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똥표랑 같이 친구사이에서 진행하는 차밍스쿨에 갔다왔다.
"식성이 어떻게 안 변하니?"
즉 식성에 대한 강의였다.
일단 현장스케치를 하자면 굳이 강좌라고 할 필요까지 없는 소소한 이야기 마당이었으며,
발제자의 "식성"이 뚜렷하게 드러난(적어도 뚱은 이 사람에게 말도 못붙이겠군..하고^^;;) 화기애애한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정작,
식성이 정말 변할 수 있을까 등을 궁금해서 찾았던 사람들의 기대감은 충족시켜줄 수 없던 강좌였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챠밍스쿨에 대해 기대를 해본다.)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생각할 꺼리들은 많았다.
어제도 나온 말이지만,
한국에서 게이가 자신이 게이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곤(커밍아웃할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
남자와 섹스를 한다는 것 밖에는 없다.
일주일간의 이성애적 지하생활을 벗어나 하루 한 번, 토요일마다 게이가 되버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증명이 되는 섹스와 연애는 필사적인 존재증명 방식이다.
어떻게 해서든 육체적 욕구를 풀어내야 하는 그 때,
발기도 되지 않을(것이라고 평소 생각해 온, 하지만 스스로 증명해 본 적은 없는) 남자와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우울하고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를 찾긴 찾아야겠는데...
뭔가 확실한 표식을 스스로 정한다면 찾아야할 보물의 범위와 공간이 한정되고 성공확률도 높아진다.
꼰대를 좋아하면 종로 꼰때바에 가면 되고, 뚱을 좋아하면 뚱빠.
젊은 세대를 좋아하면 이태원에 가면 되는 식으로.
그곳에 가서 자신의 마음을 끄는, 그리고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법한 사람을 만나는 것.
그런 식으로 식성은 체계화되고 공고화된다.
(오프라인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또 있다.
또 인터넷을 떠도는 포르노들은 식성별로 체계화되어 있다.)
식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실상이 이럴진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식성에 집착함으로 정말 좋은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몸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 쉽도록 스스로 정착시킨 식성이
오히려 그 사람들을 만나기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들어 뚱이 좋아 뚱빠에만 가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멋진 뚱이 항상 뚱빠에만 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뚱빠에서보다 다른 곳에서 뚱을 만날 때 더 반갑고, 연결될 확률도 높다.^^;)
식성은 누군가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내 경험에 비추워봐도 그렇다.
그동안 난 몇가지 이유에서 그동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1. 절대로 나보다 키가 크면 안돼.<-- 상대방을 내 품 안에 꼭~~~
2. 물론 몸무게는 60 이하 정도가 알맞지<-- 위의 이유에다가 부성본능 자극을 덤으로.
3. 나이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어리면 안돼.<-- 원래부터 나이 든 남자들을 좋아했음. 거기다 불안정한 사고를 거침없이 늘어놓는 철딱서니 없는 나와 비슷한 20대의 마인드를 무서워함.(동족거부현상)
그리고 이 말들을 그대로 실천하는 연애생활을 해왔다.
성공확률은 지독히 낮았지만 이 바닥이 원래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나이를 먹어도 귀여운 남자들은 하나같이 연상을 좋아하더군.ㅡ.ㅡ;)
그러나,
지금 난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90키로가 넘는 5살 어린 친구랑 사귀고 있다.
하도 안팔려서 눈을 외부로 돌렸다..는 식의 천박한 이유는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녀석인데, 그동안은 "식"이 안되서 그냥 친구로만 지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주변에 몇 가지 일들이 생기고,
함께 그 일들을 자조적으로 씹어대면서 여러가지 공감대가 형성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불연듯 그 녀석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이 확인된 순간 천천히 불이 피워오르더군.
^^; 뭐 그런 얘기.
일단 몸이 맞아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는...
일단 박부터 타고봐야 한다는 "육화된 게이 사랑 논리"는
사실, 위에서 말한 일상 속에서 게이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랑에 어울리는 표어같다.
(그들의 사랑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니까.)
따라서 식성이란 게이들만의 타고난 특질이라기 보단 오히려,
게이들에게 주워진 이분법적 삶을 통해 강요된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일부러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식성은 사랑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정말루.
고도의 미의식으로 무장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의 몸이란 사람에 따라 주는 느낌이 그렇게 거대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달릴 것 다 달리고 있을 것 다 있으면 "남자"로서의 느낌은 충분히 준다.
중요한 것은 그의 뼈다귀 길이와 그 위에 살이 어떤 모양으로 붙어있는 것인가는 아닌 것 같다.
사랑하면 그 몸도 저절로 사랑할 수 있다고 본다.
암튼 좋은 사람은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결론.
언제나 문제는, 우리가 너무 빨리 결론내려버린다는 것이다.
이성애적 지하생활이 하도 외로워서.
한번 보고 싶네요 히히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