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영어회화학원에서 근무하다 외국인 게이들을 몇 명 알게 됐다.
그들 중의 둘은 커플인데 이태원의 근사한 집에 살면서 종종 나를 친구로서 초대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나에게 우정의 표시로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엔 여러 명의 한국인 청년들이 그의 집에 들러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대부분 예기치 않은 피사체가 될 때의 떨떠름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캐나다인 커플은 이들이 죄다 자신의 집에 와서
성관계를 맺은 한국인들이라고 했다.
그들 중에는 굉장히 잘생긴 청년들도 있었다.
왠지 누군가의 삶을 몰래 엿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고 말하며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나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그들은
비밀을 공개하기라도 하듯이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다.
사진 안에는 또 다른 한국인 청년들이 알몸으로
엽기적인(에로틱하지 않은) 사진포즈로 주눅 들어 있었다.
순간 구역질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전시된 그들의 육체를 볼 수 있는 나의 특권 말고
내가 그 사진 속 한국인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나는 한국법률로 타인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사진을 촬영했을 때
막대한 보상책임과 더불어 형사처벌을 당할 수 있다며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나의 말이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기더니
내가 이윽고 정색을 하며 이야기하자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다.
만일 고소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서 그 사진들을 잘게 자른 뒤 화장실 변기에 넣고 없애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귀중한 추억이자 보물이라며
나의 부탁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 순간 커플 중 하나가 나에게 성난 표정을 지으며 뭐라고 지껄였다.
순간적으로 겁이 바짝 났다.
난 상황을 극단적으로 하면 내게 불리할 것 같아서
우정을 가장한 취지를 설명하며 그들에게 사진을 없애도록 종용했다.
그들도 손해 볼 게 있다고 생각했는지 사진을 곧 가위로 자르더니
내가 보는 앞에서 변기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한국인들은 왜 사진을 찍혔을까.
옷을 입고 찍으면 괜찮다고 판단했을까.
옷을 벗고 찍은 사람들은 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국에서 게이로 지내는 게 답답하다며
외국으로 가서 외국게이와 동거하는 한국인들은 잘 살까 하는 생각까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