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기온에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전철에서 내렸습니다.
직장까지 걸어가는 길엔 항상 사람이 붐빕니다.
요근래에는 오피스텔 짓는다며 무시무시하게 큰 차들이 인도쪽으로도
들어 옵니다.
어떤 이는 늘 그 시간에 서로 지나치지만 우리는 눈인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이들의 걸음걸이 속도, 가끔 담배를 피우며 다니는 모습들 속에서
어렴풋이 상황을 짐작할 뿐입니다.
대부분은 처음 본 듯한 얼굴들로 서로를 지나칩니다.
뿌연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눈 발이 금방이라듯 내릴 듯 한데 한 두 방울 손 끝을 지나치다
저 멀리 사라져버리고 나는 끝까지 응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 날 예쁘게 물들었던 가로수의 나무잎들과
건물들 사이로 들어오는 낮게 걸린 햇살로
이 거리에 아침은 유난히도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저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축복하듯
햇살은 그렇게 사람들을 감싸주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학창시절의 잊혀진 노래가 흥얼거려 집니다.
물안개란 노래로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이후 가수 데뷔를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해서 사라져간 가수의 노래가 입 밖으로 나옵니다.
" 멀어지는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리고 그 시절들의 감정들이 떠오르려 합니다.
과거의 감정이 내 온 몸에 기억되어서 어느 순간 떠오르는 일은
묘한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내가 나를 억압하고 버리기 때문에 사라져 보일 뿐
한 번도 잊혀지거나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친구사이 인권지원팀에서 오랫동안 고심해서 기획한
'HIV/AIDS 와 게이 커뮤니티' 가 열렸습니다.
욜님의 감염인 지원에 관한 실제적인 상식도 이번 기회를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고, 저 스스로와 친구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상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KNP+ (HIV 감염인 연합회)에서 대표님과 활동가 한 분의
소중한 이야기가 인상이 깊었습니다.
감염인으로서 게이커뮤니티를 바라볼 때 부당하다고 여겼던 지점들
, 감염 사실을 알게되면서 겪었던 일상의 이야기들, 담담히 말씀 하셨고
혹시라도 청중들이 부담될까봐 농담도 섞어가며 유머스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혼자서 짊어지고 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모습
, 큰 일을 치루던 중에 단체활동을 해야 겠다고 결심한 선택들이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내가 노래를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이의 진한 삶의 이야기가 내가 꼭꼭 숨겨놓은 과거의 감정들을
건드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래는 클라이 맥스를 가다가 멎었고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신호등 앞에 서 있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더 이상 헤매면 안된다는 사실을 안 사람처럼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걷습니다.
이 거리를 걸을 수 있는 현재 지금
감사한 존재들이 내 주변을 지나갑니다.
감사합니다.
멀리 인천에 사는 정열입니다.
뭔일있나?소주한잔이 필요하시다면 메신져 날려요.
그리고 뭘 자꾸 가지려고 함?
주시는데로 받으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