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 님의 글을 이리로 옮겼습니다
이성애주의적 문화상품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 성적소수자들이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찾아내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태원의 드랙문화, 단란주점의 끼트롯 문화(?) 등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에서 지적 노동이 함유된 게이적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이성애적 문화코드를 다양하게 변주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주류문화권에서 인정되는 문화를 향유한다는 것은 당분간은 혹은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 일일지도 모른다.
2003년 5월, 공공연한 게이코드가 삽입된 파격적인 댄스뮤지컬 '백조의 호수가' 서울에 온다는 소문이 들리고... 가난한 끼순이들은 거금을 투자하여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 관람단을 조직해서 강남의 으리으리한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냘픈 여자백조를 멋진 왕자가 사뿐히 들어올리던 우아한 빠드되 대신 힘찬 도약이 넘쳐나는 발레리노들의 이인무와 군무가, 화려한 흑조의 춤 대신 바람둥이 남성의 섹시한 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무가 매튜 본이 인터뷰에서 '원래 게이코드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고 강변한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작품이 올려진 후에 그것을 해석하는 관객의 몫까지 빼앗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번지점프를 하다.'를 놓고서 퀴어영화(혹은 동성애영화)의 범주에 넣을지 말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종내에는 대다수 동성애자들이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던가.
'뱃살 출렁이는 거 봤니?'
'가슴팍에 털이라도 좀 밀었어야 하는 거 아냐?'
'왜 빌리 엘리어트 나왔던 애는 안 온 거야. 일본엔 갔었다면서...'
'그래도 난 눈물이 나더라...'
고전적 백조의 호수가 어떻게 변용되었는지, 안무와 무대연출이 어땠는지에 대한 평가보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간 것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필요는 없다.
문화적 충격이라보아도 무방할 이벤트성의 공연이 아닌 상시적이고 심도깊은 감상이 이루어질 만한 공연문화가 우리에겐 많지 않으니...
(그런 의미에서... 6월에 우리 손으로 만드는 퀴어문화축제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