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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이미 입지를 굳힌 이송희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지난 11월 개봉 이후 전국 관객 4만여 명을 동원하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2002년에 개봉했던 영화 <로드무비>의 흥행참패를 기억한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2일 영화를 관람한 소감과 한국 남성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인 <친구사이>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필자주> 사랑에 관한 지극히 통속적인 영화 가난한 청년과 부잣집 아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후회하지 않아>의 빤한 이야기다. 70년대 호스티스 영화의 남녀 역할을 바꾸었을 뿐 그 얼개가 같다. 그러나 그렇게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싸한 진실이 있다. 일찍이 '통속 작가'라는 평단의 혹평에 대해 작가 서머셋 모옴이 "이 세상에 통속이 아닌 이야기가 있던가?"라고 반문했듯이 이 영화는 통속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사랑, 열정에 대해 담담히 그릴 뿐이다. 두 시간, 조금 긴 상영 시간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는 잘 짜인 한 편 멜로영화를 본 감동으로 충만했을 뿐 거부감은 없었다. 우리나라 퀴어영화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웠던 적나라한 정사신도, 게이호스트바의 사실적 묘사도 따지고 보면 충격일 게 없다. 우리나라 성인업소의 어그러진 유흥문화와 전혀 다르지 않고 남녀 역할만 바뀐 게 아니던가? <친구사이> 대표 이종헌씨도 같은 시각을 내비쳤다(감독 이송희일은 <친구사이> 회원임). "저희 회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좀 있었어요. 굳이 게이호스트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릴 필요가 있냐고요. 하지만 전, 게이 사회도 일반 사회와 똑같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고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와 남자든, 여자와 여자든, 남자와 남자든 사랑 이야기는 같다. 사는 모양새도 같다. 따라서 동성애자는 성소수자일 뿐 사회 편견에 갇혀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이 영화는 감독의 치우침 없는 시선이 두 젊은 남자의 사랑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끔 유도한다. 감독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걸림은커녕 오히려 사실적 전개와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이 영화는 긴 상영시간에 비하면 전개가 빠르다. 따라서 영화 내내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러나 사랑한 남자를 산속 구덩이에 파묻으려는 마지막 이야기 전개 과정의 개연성이 좀 떨어진다는 흠과 그 부분 영상 호흡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전체로 보면 극히 작다. 오히려 이병훈의 수채화 같은 음악이 애틋한 젊은 사랑과 어우러지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저예산 영화잖아요. 아무래도 조명기구나 장치 등,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감독의 치밀한 계산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관객들 가운데 상당수는 여성이었고, 이 영화가 '동성애코드'에만 치우쳤다기보다는 열정에 불타 맹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랑'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영화 한두 편으로 사회 인식이 싹 바뀌지는 않겠지만
"동성애자 사회가 일반 사회와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여러분과 사는 모습이 똑같습니다. 우리 내부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같은 생각, 같은 모양새 사람들만 있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여러분 사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보헤미안 지수'라는 게 있다. 특정 지역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사는지 나타내는 지표로, 도시의 창조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위해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교수인 리처드 플로리다가 직접 고안한 지표를 말한다. 세계 패션이나 소프트웨어 산업, 그리고 문화적 측면을 선도하는 선진 도시들은 보헤미안 지수가 높다고 한다. 보헤미안 지수는 '게이 지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정지역에 동성애자가 얼마나 사는지 나타내는 지수가 게이 지수다. 하이테크 산업이 밀집한 창조적 중심지는 보헤미안 지수와 게이 지수가 일치한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나와 같지 않으면,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나와 생긴 게 다르면, 나와 사는 모습이 다르면 무조건 '함께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인식, 즉 '아군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구조가 우리 사회 가장 큰 병폐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살 만한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전국 개봉관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은 관객 몫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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