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장면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영화 <필립 모리스>는 담배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끊기 어렵다는 점에서 담배보다 지독한 사랑 얘기다. 그것도 좀 거시기한.
스티븐 러셀(짐 캐리)은 토끼 같은 아내와 딸을 둔 가장이고 밖에서는 성실한 경관이며 일요일이면 성가대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낮 이야기다. 밤에는 클럽을 출입하고 가끔씩 가짜 출장도 간다. 이중생활이 어디 쉬운가. 어느 날 차를 몰고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그만 꽝, 자동차 입맞춤이다. 119, 아니 911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결심을 한다. ‘한번뿐인 인생 착하게 살자.’ 철나자 죽는다더니, 죽을 뻔하자 얻은 깨달음이다. 이른바 커밍아웃. 그는 게이였다.
연인과 함께 휴양지로 이사해 보란듯이 산다. 말이 그렇지 당당하게 살기 쉽지 않다. 꾀죄죄 월급으로는 어림없다. 쪼금 생각을 바꾸면?
슈퍼에서 식용유를 바닥에 몰래 붓고 넘어지기, 에스컬레이터에서 다이빙하기…. 몸이 좀 고생이지만 엄청난 보험금이 나온다. 가짜 신분증으로 플라스틱카드 몇장 만들면 은행돈이 긁는 대로 나온다. 물론 들키지 않으면 그렇다는 말씀.
손님이 와 계시네요? 회사 여직원의 귀띔을 듣고 보니 유리문 너머 어른거리는 정복경찰들. 도망치려 할 때는 엘리베이터도 더디다. 결국 전직 경찰관은 현직 경찰관에게 연행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 기질이 어디 가겠는가. 그 험악한 동네에서 요리조리 뺀질이가 되어 유쾌하게 잘도 산다. 어느 날 유리 칸막이 너머 어른거리는 청순가련, 순진무구한 블론디. 운명이네요. 연인 필립 모리스(유언 맥그리거)와의 만남이다. 별이라도 못 따줄까. 이후 그의 삶은 모든 것이 모리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아이큐 169인 그의 머리도 팽팽 돌아간다. 연인의 달콤한 잠을 위해 옆방 꽥꽥이를 때려주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그는 오로지 모리스를 만나기 위해 탈옥하고 변호사를 사칭해 연인을 빼낸다.
영화는 실화다. 1980~9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재 사기꾼에다 탈옥의 귀재 스티븐 러셀 사건이 바탕이다. 그는 실제로 수차례 탈옥을 하였으며, 가짜 변호사로서 승소를 했으며, 가짜 신원보증으로 보험회사의 이사가 되어 80만달러를 챙기기도 했다. 현재 14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중. 진짜 자신이 누군지 모를 정도로 점철된 사기 뚜껑 안에는 알콩달콩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
러셀이 되기 위해 두 주 동안 토마토 주스와 물만 마시며 다이어트를 한 짐 캐리가 모리스를 맡은 유언 맥그리거와 영화를 찍으면서 진짜로 키스를 했다나 어쨌다나. 24일 개봉.
그래도 한번쯤은 보고 싶은 영화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