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젤
6살난 여자아이의 눈에는 아이샵에서 배부하는 젤이 치약으로 보이나보다.
오늘 누나집에 저녁 먹으러 갔더랬다.
호기심 많은 내 조카가 내 가방을 뒤지더니 아이샵에서 배부하는 콘돔&젤 세트를 꺼내들며 '삼촌 이게 모야? 치약이야?'라고 했따.
다행히도 50cm 떨어진 거리에서 매형은 에스비에스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를 보고있었고,
누나는 저녁 준비하느라 바빴다.
4살난 남자아이는 그나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실실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젤을 집어 넣고 실실 웃으며 '응. 치약 맞아.' 했다.
내 조카가 하루빨리 진실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2. 스튜어드
저녁먹고나서 매형과 누나와 함께 맥주 한 잔을 걸치고 있었다.
갑자기 스튜어드 이야기가 나오더니 누나는 나보고 스튜어드를 해보란다.
그러면서 나의 강점이 얼굴이란다.
그러면서 드는 3가지 생각.
아직도 스튜어드는 얼굴만 잘나면 되는구나.
그리고 내 얼굴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다는 아픈 현실.
그렇지만 더욱 안쓰러운 것은 30대 중반이라는 사람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트렌드 뷰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 얼굴의 시장성은 이미 지났다. 20년전이나 가능할 소리를 우리 누나는 하고 있다.
물론 스튜어드가 얼굴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과학의 힘을 받지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는 내가 트랜드 셋터 처럼 통한다.
트랜드 홀릭도 아닌데 트랜드 셋터라니. 제발 눈좀 달고 살았으면 좋겠다.
3. 강남역.
추석전날 누나집에 가기 싫었다. 벌써 이러면 안되겠는데 했는데. 벌써 그런다.
누나는 자고 가라고 했지만 싫었다. 잠들기도 힘들고,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편하게 대하고 싶은데 내가 먼저 불편해한다.
버스를 타고 나온후 강남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강남역까지 걸어가능 동안 유명 커피 전문점 4곳을 차례로 지났다.
미국식 스타일 답게 재즈가 흘러나오고.
노트북을 함께 보는 연인들.
비오는 거리를 보며 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
내게는 왠지 추석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추석 전날 강남역을 지나고 있을 일이 없어서였고.
토요일과 추석연휴가 섞여 있을 때 나는 추석이 더욱 중했다.
그런데 이제는 토요일처럼 추석 연휴를 즐길지도 모른다.
추석 때 마다 커피 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켜며 휴일을 보낼지도 모른다.
왠지 그게 지금은 더 편하다.
언뉘는 얘 아부지가 차례 모시러 온김에 청계천 구경하시고 싶으시다구 해서
어제 시청에서 용두동까지 걸어간담에, 누나네 가서 기차표 전해주고,
인천까지 가서 파견나온 군대동기 술사주고 왔어! 얘!
어디서 호사스런 오후를 보내구선~~~
근데...평상시에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휴일날 이렇게 몰아쳐서 친구건, 가족이건
인간관계 관리를 하게 되는 것 같아. 휴우우우우~~~그래도 몇개월 안남았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