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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속 숨은 ‘게이 코드’ 를 찾아라  


                                                                                          공연 칼럼니스트 조용신






“성공적인 뮤지컬 작곡가가 되려면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여야 해. 난 둘 다야.”


1960년대 뉴욕필을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끌어올린 지휘자이자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로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이는 결코 농담이 아니다. 대놓고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헤드윅’뿐이 아니라도 뮤지컬 ‘렌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카바레’ ‘지붕위의 바이올린’ 등 우리가 아는 많은 뮤지컬이 게이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게이 코드’를 내포하고 있다.


‘게이코드’는 심지어 관객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작품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뮤지컬 ‘라이온킹’이나 ‘캣츠’는 창작 배경에서부터 게이 코드가 밑바탕이 됐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불후의 명곡 ‘오버더레인보’는 게이의 공식 찬가이고, 레인보(무지개) 깃발은 게이의 상징이다.


공연 전문가로부터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성애와 뮤지컬의 깊고도 오묘한 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정서에 이미 스며든 동성애 소재


현재 우리 문화계에서 동성애 소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이미 TV나 영화에서는 남남 혹은 여여 커플의 야릇한 시선과 자세를 담은 CF가 등장하는가 하면, ‘왕의 남자’를 필두로 ‘커피프린스’ ‘바람의 화원’ ‘앤티크’ ‘쌍화점’과 같이 동성애 코드를 다루면서도 흥행에 성공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늘고 있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다. 대표적인 흥행 작품인 ‘헤드윅’과 ‘쓰릴 미’는 작은 규모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주인공이 게이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뮤지컬의 원류 도시인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한국에서 교회를 찾는 것만큼이나 동성애자를 찾기 쉬울 정도로 거대한 ‘게이 커뮤니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금기, 탄압, 검열, 편견 등 부정적인 단어로 점철돼 있는 동성애와 역사상 가장 흥행에 성공한 무대공연인 뮤지컬이 공동운명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동성애와 뮤지컬 간 뿌리 깊은 동거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뮤지컬계에 종사하는 게이 남자 혹은 관객을 일컫는 ‘쇼퀸(show queen)’이란 표현은 서구에서 뮤지컬 마니아 집단의 핵심층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현실에서는 억눌려 있는 동성애자의 비참한 현실에 비해 뮤지컬의 일반적인 주제인 낭만적 사랑과 해피엔딩 그리고 음악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로맨틱한 면이 ‘쇼퀸’을 열광시키는 요인이 된 것이다.




▶동성애와 뮤지컬, 불가분의 역사


동성애(homosexuality)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함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종교개혁 이후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금지함으로써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금지됐다. 따라서 동성애자는 자신이 희화화된 이미지로 덧칠된 예술작품을 그저 숨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유럽에서 퇴폐주의와 상징주의가 창궐하고 동성애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서 구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인물이 유미주의의 전도사이자 동성애자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1854~1900)였다. 당시 그와 추종자의 독특한 몸짓과 패션은 남녀로만 구분된 기존의 이성애 사회 속에서 확실히 구별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러한 스타일을 칭하는 ‘댄디(dandy)’ ‘캠프(camp)’ 등의 신조어가 등장하며 동성애자 남자란 ‘여자같이 꾸미고 행동하는 남자’라는 외형적인 편견 또한 시작됐다. 이를 반영한 대표작은 길버트?셜리번 콤비의 코믹 오페라 ‘페이션스’(1881년 초연)로 주인공 레지널드 번손은 육욕에 빠진 시인이자 성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로 오스카 와일드를 희화화한 캐릭터다.


하지만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오늘날처럼 동성애자가 주인공 캐릭터로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암호를 찾아 은밀하게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 뮤지컬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오즈의 마법사’는 이러한 게이 판타지에 충실한 작품이다. 도로시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는 캔자스 시골마을을 떠나 모든 꿈이 이뤄지는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게 되는데, 그 여정에서 만난 친구들-허수아비, 깡통 사나이, 겁쟁이 사자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이는 남성성이 결여된 게이를 상징한다. 에머랄드 시티에 다다랐지만 전지전능한 마법사는 없고 결국 자신을 부정하지 말고 사랑하며 주체적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결말에 동성애자는 마음 속 깊이 환호를 보냈다. 이 작품의 주제곡 ‘오버더레인보’는 그 후 게이 커뮤니티의 공식 찬가가 됐고, 무지개는 동성애의 상징이 됐다.


