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마님이 짝사랑했던 이성애자, 뻐꺼지 남자가 얼마 전에 독립 다큐 전문 배급사인 '시네마 달'이라는 영화사를 차렸어요. 앞으로 극영화 장편도 제작한다고 하더군요.
그 배급사가 처음 개봉시키는 독립 다큐 영화입니다. '워낭소리'를 배급했던 인디스토리와 공동 배급이고요.
2월26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일본을 호통치다, 일본을 감동시킨
조선인 위안부 송신도의
뜨거운 10년의 기록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2008 하반기 아트플러스시네마네트워크 개봉지원작
제 목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제 작 :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배 급 : 인디스토리
공동배급 : 시네마 달
감 독 : 안해룡
러닝타임 : 95분
개봉일자 : 2월 26일
이 영화의 수익금 일부는 ‘전쟁과 여성인권을 위한 박물관’ 건립에 기증됩니다.
(전쟁과 여성인권을 위한 박물관
http://www.whrmuseum.com) ★ Intro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했던 시대
그 전쟁에 강제로 끌려갔던
조선인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반세기의 침묵을 깨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 여성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
10년 동안 재판을 하면서 그와 함께 싸웠습니다.
재일조선인 위안부 송신도의 투쟁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 About Movie
일본을 호통치다, 일본을 감동시키다!
따끔하지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송신도표 호통
일본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 ‘커밍아웃’한 유일 생존자인 송신도 할머니는 위안부 관련 여느 다큐멘터리에서 보아왔던 할머니들과는 다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통해 봐왔던 피해자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리는 할머니. 그런 만큼 할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첫 인상은 예사롭지 않다.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 사람들에게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게 생겼다.’‘여태까지 알고 있는 할머니들과는 달라, 재판을 함께 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란 인상을, 기자들에게는 ‘아주 거칠어 보였고 피해자답지 않은 분노와 웃음…’‘거침없는 말의 위력을 지닌…’‘마치 네 까짓 게, 내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있을 성 싶으냐’란 느낌까지 안겨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믿을 수 없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할머니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원모임이 만나 일본 정부를 대항한 싸움을 함께 시작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자연스럽게 회복해나간다.
어떠한 보상보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재판을 시작했던 할머니는 자신의 상처를 넘어 모든 사람들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두 번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마라.”는 할머니의 외침은 단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써의 호소가 아니다. ‘전쟁’에 있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인들과 위안부였던 그녀들, 모두가 피해자였다는 것이 그녀의 외침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뤘던 상당수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줬던 희생자들 아픔에 대한 동조, 일본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그렇게 때문에 일본을 호통치던 당당한 그녀의 목소리는 일본 전역을 감동으로 물들일 수 있었다.
★ About Movie
우리 밖, 또 하나의 ‘우리’를 만난다!
일본 시민들의 힘,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1992년 1월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의 관여를 입증해 주는 정부 문서가 발견된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위해 일본의 네 시민단체 공동으로 ‘위안부110번’이라는 핫라인을 개설한다. 이때 익명의 제보자로 인해 미야기현에 있는 한 위안부 피해자의 정보가 접수되고 그것을 계기로 송신도 할머니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송신도 할머니의 증언 집회로 재판 소송 의지가 확인된 후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발족, 송신도 할머니의 피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재판의 의미와 목표를 일본의 여론에 호소하였다.
여느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국어’로 듣는 증언이 아닌 ‘일본어’로 직접 전해지는 송신도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 시민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깨우침을 주었다. 송신도 할머니의 재판을 기록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1년 동안의 모금 활동을 통해 일본에서 6천 만원이 넘는 모금이 이뤄졌고, 2007년에 열렸던 모금 공연에는 100여명의 관객이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송신도 할머니와 재판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 기록 영화 제작에 함께 했고, 영화가 완성된 뒤에는 지역의 자주 상영회를 조직해서 송신도 할머니의 존재를 알리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자 노력했다. 일본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것이 바로 이 다큐멘터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힘이다. 일본의 시민단체와 개인, 670여명의 자발적인 모금과 참여로 만들어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기존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와 전혀 다른 출발을 보여준다. 완성된 다큐멘터리는 2007년 8월, 도쿄에서 첫 상영회를 열었고 작년까지 80여 차례가 넘는 상영이 일본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 About Movie
2009 희망다큐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다큐프렌즈, 문소리와 김태용 감독!!!
새해 첫 다큐로 포문을 연 <워낭소리>의 감동을 이어나갈 2009년 희망다큐프로젝트 두 번 째 작품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또 다른 빛깔의 감동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인디스토리, 시네마 달, 키노아이 등으로 구성된 ‘독립영화배급사네트워크’(가칭)는 2009년을 다큐멘터리의 해로 선언하며 희망다큐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올 한 해 개봉할 다큐멘터리를 후원해 줄 ‘다큐프렌즈’를 각 작품마다 선정하여 열렬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워낭소리>의 다큐프렌즈 방은진 감독과 권해효에 이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다큐프렌즈는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과 문소리가 자처했다. 특히 문소리는 국내 정식 개봉하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나레이션을 맡아 다큐프렌즈로써의 열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선사할 다큐프렌즈의 활약이 기대된다.
