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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금붕 감독과의 인터뷰
2003-12-30 오전 00: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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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 감독 관금붕/關錦鵬(Stanley Kwan·45세)은 '초자연적 연애담'이라는 광고 문구 아래 개봉된 1987년작 '인지구/咽脂拘(Rouge)'로 처음 국제적 호평을 받았다. 1996년에 그는 역시 많은 호평을 받은 다큐멘터리 '양과 음─중국 영화 속의 성/男生女相─中國電影之性別(Yang and Yin: Gender in Chinese Cinema) 내에서 커밍아웃함드로써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공개적 동성애자 영화 감독이 된 바 있다. 그가 최근에 감독한 또 다른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북경에서 촬영된 '란위/藍宇(Lan Yu)'는 중국 본토의 남성 동성애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최초의 영화이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연재된 중문판 컬트 소설 '북경 이야기/北京故事(Beijing Story)'에 토대를 두는 '란위'는 숨은 동성애자인 사업가와 젊은 건축학도가 천안문 민주화 운동이라는 그늘 아래 맺는 관계를 그린다. 본보는 최근에 관금붕 감독과 그의 삶과 일에 대해 얘기했다.

- 편집자 주 -

본보: 대개는 동성애를 영화 주제로 삼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는데, 왜 '란위'를 만들게 됐나.

관금붕: 난 1996년에 커밍아웃했는데, 그래서 누가 이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난 중학교 때 기독교 신자였는데, 그래서 내 성 정체성에 대해 갈등을 많이 했다. 하지만 홍콩의 TV 방송국에서 조감독으로서 허안화/許鞍華(Ann Hui), 담가명/譚家明(Patrick Tam), 서극/徐克(Tsui Hak), 데니스 유(Dennis Yu)같은 젊은 감독들하고 일하기 시작하고 보니, 그 친구들은 내 예상보다 개방적인 거였다. 그리고 내 첫 두 작품을 만들 때 홍콩 게이 레즈비언 영화제(HKGLFF)를 처음 몇 년 동안 꾸리기도 한 연극 연출가 임혁화/林奕華(Edward Lam)같은 친구하고 일하면서 좋은 경험을 가졌다.

그래서 '란위'를 찍을 땐 이미 내 성 정체성을 편하게 생각했고, 보편적인 정서를 활용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더 이상 '게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 셈이기도 했다.

본보: 왜 원작의 작가가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난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숨은 게이 '한동'이 동성 애인한테 전념하기로 결정한 순간으로 잡았다고 생각하는가. 정치적 논평인가.

관금붕: 극적 효과를 위해서 그 날을 선택한 것같다. 원작은 아주 멜로적이다. 나한테는 너무 멜로적이랄까. 그래서 그 부분은 영화에서 압축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사람들이 관계를 새로 맺거나 다시 이어간 건 분명하다. 비슷한 예로 9. 11을 들 수 있겠는데, 그래서 올해 6~7월에 일종의 베이비붐이 있었던 거다. 천안문 민주화 운동도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북경 출신으로 지금 미국에서 사는 원작자는 내 영화를 보고 딱히 만족스러워하진 않았다. 영화로 각색된 걸 보고 만족하는 작가가 어디 많은가. 그녀는 영화에 더 많은 게 들어가길 바랐다. 소설에서는 아내의 복수 등등 독자한테 시시콜콜 다 얘기해준다(사업가 '한동'은 여성과 결혼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실패한다). 하지만 영화로 옮기면 선택을 내려야 한다. 난 너무 멜로적이거나 진부하지 않도록 원작의 아주 감정적인 장면 몇 개를 잘라냈다.

본보: 홍콩이 중국의 특별 행정구(SAR)가 되기 전엔 1997년까지 영국 영토였다. 이같은 정치적 문화적 복잡함은 당신의 영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관금붕: 30대 후반~40대의 우리 세대는 중국 본토랑 홍콩에 대해 아주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젊은 감독들하고 일할 때면 느끼는 건데, 이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중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면서도 자기들만의 문화나 전망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뭔가를 피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그 대상에 끌리는 거랑 똑같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치에 딱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1997년 당시에 내가 홍콩과의 관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은 내 정체성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 당시에 난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청년에 대한 대본을 갖고 작업 중이었다. 탈고한 뒤에 대본 작가랑 커피 한 잔 하면서 숨은 주제는 바로 홍콩 사람으로서의 내 정체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증을 동시에 느끼는 홍콩인말이다.

우리 부모님께선 (공산당이 중국을 장악한) 1949년 이전에 홍콩으로 이주하셨는데, 아직도 진심으로 중국을 사랑하신다. 우리 아버지께선 노동자셨고, 그래서 난 당신께서 공산주의자이신 줄 알았다. 그 분께선 모택동 연설 테이프를 듣곤 하셨는데, 난 그게 딱 질색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서 테이프를 뽑아버린 적도 있다. 한편 내 남동생들은 좌익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난 장남이기 때문에 정치적 색채하고는 무관하게 제일 좋은 학교에 다녔다.