1960년대 말 서구를 휩쓴 민권운동은 가치 체계의 전환을 가져왔으며, 이후 격변하는 시대의 조류에 맞게 뮤지컬 안에서의 동성애 표현 수위도 점차 높아져 왔다. 1966년 초연된 ‘카바레’만 해도 주인공 엠씨는 그로테스크한 양성애자로 추정될 뿐이었고, 1975년대 초연된 ‘코러스 라인’에서 동성애자로 나온 폴은 앙상블 지원자 사이에서 중도 탈락하는 단역으로 그려지지만 이른바 1980년대 에이즈(AIDS) 시대를 겪은 이후의 작품인 ‘렌트’나 ‘프로듀서스’ 등에서는 동성애자 캐릭터의 숫자도 늘어났을 뿐 아니라 극중에서 비중도 높아지고 차별도 거의 없는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등장한다.


이렇듯 현실과는 달리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포용하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 늘어난 것은 그러한 방식이 쇼비즈니스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즉, 동성애자들이 많은 창작자 집단에서조차 동성애자 자신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주된 플롯으로 설정한다면 사실성은 높겠지만 관객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성애자들은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보다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너그러운’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동성애자들이 차별받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룰 경우에도 심각하기보다는 유쾌하게 활용하는 방식을 택한다. 가령 ‘빅터/빅토리아’(1982)는 남장 여자와 그를 사랑하는 한 남자를 통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뤘는데 이 설정은 국내 드라마 ‘커피프린스’와도 일맥상통한다. ‘새장 속의 광인들’(1983) 역시 게이 커플이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이성애자로 위장하며 좌충우돌하는 코믹한 스토리로 흥행에 성공했다. 다음달 한국 초연을 앞둔 ‘자나 돈트’에서는 아예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사회적 지위를 바꿈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안 보이는 ‘게이 코드’


게이 창작자들은 여전히 직접적인 동성애 표현 대신에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른바 ‘게이 코드’를 숨겨 놓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 1957년 초연 당시 작가, 작곡가, 작사가, 연출가, 주연배우 다섯 명이 모두 게이였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여자보다 남자 앙상블 배우들의 군무가 돋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캣츠’의 대표곡인 ‘메모리’의 바탕이 된 T.S. 엘리엇의 시도 그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 그가 파리 유학시철 친교를 맺었던 장 베르드날에게 바친 것이다. 게이 가수인 엘튼 존이 작곡한 ‘라이온 킹’의 주제가 ‘서클 오브 라이프’의 가사는 사실 성적 취향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삶과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대표적인 게이 연출가의 한 사람인 매슈 본은 ‘백조의 호수’ ‘도리안 그레이’ 등 유명한 고전을 동성애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이렇듯 뮤지컬에서 동성애는 전방위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한 보다 열린 견해를 갖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바깥세상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게이 코드는 꽃미남에게만 열광하는 일부 20, 30대 여성 관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보수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성도 있다. 서구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쇼비즈니스 안의 동성애 필수화’ 단계로 지나치게 빠르게 진입하다 보면 우리는 동성애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보다는 ‘낯선 남의 나라 이야기’로 보며 즐기기만 할 수도 있다.


동성애는 사랑의 대상 이외에도 사회적 제약이라는 이중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이성애보다 절실하다. 따라서 동성애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만들려는 창작자 혹은 제작자라면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 현실을 비켜가지 않는 진정성을 지닐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관객들도 스스로 동성애에 관심 없는, 혹은 스스로 혐오한다 할지라도 좀더 마음을 더 열고 극장에 들어선다면 훨씬 풍부한 관극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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