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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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12-23 23:22:23
+0 704


Francis Bacon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프롤로그 삼아 서두에 걸어놓은 베르톨로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이름에 관한 영화다.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이 거대한 익명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서로 이름을 교환하는 것은 어떤 의미의 영도에 발을 디딛는 일인가. 서로 육체를 탐하고 심장처럼 따뜻한 진실을 말할지언정, 이름을 발설하지는 말라. 허무의 경계에서 어느덧 생의 의지를 다시 탐하기 시작한 말론 브란도가 기어히 금기를 깨뜨린다.

"이름이 뭐야?"

그 순간 말론 브란도는 총에 맞아 비실거리며 베란다에 나가 껌을 창살에 붙히며 죽어간다. 이름을 발설하지 말라.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포르노그라피 어페어' 역시 이름에 관한 영화다. 이름을 발설하는 순간, 이 익명의 낯선 쾌락자들은 서로에 대해 감정이 생기는 것을 알아챈다. 서로 이름을 말하는 건 욕망의 극단의 경계에 선 위태로운 현대인들에겐 금기사항. 허름한 여관에서 만난 남녀는 서로에 대해 묻지 않기로 한다. 그들이 오롯이 교환하는 건 침대 위에서의 체액과 입김, 그것. 하지만 어느덧 서로 식당에서 음식을 함께 교환하고, 이름을 교환하는 순간 낯선 쾌락자들에게 구체성의 빛이 투여된다. 마치 말라 비틀어진 시체에 새 살이 돋듯 이름이 발설되는 순간, 살갗의 나이와 삶의 내력이란 구체성의 빛이 발설자의 윤곽을 느닷없이 창조해내고 만다. 갑자기 젖혀진 커튼은 밀실의 몰골을 완연히 드러내는 법. 이름은 호출. 타자와의 관계에서 구체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물쇠에 부딪히는 열쇠의 첫 번째 금속 마찰음. 이름의 교환처럼 파롤의 세계의 구체성을 적시하는 행위가 또 있을까. 파트리스 셰로의 '정사' 역시 이름에 관한 영화다.

점점 더 도시화가 진행되고 사람들 관계가 추상화될수록 이름에 관한 영화, 구체와 익명의 틈속에서 이름의 발설이 곧 비명이 되는 영화들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우울한 불쾌함처럼 가끔 처음 본 사람들이 내게 자신의 이름을 발설할 때 어떤 뒤틀리는 감정을 느끼곤 한다. 지금은 게으름 때문에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지만 나 역시 때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뒤엉켜 정사를 한 적이 있다.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정사를 끝낸 다음 날 아침, 함께 식당에 들어가 꾸역꾸역 입 속에 밥을 밀어넣다가 '당신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을 때, 혹은 땀 절은 몸으로 어둔 천장을 바라보며 나가라는 뜻으로 문을 열어 주기 직전 바싹 마른 입술로, '당신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을 때 온몸에 실핏줄처럼 돋아나는 통증. 순수하게 표백된 말초 신경의 욕망이 구체의 세계에서 또다른 욕망으로 태어나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겪는 순간을 지워버리는 비명.

당신 이름이 뭐예요?

하긴 이미 이름을 알아버린 자를 욕망하는 것만큼 버티기 힘든 고통이 어디 있을까? 그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곧잘 표현하지 않던가. 내 욕망을 목도하기 싫거든 차라리 내게 이름을 발설하지 말라.

200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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