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도 다윈도 틀렸다…동성애-성전환이 진화의 원동력!
[프레시안 books] 조안 러프가든의 <진화의 무지개>
기사입력 2010-10-29 오후 6:49:11
10월 6일, 영상물등급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조진형 의원은 "남성끼리 목욕하면서 애무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있는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화 <친구사이?>에는 이와 같은 장면이 아예 없었다.
그렇다면 영화에 나오지도 않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가며 비난한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성애자 남성의 '19금' 상상력에서? 답은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지난달에 발표한 '동성애 영화 <친구사이?> 15세 관람가 판결을 규탄한다'는 성명서이다. 조 의원은 이 성명서의 한 구절을 그대로 읊었던 것이다.
그의 발언은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한 정돈된 논거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은 성명서에서 "동성애가 선천적이고 유전적이라는 근거는 거의 없"고, "동성애는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학습되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혐오는 이렇게 세련되게 한 국회의원에게 보지 않은 영화를 비난할 언어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 혐오 언어는 우리의 무지에 의해 지탱된다. 동성애가 유전적이라는 근거가 정말 없는가? 혹은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성 소수자의 인권 논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동성애는 학습되는가? 애당초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가 '정상'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서라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떠올렸다가, 내 안에 존재하는 거대한 무지를 느끼고 흠칫 물러서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독자에게 MTF(male to female : 남성에서 여성으로) 트랜스젠더이자 생물학자인 조안 러프가든의 책 <진화의 무지개>(노태복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는 풍성한 답을 내어 놓는다.
저자는 우선 '진화에는 다양성이 좋은 것'이라는 다양성 긍정 이론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범주인 암컷과 수컷을 사회적 범주인 젠더와 구분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유성생식에서 생식세포의 크기는 보편적인 이분법을 따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수컷의 정자는 작고 암컷의 난자는 크다는 기준으로 암수를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암수의 구분은 생식세포 크기 차원에서 끝난다.
저자는 많은 편견이 생식세포 크기 범주가 '성화된 생물체의 외모, 행동, 생활사'인 젠더 범주의 논의로까지 확산되는데서 출발했음을 지적한다. 해마와 같이 새끼를 수컷이 돌보는 '성 역할 뒤바뀜'은 자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이와 같은 성 역할 뒤바뀜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은 없는 식이다.
젠더 역할에 대한 이분법적 해석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컷이나 암컷의 고정관념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파랑볼우럭은 큰 수컷, 중간 크기의 수컷, 작은 수컷, 암컷 네 가지 형태를 갖는다. 이중 중간 크기의 수컷은 큰 수컷의 영역에 접근해 구애 행동 후 함께 산다. 큰 수컷은 작은 수컷은 쫓아내지만 중간 크기의 수컷은 쫓아내지 않고, 암컷이 함께 있을 때는 셋이 함께 구애 행동과 짝짓기를 하기도 하며 영역을 공유한다.
이에 대해 기존의 이론은 큰 수컷이 암컷인 척 하는 중간 크기의 수컷에게 속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낮에 작은 새우를 잡아먹고 사는 파랑볼우럭 수컷이 바로 옆에 있는 물고기가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구분하지 못할까? 그리고 정말 착각했다면 셋이서 함께 구애 행동과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비슷한 예로, 수컷은 색이 다양하고 암컷은 갈색인 알락딱새에 대해 갈색 알락딱새는 암컷 흉내쟁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람이 봐도 암수가 구별되는 마당에 새가 자기 종의 성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타당할까?'
저자는 이와 같은 기존의 속임수 이론은 한쪽은 흉내를 내고 속일 수 있을 만큼 교활하고, 다른 한쪽은 어처구니없이 속을 만큼 멍청하다는 비대칭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관점은 단지 중간 크기의 수컷과 구애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큰 수컷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배제하고 둘로 딱 떨어지지 않는 다른 모든 현상을 속고 속이는 생존 경쟁의 이형으로 몰아간다. 저자는 이와 같은 암컷 흉내가 '일종의 신화'라고 단언한다.
또한 인간이 못 알아봤거나 흉내에 속았다고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동성 간의 구애와 짝짓기도 자연에는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큰뿔양은 거의 모든 수컷이 동성애 구애, 교미에 가담하는데, 겉보기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은 동성 간 구애와 교미는 사육 양에서도 발견되는데, 오랫동안 이런 행동은 나중에 암수 간 교미를 위해 동성끼리 연습한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러나 동성애 숫양은 그냥 게이이지 게이인 척 하는 것이 아니다. 게이 숫양의 호르몬 반응을 보면, 게이 수컷은 다른 수컷을 암컷으로 여기지도 그렇게 반응하지도 않고, 그저 암컷과 수컷 중 수컷을 선택해 호감을 표시한다.
그렇다면 자연에서 다양한 젠더 관계가 성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처럼 재생산할 수 없는 관계는 다윈의 성 선택 이론에 따르면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예에서 보듯이, 자연에는 다양한 동성애 관계와 젠더 가족 결합이 있다. 다윈은 수컷들은 보편적으로 암컷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려고 다툰다고 했고, 현대의 이론은 설명을 위해 속임수와 흉내 내기를 남발했다.
러프가든은 이에 대해 '사회적 선택'이라는 다른 답을 제시하고, '사회 통합형 특성'이라는 말로 이를 설명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 중 하나인 보노보 암컷들의 다양한 동성애 활동이 그 좋은 예다. 보노보는 수신호로 선호를 알리고 서로의 생식기를 문지르고 서로 올라타며 같이 식사를 한다.
