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밤 친구사이 회원들과 함께 시청한 빌리티스의 딸들 관련 글을 썼었어요. 오마이뉴스 레인보우상담실에 올릴 글이었는데 써놓고 송고한후 몇 분뒤에 기자분이 전화로 글은 좋은데 상담글이라기보다 리뷰같아서 좀 더 세부적인 사례를 들어서 상담글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저도 그점에 동의해 오마이뉴스 '레인보우 상담실' 글에 맞는 상담글을 다시 써서 보냈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드라마를 말하고 싶은 말은 다른 말이었던 것 같아서요. 그 리뷰글과 함께 오늘 오마이뉴스 글도 함께 올려요.
오마이뉴스 '레인보우 상담실'
사랑하는 커플, '유언장' 쓰면 더 행복해진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8234
그리고 원래 보내려고 했던 글.
동성애자들, 사랑만 하고 살겠나?
태풍 무이파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8월 7일 밤 11시 우리들의 예쁜 게이 7명은 종로 낙원상가 근처 호프집 한 자리에 모였다. 10대, 30대, 50대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KBS 드라마 스페셜의 ‘빌리티스의 딸들’을 함께 보려고 단골 호프집 사장님께 좋은 자리 부탁하며 TV 한 대를 전세 놓은 것처럼 시청했다.
40대 초입의 한 언니(올해 34살인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게이들에게 형이란 표현보다 언니란 단어가 술술 나온다. 이 언니란 말을 하는데서 오는 쾌감은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19금 드라마가 왜 이리 착해빠졌냐며 현실성 없는 동성애드라마라고 한마디 했다. 친한 동생 커플들은 탤런트 한고은의 부치스러운 말투 하나 하나와 갑작스런 주먹 액션에 넘어가고 말았다. 20대 후반 커플은 50대 레즈비언 엄마(김혜옥 분)가 이제 결혼 하는 딸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친구들은 뭐가 그리 슬펐는지 눈물을 흘리는 서로를 보면서 한창 연애중인 서로에게 다시금 빠지는 듯 했다.
드라마 방영 전부터 본격 레즈비언 드라마 공중파 방영이라는 이슈로 화제가 되었고, 방송 이후 KBS의 해당 드라마 코너 게시판에는 공중파에 동성애 드라마가 웬말이냐며 앞 다투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작년 5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후로 시작된 일부 기독교 단체들의 적극적 게시판 글 올리기 소란이기에 이제는 뭐 그런가 보다 한다. 가까운 트위터 친구들 중에서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대로인 레즈비언 이야기에 실망한 사람도 있었고, 레즈비언 단막극이 공중파 방송에서 등장함에 대한 의미를 굳이 버리지 말자고 좀 더 긍정의 의미로 이해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나 역시 내 주위에 실제 레즈비언들과는 조금 다른 배우들의 차림새나 말투, 레즈비언 바의 풍경 등에 오글거리기도 했다. 동성애자들도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지만 이를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해 아픈 삶을 살고 있다는 이 착하고 계몽적인 드라마의 메시지와 드라마 방송화면 내내 오른쪽 상단에 떠 있는 ‘19금’ 타이틀의 부조화를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가족들 몰래 혼자 TV 앞에 앉아 숨죽여 보았거나 가족들이 함께 보는 TV에서 볼 수 없어 온라인 상에서 직접 구해본 수많은 우리 편들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면 너무 실망하지 말자고 건네고 싶다.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곧 우리 편들의 삶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하는 10대 레즈비언 청소년에게 그것은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많은 이야기들의 시작일 뿐이었다. 불안하고 힘들게 일해야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이라도 자신의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 하는 30대 여성의 욕망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삶을 꾸리는 새로운 미래로 전환된다. 레즈비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감추고 살아온 답답한 결혼 생활을 결국 남편에게 털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삶은 이혼이라는 이성애 사회의 퇴출 명령을 받는다. 레즈비언 엄마가 두 자식을 버렸다고 이해하는 딸은 레즈비언 엄마에게 결국 따뜻한 손을 내민다. ‘신은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동성애를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보다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의 고민은 결국 생존을 위한 삶의 투쟁에서 비롯한다. 그 삶속에서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나도 존재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아직은 자신이 동성애자의 삶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그러한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자긍심과 긍정의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자신을 받아들여야 삶은 시작한다. Learning to love yourself. It is the greatest love of all. ( 노래 ‘The greatest love of all'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