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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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소위 '진보'라는 수사 근처를 좌우 갈짓자로 바삐 행보하는 많은 사람들 중 일부가 종종 생각없이 뱉어내는 폭력적인 문장들 속에서 가장 갑갑한 것 두 개를 솎아내라고 한다면,

1. 동성애 옹호가 진보냐?
2. 니네들이 당하는 피해가 뭐냐?

정도로 간추릴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좌측을 선점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민주노동당 안쪽에서도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소리이며, 실상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랜 시간 동안 체내화된 무의식 틈새 속에 이런 의심들이 고여 있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곤 합니다.

다소 무리가 있긴 하지만 거칠게 요약하자면 동성애자 인권 운동은 가시성/비가시성의 긴장 속에 놓여 있습니다. 침묵은 곧 죽음이다, 라는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의 오래된 정치적 구호가 의미하듯 자기 존재를 세상 속에 드러내는 행위가 곧 정치적 사실로 전이되는 것의 특이함이 곧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컨텍스트를 좌우하는 바, 대부분이 부득이하게 '투명인간'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의 실존적인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쉽게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저는 당신들이 모르는 투명인간들의 어떤 학교에 관해 대략적으로 묘사해드릴 생각입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2에서 동성애자와 관련지어 설득력있게 묘사해낸 뮤런트(돌연변이)들의 학교를 상기해도 좋습니다. 당신들이 모르는 투명인간들의 학교는 존재하며, 당신들의 그 시덥잖은 질문들로 인해 더욱 가시성이 약화된 어린 존재들이 그나마 초인적인 끼와 웃음으로 키득거리며 즐거워할 한 순간의 학교가 내일(5일) 7회째 그 문을 열 예정입니다.

98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가 처음 열렸습니다. 처음 그 학교를 커뮤니티에 제안하고 구성했던 것은 한 장의 유서 때문이었지요. 여고생 두 명이 아파트 난간에서 손을 잡고 동반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였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가 싫다."

신문을 읽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던 것은 그 유서 내용이 가슴에 사무친 탓도 있겠지만 정작 제 자신이 그들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이중의 따돌림을 가한 성인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성년자 유혹이라는 이성애자들의 의심의 눈을 존재론적 안위를 위해 그대로 베껴 단 성인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도 청소년들은 따돌림 신세였고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못내 이중으로 꼬여 있었던 겁니다.

지난 7년 동안 학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목도한 고통의 흔적들은 참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학교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기거할 곳이 없자 공원 화장실에서 새우잠을 자던 학생, 손목에 그어진 자살 기도의 흔적들, 집에서 뛰쳐나와 잠 잘 곳을 구걸하던 학생들,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해 학교를 뛰쳐나오거나 커밍아웃 후 집에서 쫓겨난 학생들, 심지어 작년에는 한 여학생이 극도의 절망감으로 유리를 삼킨 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요.

이들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줄 수 있는 준거 집단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인정 체계가 부재한 가운데(심지어 성인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조차!), 호모포빅한 주변 환경에 옥죄어 있는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침묵의 쥐구멍으로 숨어들어가거나 자신을 자학하는 것, 사회적으로 강요당한 이런 선택지가 '빵이 아니면 죽음을'이란 레토릭과 닮아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겝니다.

학교 반경 100m 이내에 동성과 손을 잡고 다닐 수 없는 교칙이 버젓이 존재하며,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면 스스로 친구들의 왕따에 시달려 자퇴를 하거나 아예 학교에서 정학을 내리고 선생이란 작자가 친절하게 직접 구타를 하는 경우도 버젓이 존재하고, 집에 알려질 경우 머리칼이 잘려지거나 심하게 두들겨 맞은 채 내쫓겨지는 비극이 무미건조하게 자행되는 곳, 그곳이 바로 여기 한국입니다.

한국에서야 제대로 된 통계가 없지만 미국의 경우 청소년 자살 기도자의 40% 안팎이 바로 섹슈얼리티의 고민과 호모포빅한 환경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뉴욕 홈리스의 1/3이 이런 사유로 집을 뛰쳐나온 청소년들이란 통계도 나와 있습니다. 2003년 정식 고등학교로 인준된 헤트릭-마틴 재단의 하비 밀크 학교The Harvey Milk School는 바로 이런 성 소수자들을 위한 대안 학교인데, 뉴욕 거리를 떠도는 성 소수자 청소년들을 위해 기획되어진 학교이지요.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는 청소년 이반들의 외로움과 침묵, 요컨대 정치적이랄 수밖에 없는 강요된 외로움과 진저리나는 침묵의 기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들 투명인간들이 돼지저금통 털어 그 먼길 무릅쓰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초조함으로 학교 문턱에서 심호흡을 깊이 하며 마침내 문을 힘껏 미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순히 처음 보는 친구들의 웃음 속에서 자기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입니다. 겉만 요란한 인권운동 역사나 자긍심 프로그램 때문이라기보단 그저 처음 보는 같은 뮤런트의 밝은 눈짓 속에서 자기 삶과 실존을 긍정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모르는 어떤 학교의 풍경입니다. 청소년의 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검열 문서부터 챙겨드는 당신이 모르는, 또 동성애자 인권 이야기만 나오면 "니네가 당하는 피해가 뭐냐? 동성애 옹호가 진보냐?" 라고 아둔하게 따져묻는 당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엄연히 실재하며 그 어떤 곳보다 큰 웃음 소리가 나는 학교인 게지요. 그간 학교를 거쳐간 친구들이 이제 어연번듯한 대학생이 되어 학교 스텝으로 일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서로 삶을 보듬는 그런 학교인 게지요.

그러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의 웃음을 빼앗지는 맙시다. 이제는 님들이 침묵을 통해 배워야 할 때입니다.  


2004-08-04

프란체스카 2005-03-29 오전 06:40

발제문 쓴답시고 이래저래 예전에 쓴 글 뒤적이다가 나왔네요. 작년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 즈음에 모 웹사이트에 쓴 글입니다. 부족한 글이긴 하지만... 후원의 밤도 있고 하니 해서.... 논조는 이성애자들에게 향하는 거라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음.... 오늘 드뎌 프란체스카 하는 날.... 이따 보자, 얘들아.

2005-03-29 오전 06:45

새벽쯤에 홍보물 만들께요. 많은 홍보 부탁 드리고....
후원의 밤에 많이들 놀러 오세요.

저켠 2005-03-29 오전 10:53

아웅, 발제문 쓰시랴 홍보물 만드시랴 고생이 많으세요, 형. ^^
형~~ 지!! ^^

2005-03-29 오후 14:18

저켠아.... 지?
음. 형 O지?
J로 시작되는 거.... 고거.... 그런 거야?

플래쉬 홍보물은... 음... 피곤해서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당. 벌써 다섯 시 20분. 내일 밀리언 양이랑 상의하고 만들께... 미안....
홍보물 컨셉을 안녕, 프란체스카로 잡았는데..... 흠... 암튼.... 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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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