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내용 좀 김.. 3줄 요약 없음.. 귀찮으신 분들은 패스해도 됨.
작년, <종로의 기적>을 본 게 지금 찾아보니 12월 21일.
그땐 이혁상 감독이 제 불알-_-친구라서.. 친구의 첫 영화를 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갔지요.
정확히 11개월이 지난 지금… 저는 친구사이의 상근로봇입니다.
11개월 전에는 모 출판사의 과장이었습니다. 일이 재미있긴 했는데 페이가 참으로..;;; 연봉협상을 고민하고 있었지요. 잘 안 되면 다른 출판사로 옮길 생각이었어요. 그 전에는 영화 칼럼니스트였었지만 그걸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직장인 코스프레를 선택한 거였는데.. 뭐 기왕이면 돈 많이 주는 곳으로 가서 돈도 모으고 어쩌고..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종로의 기적>을 보았죠. 누구나 그렇듯 저는 친구사이의 얘기가 참 좋았어요. 무엇보다 영화에 나오는 코러스보이 언니의 기갈에 반했죠. 그래서 혁상이한테 언니 소개시켜 달랬더니 그때 막 시작한 트위터에서 트친소를 합디다. 누가 알았겠어요.. 그걸로 인생이 이렇게 바뀔 지. (아 놜 ㅋㅋ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네연..)
코러스보이 언니가 트윗을 했어요. 친구사이에서 일할 상근자를 모집하고 있다고. 솔깃했죠. 뭐 페이는 때려치운 출판사랑 같은데..;; 성소수자인권운동. 이거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냥 계속 어렵게 살아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고 면접을 봤는데 덜컥 붙었네요? 그렇게 2011년 2월 14일.. 유지나 과장은 상근로봇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꽤 힘들어요. 몸과 마음 모두... 아무래도 성별과 성 정체성 모두 다르니까요. ‘차라리 내가 동성애자였으면…’ 하고 수십, 수백번도 더 생각했어요. 호기롭게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앞장 서는 이성애자의 모범이 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나 그때 미쳤었나봐’ 싶기도 했구요. 동성애 인권운동 단체에서 일하는 첫 이성애자 상근자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무겁기도 하고. 제가 잘못하면 나중에 일할 이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들은 안 돼’ 같은 경험적 편견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에 조심스럽고 그래요. 어디 가면 튀는 거 좋아하고 요란스럽게 놀고, 개까칠하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여기저기 다 나서는 성격이었는데 처음부터 친구사이에는 그냥 가구나 도구 같은, 생선회로 치면 회 밑에 까는 무우채 같은 걸 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가끔 본성 나오긔.. 서로 당황하긔..) 두렵기도 했죠. ‘과연 이 사람들이 날 받아줄까..’ 생각보다 모두 살갑게 대해주시고, 그리 많이 미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아서 늘 고마워요. 그리고 전에 말했듯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너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구요.
그런데.. 아직도 전 멀었나봐요. ㅎㅎ 왜 이리 부족한 게 많은지..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일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제가 생각한 것에 반의 반도 못하고 있거든요. 면접 볼 땐 퀴어퍼레이드랑 지_보이스 공연 때만 바짝 바쁘고 한여름과 겨울엔 한가할 거라더닠ㅋㅋㅋㅋㅋㅋ; 애인 만들기는커녕 있는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그 좋아하는 야구장 한 번 못 가고. 그랬는데도 이러죠. 모임이나 기타등등에서 끝까지 남아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도 언제나 제일 먼저 자릴 뜨고 이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렸죠. 집도 멀고.. (택시 타면 16000원.. ㄳ) 담날 힘들고.. 그래서일까요. 뭔가 얇은 막 같은게 있는데 그걸 찢지 못하는 느낌. 그런게 있어요.. 섬 같은 기분이랄까. 짝사랑하는 기분도 가끔 들고.. 물론 다 제 탓이죠 ㅎ 저 원래 먼저 다가가는 것도 못하는 츤데레에다.. 뭐 기타등등.. 많이 모자라요.
<종로의 기적>을 11개월 만에 다시 보니 그 시간 동안 제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섭도록 실감했어요. 그 땐 그냥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죠. ‘와~ 퀴어퍼레이드다!’ ‘와~ 지_보이스 공연이다’ 이랬던게;; 어느새 ㅋ 저도 모르게 ‘내년 퀴어퍼레이드는 뭘 하지?’ 생각하고 있더라니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참 짧은 시간인데.. 이렇게나 변하는군요. 이젠 큰 변화가 없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저한테는 이게 또 하나의 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보고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주절주절 길게 넋두리 했어요.
솔직히.. ‘아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봐’ 싶을 때마다 따듯한 손을 내밀고, 다정하게 말 걸어준 분들 아니었으면 도망갔을 것 같아요 ㅎ 겨우 11개월 전에는 낯설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생각나고 혼자서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되었다는게 참 신기해요. 그리고 고맙구요. 그러니 짝사랑이어도 좋아요. 다들 많이 고마워요. 더 열심히 할게요. 마음에 안 들거나 그런 거 있으면 그냥 얘기해주세요. 더 노력할게요. 사랑하니까요. ㅎ 상근로봇 많이 애용해주세요 *^^*
지나누나 멋있어요!
사랑합니닷~! 지나누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