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언론은 한 사기 사건을 보도했다. 한 여성이 자신을 재벌아들로 사칭하여 여중생 A의 환심을 산 뒤, 일당과 함께 A의 부모로부터 A가 사람을 죽였다고 믿게 만들어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과 일당은 수십 차례 돈을 갈취하고도 모자라, A로 하여금 일본 성매매 업소로 취업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한다. 사기 행각이 3여 년 간 지속되는 동안, A는 일당 중 한 명이 남성인 것으로 믿었으며 자신이 실제 사람을 죽인 것으로 오해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사기 일당 개개인이 ‘동성애자’라는 점을 부각했다.
“재벌가 아들인냥 남고생 행세를 하며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과 그 가족을 속여 거액을 챙긴 혐의로 27일 경찰에 구속된 여성 동성연애자 사기단은 천진난만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철저히 농락하고 이용했다.” (“소녀마음 짓밟은 동성연애女 사기단” 연합뉴스 2007년 02월 27일자)
사기를 벌인 여성 일당이 A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남자 행세”를 했다는 것은 사건 보도에 중요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은 이 사건에서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상 별로 관련이 없기 때문에, 사건 보도에서 성 정체성을 거론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피해자 A에 대한 범죄 행각이 동성애를 이유로 한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일당 중 한 명이 남자 행세를 했다는 점에서 A의 이성애자 정체성을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만약 기자가 동성애자 여성이 남자를 흉내내거나 남장을 하는 존재라고 인식해서 이들의 성 정체성을 거론한 것이라면, 그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보여주는 일일 뿐이다.
각 언론들은 잇따라 이 사건을 보도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은 동성애자 권리운동 진영에서 수년 간 시정을 권고해 온 “동성연애자”라는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성 정체성은 비단 연애나 물리적 행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언론은 마치 이 같은 범죄 행위가 가해자의 ‘동성애’ 정체성 때문인양 보도했다. 특히 “‘무서운 동성애 여자들’-소설같은 사기행각 전모”(뉴시스), “소녀마음 짓밟은 동성연애자 사기단”(조선일보), “여성동성애자들의 재벌아들 행세하며 엽기”(스포츠조선) 등 제목부터 동성애자 정체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보도 행위는 사회적 소수자인 동성애자 전체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집단인양 매도하는 결과를 낳는다. 공정해야 할 언론이, 동성애자가 ‘이상하거나 문란한’ 존재로 읽히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되려 이용하여 선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사건이 이성애자 여성들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어땠을까. 언론들이 ‘무서운 이성애 여자들-소설같은 사기행각 전모’라고 보도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애자 집단은 사회의 다수 집단이므로, 범죄자의 성 정체성을 굳이 강조해 드러내어 매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은 범죄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서, 범죄자의 인종이나 지역, 장애 유무, 병력 등 특성을 공개할 때 자칫 사회에 만연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지 않을지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테면 모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마치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저지른 범죄인 것처럼 부각되거나 해당 국가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 집단 전체가 매도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보도에서 알 수 있듯, 언론은 오히려 동성애자와 같은 사회의 소수자 집단을 겨냥하며 편견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이 언론의 이러한 보도 행태는,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끔찍한 범죄 사건을 희화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사에선 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와 가족이 겪었을 고통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동성애자 집단에 의한 엽기 범죄라는 식으로 ‘가십’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언론의 레즈비언 관련 보도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이러한 보도행위가 자주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상담소 인권정책팀 고리 팀장은 “(언론이) 동성애자들이 연루된 사건을 보도할 때 유독 동성 간 성 관계나 폭력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공정성을 잃고 선정성을 높여 발행 부수를 높이려는 술수”라고 비판했다.
언론은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연관된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기존 사회의 편견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용하는 행태를 보여선 안 된다. 공정한 보도가 가능하도록, 동성애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부터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