을 개인의 속성으로 귀일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으며, 그 낙인은 성판매여성 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의 섹슈얼리티 수행에도 광범위하게 부과되었다. 성적 대상화와 정상가족 내 성적 실천의 양분된 논리는, 섹슈얼리티의 자율적 수행과 그것의 인지를 매우 어렵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가운데 유흥업소 종업원들에 대한 낙인은, 주로 1950∼60년대 신문이나 통속지를 통해 선정적이고 희화화된 소비의 형태를 띠었고, 거기에 더해 1960년대에는 의료권력에 의해 몸에 대한 지식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그들을 향한 낙인 또한 근대화된 형태를 띠게 되었다
- 김대현, 2018, "1950~60년대 유흥업 현장과 유흥업소 종업원에 대한 낙인", 역사문제연구, 39. |
매춘문제가 주로 도시 공간 내부에서 벌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측면에서 제대로 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매춘 공간의 발생기원, 도시 내 매춘 공간의 입지구조, 매춘 공간을 유지시켜 왔던 법ㆍ제도적 장치와 성별권력의 다면성 등으로 논의가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터부시하고 죄악시해온 매춘이라는 사회현상이 제대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場)이 필요하다. 매춘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도심의 성장과 쇠퇴를 함께 해 온 매춘공간의 물리적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김희식, 2016, "매춘공간의 포함과 배제 : 공간정책의 영향을 중심으로(1876~2010)", 서울시립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한국의 진보적인 공간 연구자들에게 신자유주의적인 공간 양태와 이에 기반을 둔 억압은 주요한 공간문제로 부각되었지만, 가부장적인 이성애정상가족규범에 기반을 둔 공간 규율은 공적 문제로 인식되지 못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해 남성 적인 것, 규범적인 이성애 관계, 정상가족이라는 삼박자를 ‘자연스럽다’ 고 여기게 하는 공간 정치가 한국의 공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별 무리 없이 통용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공간의 주체는 무성적, 혹은 이성애(가족)적 존재로 획일화되었으며, 비규범적인 섹슈얼리티를 지닌 몸들은 또다시 공적 논 의에서 주변화되었다. (중략) 그 결과 ‘규범적인 이성애자’라는 표상 외에 도시의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몸들은 공적 논의에서 철저히 사(私)의 위치로 설정되었다.
- 김현철, 2015, "성적 반체제자와 도시공간의 공공성 -2014 신촌 퀴어퍼레이드를 중심으로", 공간과 사회, 51. |
공간, 장소, 경관, 영토, 경계, 운동 등의 지리적 대상들과 계급,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연령 (비) 장애 등 사회적ㆍ문화적 대상들의 상호 의존 관계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선악은 순전히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경계를 누가 정했는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장소는 이러한 권력과 배제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구성ㆍ유지ㆍ변화하는 복수의 경계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중첩되고 상호 교차하는 유동성과 불확실성의 차원에서 거듭 주목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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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가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고 언급했을 때, 참 많은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들이 내가 사는 서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도시인지, 세계 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얼마나 상위권에 있는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은 얼마나 편리한지,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환경은 얼마나 우수한지, 서울의 강남북을 가르는 한강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열분을 쏟아낸 바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서울의 이미지는 누군가에게 그 자체로 성공의 신화이자, 모범 시민이라는 환상의 공동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 15] 서울퀴어콜렉티브, 2020, “타자의 연대기”, 그래픽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우는 역사와 종로3가로 대변되는 타자들의 역사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주체의 거대 서사 속에서 타자들의 이야기는 어디에 위치시킬 수 있는지 파악해보려는 시도
그래서 전 이번 기회에 짧게나마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다뤄온 공간적인 관행들을 살펴보고자 해요. 서울의 지도자들이, 한국의 지도자들이 이성애적-도덕적 가치를 유지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명백하게 개입해 온, 불편해도 정확히 파악되어야 하며 아파도 여러번 곱씹어 보아야할, “천박한 도시 서울”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적어도 우리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시공간의 질서를 유지시켜온 법적, 제도적, 공간적 해석을 재구성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 많은 공백들을 감히 모두 복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복원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광활한 서울의 격변 속에서 벌어진 시공간의 변용들은 우리로 하여금, 당시의 그 의미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게 만들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해석의 실마리를 나름의 방법을 통해 찾아보기 위해 ‘서울’이라는 행정 경계의 확장 속에서, 밤의 시공간을 다뤄 온 제도들의 지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정확하게 볼 수도, 해석할 수도 없지만, 분명 언젠가, 누군가는 그 미제의 맥락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공백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밤중의 서울은 참으로 마굴이다. 모든 살인강도, 사기, 간음, 이럴 것이 구데기처럼 끓는 때이다. 이런 무서운 벌레들이 서울의 심장과 페를 갉아먹는 시간이다. 이리해서 서울은 날마다 각각으로 썩고 죽어가는 것이다.
-≪동아일보≫, 1933. 5. 27. 방인근 작 ‘마도의 향불 일사령’ |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