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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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진행 후기
2011년 겨울 서울시 의회 건물 앞,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공동행동의 활동가들이 마지막일지 다시 처음일지 모를 집회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매일 직장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버스를 타고 의회로 달려가 집회에 참석했고,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학생인권조례의 통과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날 밤, 기즈베(친구사이 사무국장)와 저녁을 간단히 먹고 바 프렌즈에 나란히 앉아있노라니, 주민 발의를 위해서 서명운동을 벌였던 일, 원안을 지켜내기 위해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점거 농성을 벌였던 일, 야간 거리 집회 등 지난 몇 개월 간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갔다.
# Scene No.1. 2011년 겨울. 바 프렌즈.
“기즈베, 참 우리 고생했다. 그런데 고민이 드는 부분도 있네”
“뭐가요?”
“성명서도 쓰고 차별사례집도 만들고 했는데,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와 실태를 드러내고 근거를 제시한 문헌이 왜 두 개 밖에 없냐?”
“정말 이 두 개 논문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운동 했을까 싶어요.”
학생인권조례는 그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었다.
물론 성소수자를 존엄과 존중 그리고 평등으로 대우하라는 상식적인 명제를 위해서, 왜 당사자인 우리가 근거까지 만들어야 하는지 하는, 억울함도 없지 않았지만 말이다.
1. 즐거운 뒤풀이, 고민하는 뒤풀이...
친구사이의 의사결정기구는 모든 회원이 참여하는 정기모임과 운영위원 및 사업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운영회의가 있다.
매번 서너 시간 운영회의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어김없이 뒤풀이 장소인 프렌즈나 포장마차 본드네 등에 들른다. 뒤풀이에서는 이런 저런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부터 과거 스캔들, 회의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아이디어, 그리고 현재 삶의 고민들, 친구사이에 대한 걱정과 우리 미래에 대한 상상 등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진다.
# Scene No.2 2012년 초. 운영위가 끝난 후.
“친구사이 사업도 이제는 근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실 지금까지 언니/형들의 경험과 욕구를 기반으로 활동을 했지만, 친구사이가 인권단체이면서 대중단체이기 때문에, 더더욱 게이 커뮤니티의 결핍과 욕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커뮤니티를 게이로 한정짓지 말고 성소수자로 넓히자.”
“이런 일은 국가나 서울시가 해야 될 일인데, 참 우리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다니!”
“돈이 많이 들겠네.”
“다음 달 운영회의에서 논의하게 기획서 한 번 써봐.”
“말 꺼낸 네가!!”
2. 뒤풀이 중? 아니, 일하는 중.
친구사이는 20년 동안, 스스로의 경험과 욕구를 기반으로 리더십 혹은 선택과 집중 혹은 올해의 기조 혹은 단체의 욕구를 중심으로 활동을 벌여왔다.
인적 재정적 자원이 열악했던 상황을 고려하자면, 이런 활동 방식도 가장 최선의 선택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또한 지난 20년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체의 정신- 자긍심, 공동체, 변화-을 확산시키며, 회원들로 하여금 강력한 신념과 소명의식을 불러일으키려면 기존의 활동 방식으론 한계가 존재한다.
친구사이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 혹은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2년 5월 LGBTI 욕구조사 용역 발주 모습
# Scene No.3. 종로 풍년집.
“요즈음 어떻게 지내니? 삼겹살이랑 소주 한 잔 하자”
“네 형. 7시쯤 만나요.”
몇 시간 후......
“친구사이 활동 해보니 좀 어떻니?”
“좋았어요. 나와서 이런 저런 일들 보고나니 몰랐던 부분이 많았더라구요.”
“너에게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친구사이에서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를 하려고 해.“
“그 사업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친구사이는 인권단체이면서 게이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대중단체잖니. 대중단체로서 커뮤니티의 사회적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삼는다면, 활동을 더 촘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내년이면 20주년인데 새로워지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 거 같아.”
“친구사이에서 직접 하는 거예요?”
“아니,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법정책 연구회(이하 ‘소지법’)라는 연구단체에 용역을 줄 거야.“
“네...”
“100만원만 주렴”
“어~~ 형! 고건 너무 많구요”
“그렇지. 미안...”
(옆에서 듣고만 있던 누군가가 끼어든다.)
“형! 저번에 가게 옮기면서 돈에 여유가 생겼어요. 제가 좀 후원할게요.”
연구조사 사업 총 예산은 3천만 원이었고, 1천만 원은 단체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합의를 했다. 나머지 2천만 원과 결과 보고 이후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추가 예산이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전화요청과 저금통 모으기 등의 내부 캠페인이 2012년 한 해 동안 진행되었고 모금 목표액의 65%를 친구사이 회원들의 십시일반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모금은 그렇게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들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3년간 인고의 과정을 거친 2014년 초, 연구조사 사업은 마무리되었고 소지법과 친구사이는 수차례 간담회 등을 거쳐 이에 대해 다양한 활용 방안을 고민중이다.
조만간 연구사업의 결과물이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고 모금은 진행중이다.
후원을 이미 하신 분들도, 아직 후원을 망설이고 있는 분들도, 다시 한 번 후원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지난 4월 5일 진행한 친구사이 회원 및 욕구조사 후원자 대상 내부 설명회
3.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뒤풀이에서 더 이야기하자.
* LGBTI 욕구조사의 의미 *
첫째, 이 연구 보고서를 통해서 ‘친구사이는 커뮤니티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라는 철학 혹은 미션을 합의할 수 있다.
둘째, 이 연구 보고서는 커뮤니티의 욕구 혹은 외부환경을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서 친구사이 등 커뮤니티의 ‘위기’ 와 ‘기회’를 동시에 볼 수 있고, 외부환경 욕구와 변화에 맞추어서 내부자원을 어떻게 개발하고, 분배할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셋째, 이 연구 보고서를 근간으로 한국의 LGBTI에 대한 국내외적인 관심 및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연구와 성과를 촉진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 이 연구 보고서의 결과 및 시작에서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온전히 친구사이의 몫이 아니라 성소수자 커뮤니티 전체의 경사이기도 하거니와, 아낌없이 후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후원회원들, 연구자들, 멀리서 자문을 해 주셨던 교수님들과 활동가과 공유함으로써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
친구사이는 회원조직이고, 회원들의 힘이 곧 친구사이의 힘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새로운 생각들이 모여서 성장을 만들고 변화를 도모해 왔다.
이번 성소수자 커뮤니티 욕구조사 역시 소지법이 해석한 연구결과물을 그대로 발표하기보다는 친구사이가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연구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더 많은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해석과 판단 혹은 리더십보다는 우리 모두의 리더십과 합의가 더 강력한 신념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뒤풀이 가서 이야기 합시다!
국수와 지짐이로 고고!!
T/F팀 팀장 / 재경
저 자리에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