★ People
“바보 같은 전쟁은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격렬한 성격. 날카롭고 거침없는 입담.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그녀는 알고 보면 농도 잘 던지고, 잘 웃고, 화도 잘 낸다. 7년간의 위안부 생활, 그리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 재판. 지원모임과 함께 한 10년의 시간 속에서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그녀를 만난다!
송신도 할머니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의 식민 통치하에 있던 1922년 조선 충남에서 태어났다. 16살, 부모가 정한 결혼이 싫어서 혼례를 올린 첫날 밤, 신랑에게서 도망쳐 가출했다. “전장에 가면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가 된 그녀는 중국 중부 무창의 ‘세계관’이라는 위안소에서 일본군의 “위안”을 강요당했다. 옆구리와 넓적다리에는 당시 군인에게 칼로 베인 상처가, 팔에는 ‘가네코(金 子)’라는 위안부 당시의 이름 문신이 그대로 아직 남아 있다. 군인에게 맞아 고막이 찢어졌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현재는 보청기 없이는 잘 들을 수도 없다. 위안소에서 두 남자 아이를 출산했지만 키울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남에게 맡겼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일본 군인의 꼬드김으로 일본으로 가지만, 하카타로 쫓겨나고 그 후 재일조선인 하재은과 만나 미야기현에서 살게 되었다. 일본에 생존하고 있었던 위안부 피해자의 첫 제소였던, 1993년 4월 5일 소송 이후 각지에 초청되어 증언, 강연, 대담을 하고 한국, 필리핀 피해자들과 함께 국회 앞에서 농성과 시위에 참여해왔다. 1997년 12월 제9회 타다요코반권력인권상을 수상하였다.
★ People
“할머니, 다 같이 약속해요! 다 같이 하는 거예요!”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람들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은? 그들이 송신도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1992년 1월에 개설된 신고전화 “위안부 110번”을 통해서였다. 그 후 할머니가 재판을 하기로 결심할 때까지 1년의 세월이 필요했고 같은 해 말, 재판을 하겠다는 할머니의 의사에 따라 다음해(93년) 1월 23일, 재판은 물론 재판 지원 같은 것을 해본 적도 없는 시민들이 모였다. 대표도 두지 않고, 사무실도 두지 않고, 상근 직원도 두지 않는 ‘3무(無) 원칙’에 따라 ‘재일 조선인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지원모임은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수많은 강연과 집회를 빠짐없이 기록해왔다. 이것은 결국, 안해룡 감독이 그들에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하게 된 동기가 된다. 지원모임이 결성될 당시 1살이던 멤버들의 아들, 딸이 이젠 14살이 되었다. 그들이 송신도 할머니를 가족처럼 함께 한 세월도 15년이 넘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그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계속 하면서 회보를 제작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일본 각지의 시민단체를 통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상영되는 것을 물심양면 돕고 있다.
★ Director
Director 안해룡
전쟁 후의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 강제노동, 사할린의 잔류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한국의 기지문제 등재외 한인들에 대한 관심을 폭넓게 표현하는 영상 저널리스트. 진보적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집단인 아시아프레스 서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감독의 말
집회를 마친 후 뒷풀이 장소. 생일을 맞은 지원모임의 한 멤버에게 생일 케익이 건네지고, 송신도 할머니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서 그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한 곡 선사한다. 지원모임이 간단한 편집을 부탁하며 나에게 건넨 DV 테잎 속에서 마주한 이 장면에 대한 잔잔한 감동이 지금의 영화를 가능하게 한 힘이었다.
비디오에 담겨 있던 송신도 할머니의 발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피해를 넘어서서 전쟁 반대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이 발언들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온 몸에 묻어둔 채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에서 보낸 50여 년의 세월 동안 강요된 침묵의 시간 속에서 예리하게 다듬어진 것이었다. 재판 과정은 온몸에 묻어둔 응어리진 진실을 세상에 토해내는 과정이었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송신도 할머니가 재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영화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는 송신도 할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닌 헌신적으로 재판을 지원해온 지원모임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내고 싶었다.
가혹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지혜롭고 건강하게 이겨낸 여성들의 순수함을 영화에 담고자 노력했다. 이 영화는 송신도 할머니와 지원모임 멤버들의 함께 해온 시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에 반대하며 여성차별, 민족차별, 계급차별의 3중고라는 역사적 편견과 집요하게 싸워온 여성들의 이야기다.
송신도 할머니는 이야기한다. “재판에는 졌지만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이 발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경종이자 함께 싸워나가자는 독려의 메시지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http://blog.naver.com/songs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