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기사

NEWSLETTER 연도별 기사
* 홈페이지에 가입 후 로그인하시면 기사 갈래별 태그 리스트가 활성화됩니다.
[역사] 이태리 마짜의 숭고한 사랑
2003-11-02 오전 02:58:56
7421 0

나는 오늘 밤 어떤 숭고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전근대적인 아름다움, 먼지가 묻어 있지 않은 해안 하늘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우리는 15세기의 피렌체, 그리고 베네치아로 떠나야만 한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의 시원적 축적이 이루어졌고, 도시화와 예술이 만개했던 그 베네치아의 도심 속에 안착해야 하는 것이다.

서유럽의 15세기는 그야말로 동성애 근절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특히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도시화가 빨랐고, 르네상스 영향을 입어 동성애 하위문화가 형성되고 있었다. 급기야 이 흐름이 성직자 사회에까지 뻗치자 교황과 교회 당국은 동성애를 근절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기 시작했다.

동성애 근절 운동에 앞장 선 설교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란시스코회의 성 베르나르디노였다. 그는 늘 거대한 군중을 이끌고 다니면서 시의회의 후원 아래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베르나르디노는 피렌체가 소돔과 고모라의 영향에 물들고 동성애의 악취로 인해 피렌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에 화장을 하고 남색질을 뽐내면서 싸다니고 돈벌이로 남색짓을 하는 소년들이 있다는 얘기를 나는 들었다. [....] 그것은 대개가 그들을 혼내주지 않는 어미와 아비의 잘못이지만, 그들의 돈을 펑펑 써도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묻지도 않는 어미의 잘못이 특히 더 크다. 그리고 그들이 '몸에 꼭 달라붙은 짧은 상의'를 입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옷은 조그만 천으로 앞뒤로 배꼽과 허리까지만 덮었기 때문에 그들은 생살을 거의 다 남색자들에게 드러낼 정도이다. 그들은 천조각은 아끼고 살은 소모하고 있구나!"

실제로 베네치아에서는 약재상이며 실내 체육관, 빵집, 학교 등지에서 동성애적 하위 문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 당국과 시 당국이 남색에 대해 이렇게 두 팔을 벌리고 근절의 의지를 밝힌 것은 도시화에 따른 전염병, 그리고 전염병에서 발원된 인구 감소의 원인을 '문둥이나 남색자'들에게 둘러씌우기 위한 전략이 깊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남색sodomy는 우리가 생각하는 남자를 성적으로 탐하는 남자만을 지칭하지는 않았다. 중세 시절 동성애에 관해 가장 체계적으로 다룬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sodomy를 '자연에 반하는 성'이라 규정하고, 수음, 이성간의 비자연적인 성교, 동성간의 성교, 수간 순으로 죄질이 높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순서는 학자들마다 다르게 평가되었는데, 초서는 동성애를 최고죄로 지목했고, 단테는 동성애를 저지른 사람들을 폭력범과 함께 제 7 지옥에 배치시켰다.

어쨌든 베네치아에서도 '남색'을 동성애적 행위, 여자와의 항문 성교, 수간으로 규정지었다. 15세기 중엽에는 소년과 여자와의 항문 성교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에 1467년에는 의사, 이발사, 기타 치료사들은 '우리의 이 도시로부터 남색의 죄악을 근절할 수 있도록' 고객들의 항문에 상처가 났는지 조사할 수 있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항문 조사 방법은 이후에도 널리 애호되었는데, 18세기 랭보를 사랑한 베를렌느가 나중에 법정에 출두했을 때도 조사관들 앞에서 자신의 항문을 보여주어야 했다.

베네치아 시 당국과 교회의 동성애 근절 운동은 날이 갈수록 더욱 극대화되었다. 베네치아 영토 밖의 선상船上에서 남색을 하다 걸린 사람은 베네치아 영토 내에서 저지른 죄와 동일한 것으로 처벌할 것임을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은 일몰 후에는 '타락의 위험'이 있으니 일몰 이전에 끝낼 것을 명하는 법을 재정했다. 또 각 지방의 귀족들 2명을 차출하여 이웃들이 남색을 저지르고 있는지 항상 조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거미줄 같은 감시망에 의해 베네치아 경찰소와 재판소에 소환되는 남색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시 당국은 이렇게 붙잡혀온 남색자들에게 이중적으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수동적인 성 파트너는 죄가 덜하고 능동적인 성 파트너가 더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거였다. 14세 미만의 아동은 법적 처벌 연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능동적인 성 파트너는 대부분 수동적 파트너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능동적인 성 파트너가 더 큰 처벌을 받는 이유는 이랬다. 자신은 남성성을 고수하면서 상대편으로부터는 이 남성성을 박탈했다는 죄.

