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헐리우드 SF 및 공포영화의 디테일에 많은 영향을 준 폴란드의 화가 벡진스키의 그림]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느끼면서 최후를 맞는
, 그런 행복한 사람들의 숫자는 극소수인 것 같다.
지난주부터 16부로 이뤄진 러시아 드라마 <아르바트의 아이들>(원작자 아나톨리 릐바코프)
시청하면서 끊임없이 생기는 의문들이 있다.
사람들이 결국 독재자와 폭군의 전횡을 막지 못하고 희생자들이 되는 원인이 무엇일까?
왜 저 불행한 시대의 사람들은 스탈린의 횡포에 제대로 저항을 못하고 비극적 최후를 마쳤을까?
자다가도 비밀경찰이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면, 이웃이나 지인의 고발에 의해
당장 짐을 싸고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밀고하여 비밀경찰의 신임을 얻어야 했던 사람들....
어렴풋하게 드는 생각은, 스탈린같은 잔혹한 폭군과 코드가 맞는 그밥의 그나물같은 인간들이
선량하며 타인을 생각하고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는 소시민들의 약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공략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가혹한 핍박과 말도 안되는 누명을 쓰더라도 당하는 이들이
더 이상 저항하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거부한다면, 이로인해 가족들이 피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기게 되며, 독재정권의 앞잡이들은 선한이들의 약점과 인간으로서의 인정을
통제의 도구로써 역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족에 대한 염려뿐만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안위, 그리고 동료들의 안위
,,등등 이런 것들도 강력하게 연대가 되지 않는 선량한 다수들이 잔혹한 인간이하의 소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우리가 가진 타인에 대한 호의를
통제의 고삐로 악용하는 기발한 악마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