'란위'는 홍콩의 게이 감독으로서 나를 반영한다. 북경의 감독이 만들었다면 내적 외적 세계가 무척 달랐을 거다. 근데 바로 이 점을 원작자가 비판하고 몇 편의 영화평이 언급했다. 이 영화에선 두 명의 게이가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일 거다. 중국 본토의 감독이었다면 또 다른 세상을 만들려고 나만큼 노력하진 않았을 거다. 그리고 바깥 세상에도 별 신경 안 썼을 거다.

당시에 난 내가 이 영화의 내적 외적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몰랐다. 내가 홍콩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남들이 뭐라고 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홍콩이 명목상으론 '특별 행정구'이고 독자적인 법이랑 정부도 있지만, 사실 홍콩 사람들의 자유는 매초마다 중국 정부가 통제한다. 이 영화의 커플처럼 우리 삶의 매초마다 사회가 통제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내가 중국 본토가 아닌 홍콩 태생이라는 점은 영화 자체에 있어 큰 차이를 만든다.

본보: '란위'는 홍콩에서 호평받았고 주연 배우들은 놀라울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비록 해적판을 빼고는 중국 본토에서 상영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이같은 인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진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직도 이 지역 동성애자들은 대개 숨어 있거나 낙인이 찍힌 상태 아닌가.

관금붕: 이 영화는 홍콩에서 정말 대대적으로 개봉됐고, 3개월 뒤에 DVD가 출시되고 나서 대만에서도 상영됐다. 어떤 면에선 중화 문화권에서 제일 보수적인 곳이지만, 홍콩은 무척 신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내 생각엔 홍콩 관객이 그냥 두 주연 배우 사이의 관계를 가슴으로 느끼고 이 얘기를 정말로 믿었던 것같다. 특히 여성 관객이 좋아했다. 젊은 배우 리우예(란위역)하고 사랑에 빠진 여성도 있었다.

본보: 아무도 적나라한 베드신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던가.

관금붕: 이상하게도 아무도 안 그러더라. 늘 친절하면서도 마초적이고 내 정체성에 대해 약간 미심쩍어하는 내 일반 친구 녀석은 이 영화가 게이들의 생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줬다고 했다. 게이들도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말이다. 대다수 관객은 공감할 만한 부분을 발견했을 거다.

나한테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관계를 맺는 얘기다. 야한 부분은 제쳐두고, 원작을 읽고 또 읽으면서 지난 12년 동안 함께 해온 애인하고 나의 관계랑 정말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이 얘기는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변하는지 보여준다. 평범한 커플들이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는지도. 사람들이 바로 그 부분에 공감하는 것같다.

미국의 경우, '란위'는 현재 뉴욕시 콰드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2002년 8월 23일에는 로스앤젤리스 소재 램리스 페어팩스 극장에서 개봉된다. 또한 시카고, 프레즈노, 탬파 등지의 게이 레즈비언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6월에는 에피상트르사와 몽그럴 미디어사가 각각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란위'를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퍼시픽 엔터테인먼트사가 개봉할 예정이며, 일본에서도 관람 가능하다.

* 감독 소개

1957년 홍콩 태생. 홍콩 침회 대학/香港浸會大學(Baptist College)에서 언론 정보학을 전공한 뒤 TVB 방송국에서 수습 배우로 일했으나 얼마 안 있어 제작 훈련부로 옮겼다. 허안화, 엄호(Yim Ho), 담가명 등 나중에 홍콩의 '뉴웨이브' 영화를 시작한 젊은 감독들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결국 영화 감독으로서 1985년에 첫 장편을 만들었다. 관금붕의 두 번째 작품인 '지하정/地下情(Love Unto Waste)'은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세 번째 작품인 '인지구'는 세계 각지에 팬을 형성했다. 장만옥/張曼玉(Maggie Cheung)은 그의 1991년작 '완령옥/阮玲玉(Actress 또는 Centre Stage)'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작 '쾌락과 타락/愈快樂愈墮落(Hold You Tight)'은 역시 베를린 영화제에서 알프레드 바우어상과 최고 레즈비언 게이 장편 영화 부문에서 테디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예술 영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장편 외에도 관금붕 감독은 단편 영화, 다큐멘터리, 그리고 홍콩과 런던에서 상연된 단편극을 연출한 바 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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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 2004-04-17 오전 10:45

아직도 그 샴푸쓰니??
이대사가 귀에서 맴도는듯해요...
이 감독 정말 세세하게 감정을 잘표현한듯해요.특히 란위에서는 더더욱..알고보니 이사람도
동성애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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