보노보는 왜 이런 활동을 할까? 보노보 암컷의 동성 섹슈얼리티는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함께 먹이를 나누어 먹고 수컷을 공격하는 등 무리의 혜택을 공유하며 더 잘 생존한다. 레즈비언이 아닌 보노보는 공유 자원에 접근하지 못해 생존이 어렵다. 단지 유전자 결정 단계의 문제가 아니다. 번식에 필요한 자원을 통제하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통제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정자를 배달하는 것보다 번식 기회의 획득과 거래가 중요하다는 이 관점에 따르면, 다양한 젠더의 존재는 비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
이 책의 2부는 다양한 동물들의 예를 지나, 생명들 중 특히 인간의 젠더가 언제 어떻게 결정되며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의 불확실한 편견들이 실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편견은 단지 성에 대한 편견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인간의 뇌가 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차 커졌다는 (어디선가 읽은) 상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뇌가 급속히 진화하는 사이에 기술은 거의 발전하지 않았고, 진화가 끝나고 나서야 기술이 발전했다. 남성과 여성의 뇌는 서로 비슷한데, 저자는 이런 유사성을 인간이 거의 동일한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을 위한 사회 통합형 특성의 하나라고 본다.
젠더 이분법의 근거인 'XX/XY' 체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록 성염색체 시스템은 이분법적이지만, 몸의 형태는 젠더들 간에 상당히 겹치고 심지어 교차할 수도 있다. 성 결정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하고, 모든 인간의 몸은 서로 다르다. 성적 이형성에 관계된 세 가지 신경세포 다발은 서로 독립적이다. 여기에 역시 독립적인 몸 유형까지 결합하면 그것만으로도 열여섯 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성적 지향은 단일한 주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거나 유전되지 않는다. 또 영국에서 성 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의 수에서 추정한 성 전환자 추정 비율과 인도의 약 100만 명의 히즈라(hijra) 비율은 비슷한 수치를 가리키는 바, 트랜스젠더의 비율도 인구 1000명 당 1명보다는 높다.
(히즈라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으나 거세 등의 방법을 통해서 남자의 성을 포기하고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힌두교 신앙의 전통 속에서 종교적 공동체로 인정을 받아서 존중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편집자>)
그렇기에 다양한 젠더는 돌연변이나 기형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다양성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이성애주의 이분법은 이들을 스스로도 기형이나 변태로 여기게 만든다. 특히 간성으로 태어난 경우 아이 당사자가 아니라 부모가 주도하는 성 결정, 유전자 결정을 통제하려는 욕망, 이분법 외의 현상을 질병으로 여겨 전형에 끼워 맞추고자 하는 사회의 압박은 치료할 필요가 없는 대상에게 치료를 강요하고 건강한 사람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 젠더, 섹슈얼리티와 사회적 선택 및 사회 통합형 특성으로서의 다양성을 본 후, 인간의 성 결정과 젠더 결정 과정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 일반적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통계와 기존 생물학에 대한 비판을 검토한 다음, 이 책은 성적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여러 문화의 예를 보여준다. 아메리카의 두 영혼 사람들, 폴리네시아의 마후, 인도의 히즈라, 고대 로마의 고자, 이슬람의 무나카툰, 인도네시아의 레즈비언 공동체와 멕시코시티의 베스티다, 고대의 성행위와 잔다르크와 같은 역사 속의 트랜스젠더……. 다양한 문화에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다양한 젠더 개념을 보여 주며, 학계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 연구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페미니스트인 비에링가는 자바 섬의 동성애자/트랜스젠더들이 전형적인 부치/팸의 양태를 보이자 충격을 받았다. 때로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방하는 성 소수자들은 급진적이거나 용감하지 않다고 비난 받는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이 생물학적인 성 결정론을 부담스러워하며, 트랜스젠더들이 다른 성으로 살기를 '선택' 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성이나 젠더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트랜스젠더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레즈비언 커플 중에서 남성/여성의 역할을 하는 이들을 '부치/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렇게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잣대로 나뉘는 레즈비언 커플이 있는 반면에 상당수 커플은 부치/팸의 구분이 불분명하다. <편집자>)
책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우리 사회의 성적 다양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해 알고 싶다면 퀴어아카이브(☞바로 가기)를 이 제3부를 읽고서 방문해 보면 생활에 밀착한 이해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한 장을 미국의 트랜스젠더 정책사에 할애하고 부록으로 정책 제언을 붙이고 있는데, 아직 이와 같은 논의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먼 이야기라고는 해도 너무 일찍 책을 덮지 말고 끝까지 읽어 보면 좋겠다.
또 책 말미 후주에서 소개한 미국의 성 소수자(특히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웹사이트에(☞바로 가기) 꼭 한 번 들러 보길 권한다. 동성애 혐오 발언이 무슨 피해가 될까 고개를 갸웃했다면, 이해의 결여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문제임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5월에 여자친구가 MTF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안 애인이 충동 살해한 사건이 기사화된 바 있고,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 이분법적 법제도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스스로 경계하는 바와 같이, 러프가든은 자연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적응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생물학자로서, 진화 과정에서 성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책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러나 성 소수자 이슈에서 '자연스러움, 섭리, 신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갖는 무게를 생각할 때, 이 모든 것이 일단 '자연스럽다'는 말의 가치는 가늠할 수 없을 만치 크고, 이 풍성하고 재미있는 책을 잘 다듬어진 한국어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때로 앎은 그 자체로 변화를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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