그리고, 이제부터 내가 말할 숭고한 사랑은 바로 이 이중 처벌의 잣대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인 법정 자료가 없어 여기에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는 없겠지만, 능동적인 성 행위와 수동적 성 행위가 다르게 처벌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양갈래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비극적인 애정을 쉽게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해안가 경찰서 바깥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저 20살 청년의 이름을 도미니끄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게다. 그의 이름은 도미니끄고, 마차 길드 조합에 도제로 일하고 있다. 바닷가 태양으로 검게 그을린 피부와 목덜미에서 찰랑이는 금발의 이 잘 생긴 청년은 아까부터 걱정스러운 눈으로 경찰서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 그는 뚜벅뚜벅 걸어가 경찰서 안에 들어갈 생각이다. 그곳엔 30대 초반의 같은 길드에 속해 있는 자신의 애인, 미구엘이 붙잡혀 들어가 있다. 그와 미구엘이 남색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웃이 경찰서에 꼰지르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자신은 다행이 조합 수장이 경찰에 잘 말해주는 바람에 간신히 죄를 면하고 풀려나왔지만 미구엘은 풀려날 공산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게다가 미구엘은 능동적인 성 역할을 한 죄목이 덧대져서 더욱 죄질이 무거웠다.

당시 남색죄는 물과 빵만이 제공되는 감옥생활에서부터 사형에 이르기까지 잔혹할 정도로 풍부하게 처벌되었다.

도미니끄는 그렇게 경찰서 앞에서 안절부절하며 애를 태우다가 급기야 뚜벅뚜벅 걸어가 경찰서 문을 잡아당겼다.

경찰은 도미니끄를 보고 왜 왔냐고 물었을 것이다. 도미니끄는 '미구엘 때문에....'라는 말마디를 힘없이 뱉어놓고는 자신도 모르게 핑 도는 눈물 때문에 입을 꽉 다문다.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경찰은 비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는 투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니 놈이 미구엘 놈하고 붙어먹은 그 녀석이군. 근데 여기는 왜 온 건가?"

도미니끄는 지금 자신의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미구엘에 관해 잘 말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자신이 애타게 원해서, 정작 미구엘은 하기 싫었는데 자신이 정말로 원해서, 그가 어쩔 수 없이 능동적인 성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미구엘의 죄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는 이 경찰서에 직접 온 거였다.

설령 그렇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처벌될 수도 있겠지만, 도미니끄는 지금 미구엘이 잘못 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우려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해서 자신의 모습을 항문성교의 애타는 갈증에 목말라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요부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니끄는 계속 울음을 집어삼키지만 그의 말마디는 계속 끊겼고, 눈에서는 자꾸 멍청하게 눈물만 나오고 있다.

경찰서 바깥. 창문으로, 경찰 앞에 선 채 고개를 수그려뜨리고 훌쩍거리며 서 있는 이 청년이 보인다. 시간은 그렇게 울고 있는 청년 앞에 정지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법정 기록에서 뽑아낸 사실이다. 법정 기록엔 도미니끄가 그런 증언을 했다는 걸 알게 된 미구엘이 말도 안 된다며, 거꾸로 도미니끄는 하기 싫었는데 자신이 강하게 원해서 그랬던 거라고 항변하는 대목도 삽입되어 있다.

실제로 그들은 법정에 갔을 때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입으로는 자신의 능동성을 더욱 주장했다. 법정 안에 있는 판사와 관중들은 그들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 동안이나 '능동성'이 무엇인지 아마도 식은 땀을 흘리며 고민해야 했을 것이다.


출처 : 소해피(http://sohappy.or.kr)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검색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