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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극 <이반검열> 관람 후기
2016-08-19 오후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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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8월 

[기고]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이반검열 리뷰

 

 

 

올 초 인디 다큐 페스티벌에서 <불온한 당신> 이영 감독의 <아웃-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아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이반검열>이 연극으로 재구성되어 무대에 오른다는 기사를 보고 망설임 없이 예매를 했다.

 

연극 <이반검열>은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프로젝트의 다양한 작품 중 하나였는데 이 프로젝트가 만들어진 배경엔 2015년 국내 예술계를 뒤흔들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검열 사태가 있었다. 연출가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의 지지연설을 했다는 이유로, 또 작품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세월호를 다뤘다는 이유로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고 대관에서 탈락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국가가 원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들만을 선별하겠다는 구시대적이고 오만한 발상의 검열에 대응하기 위해,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되었고, 20개의 극단/팀이 5개월 동안 21개의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로 무대를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더웠던 금요일 저녁 극성맞은 더위를 뚫고 혜화동 로터리 인근에 위치한 연우소극장으로 향했다. 공연 시작 시간에 임박하게 도착해서 극장 주변의 분위기도 볼 틈도 없이 티켓을 받고 극장으로 내려갔는데 객석과 무대가 마주 보는 구조가 아닌 네모난 무대를 둘러싼 ㄴ자의 독특한 소극장 객석 구조에 먼저 눈이 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연극 시작을 알리는 스태프의 안내가 끝나고 암전 후 조명이 들어온 무대의 한쪽 모서리엔 태극기 액자가 걸려있었고 네 개의 책상을 앞에 둔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벽엔 ‘이반’이라는 단어가 비추어졌다. 이후 ‘시선, 학교, 검열’ 이라는 단어들을 배경으로 동성애자 청소년 역할로 분한 배우들의 연기가 이어졌다.

 

1막에선 학교와 사회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얼마나 차별적이고 편견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이반검열을 통해 그들이 어떤 부당함을 요구당하며 결국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거나 학교라는 집단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폭력적인 구조들을 보여주었다.

 

이어진 2막에서는 배우들이 성소수자 청소년에서 역할을 바꾸어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가 되어 연기를 시작했다. 세월호 유가족으로서 겪는 고충, 세월호 참사 이후 일베나 SNS에서 혹은 포털 기사의 댓글에서 유가족들에게 보이는 폭력적인 상황들을 토로하며 결국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대로 세월호 유가족 혹은 생존자로서의 존재를 지우고 살아가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마무리되었다.

 

3막에서는 2011년 진보교육감 당선 당시의 신문을 들고 나와 종북을 이야기하는 배우의 연기를 시작으로 확성기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이어지는 국민체조와 함께 검열과 탄압의 현대 역사들을 보여주었다. 배경음악으로는 ‘아, 대한민국’이 흘러나왔고 마지막엔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동성애 OUT, 박원순 OUT’을 외치는 보수 개신교 집단의 영상을 보여주며 마지막엔 처음 네 개의 책상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각자 동성애자 청소년, 세월호 유가족, 생존자 목소리를 이야기하며 연극은 끝이 났다.

 

 

 

이반검열.jpg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이 연극이 이야기 한 것은 결국 동성애자 청소년들을 색출하는 것을 일컬었던 ‘이반검열’은 단지 성소수자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세월호,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자 혐오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사회적 소수자들이 들어왔던 혐오와 억압의 서사이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 건너편에서 가만히 있으라며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들과 함께 순수 유가족을 욕보이지 말라던 한 포털의 세월호 기사 댓글들을 보며, 마치 성소수자들을 향해 혐오를 퍼붓던 이들을 떠올렸던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닌 바로 “가만히 있으라,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혐오에 기반을 둔 차별적 검열은 나와 다른 이 혹은 시대의 슬픔에 공감이 아닌 검열을 통해 대중들의 사고와 감정을 재단하고 소수자들을 타자화시키며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을 서슴없이 발휘할 수 있는 구실이 되고 있다. 또 이러한 검열에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의 삶이 억압당하고 자유를 재단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위험한 혐오와 차별의 논리로 무장한 검열을 국가가 나서서 진행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집단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처단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21세기 이 시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스스로가 검열관을 자처하는 불편한 자들이 도처에 널린 시대. 이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세를 불리고 있고 사람들은 검열을 통해 편을 가르고 사회의 약자들을 향한 각종 혐오들을 양산해낸다. 또 어떤 이는 차고 넘치는 검열의 홍수 속에서 “나는 아니야”만 외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가 되어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들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렇듯 자신을 정의하지 못한 이들은 불안에 끊임없이 자신을 또다시 검열의 굴레 속으로 몸을 던지거나 사고하기를 멈추고 귀를 닫은 채 혐오의 선봉에 서는 사회적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분별한 검열 이전에 부디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연대가 선행되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삶 속에서 마주하는 장면들마다 몸에 베여 부지불식간에 나의 사고와 자유를 재단하는 검열을 경계하고 또 그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끊임없이 긍정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힘을 써야할 것이다.

 

아쉽게도 <이반검열>은 4일 간의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직 이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부당하고 수상한 검열에 대응하는 참신한 연극들이 10월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놓치지 말고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프로젝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roject.for.right/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프로젝트 블로그 http://blog.naver.com/right_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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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사이 상근자  / 낙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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