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길 아침 햇살이 아름다운 날들입니다.
저번 달에 피었던 목련은 언제 꽃이라도 피었냐는 듯이 무성한 이파리를 매일 매일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늘 생각은 천 길 만길로 흐르다가 연녹색으로 무성한 나무아래에서 호흡을 골라 봅니다.
이 시간 이 순간이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느껴보려고 합니다.
생소하고 낯선 것들이 참 많은 세상
무엇을 가지기 위해서 그렇게 애가 닳게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내가 쌓아 온 성이라는 것이 바람 앞에서 쉬이 허물어져버리는 모래성 같은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나'를 알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나'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으니, 내가 쌓아올릴 수 있는 성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 고령의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오로지 몸 하나와 입고 계신 옷이 전부인 분과 서로 종이에 글을 써가며 대화를 했습니다.
이 분과 나는 어떤 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이 지금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뭔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와서 답답해졌습니다.
생소하고 낯선 세상에서 어쩌면 지금의 상태가 이 분에게는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는 순간일테니
안심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한 사람의 생로병사를 생각해 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삶을 개인과 가족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하면서, 정작 이득을 보는 국가와 자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의문을 가져봅니다.
어쩌면 국가와 자본은 이러한 굴레를 떠나지 못하는, 그 속에서 경쟁하고 우열반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개인들만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러한 관점은 원시 사회부터 현대에까지 계속 반복되어 온 과정일 수도 있겠지요.
며칠 전에 산 수건 몇 장,치약, 칫솔, 비누 몇 가지를 종이가방에 챙깁니다.
고령의 그 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죠.
양말도 좀 사야할 것 같은데, 마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제 꿈만 꾸지말고 일을 작당해야 할 시기가 오기는 오는 것 같은데,
오지도 않을 미래를 꿈꾸고 정하고, 그 에너지를 느끼고, 자꾸 손에 잡으려하는 내가 무척이나 못마땅합니다.
가로수 길에 무성해져가는 나무와 햇살로도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 말입니다.
오늘은 공부할 주제를 몇 가지를 정했는데, 이러 저런 일로 하지 못했습니다.
술과 담배가 점점 공부에 방해가 되어가니 끊을 때가 오긴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