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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찬호가 등장한 ‘1박2일’, 제작진의 인식이 실망스럽다

강의 때 자주 사용하는 사례다. 파워포인트로 빨간 별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다 ‘덜’ 빨간 별이 등장한다. 학생들에게 무슨 별이 ‘더’ 빨간 지 물어본다. 100%가 다 한 별을 가리킨다. 그리고 내가 묻는다. “왜 그렇죠?” 그러면 이제부터 답답한 논쟁이 시작된다.

그 별이 더 빨갛다라는 것을 나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서로가 공유해야 되는 개념들이 너무 많다. 채색이 어쩌고 저쩌고부터 하얀색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는 등, 심지어 눈의 기능적 상태까지도 의심된다. 그러다 내가 묻는다. “그건 다 어디서 알게 된 것인가요?”, “학교에서요.”

맞다. 결국 다 학교에서 배운 거다. 즉 나도 그들과 같은 별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육내용'이 동일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러한 교육이 있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어야 하며, 그러한 교육적 문화를 ‘의심하지 않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라야 한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내가 저 별이 빨간 이유는 전혀 없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다. 5개월짜리 내 딸은 분명 이들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사실 체계적으로 사회화된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순수한 ‘태초의 모습’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으로 사회적으로 구성(social construction)되어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과거부터 이렇게 사회적으로 일시적 합의된 것을 순간순간 ‘영원한 진리’로 이해하고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의 눈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유인원 정도'로 보였다. 그러니 식민지화는 당연한 것이었다. 종교인의 눈에 남미의 원주민들은 '미개인'이었다. 그러니 성서를 한 손에 들고 아주 당당히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고 많은 상상력을 제어했다. 왜? 그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으니까.

1월 4일 KBS 간판 예능 <1박 2일>에서 최소한 나에게는 너무나도 불쾌한 '자연스러운 장면'이 등장했다. 박찬호 선수가 나와서 미국에서 신인시절의 에피소드를 말하는데, 흑인선수에게 자기 등에 비누칠을 해 달라고 했다고 주변사람들로부터 ‘동성애자’로 오해받았다는 거다. 말 그대로 에피소드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문화적 차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건이 어떻게 해석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물론 결론은 아주 저질이었다. 물론 박찬호 선수는 저질이 아니다. 본인의 문화적 에피소드를 말해 주었을 뿐이다. 역시 방송 관계자가 문제다. 충분히 편집을 해도 될 만한 내용임에도 여과 없이 방송을 했다. 다른 출연진들이 당시 상황을 재연까지 충실하게 해 주는 장면까지 아주 재미있게 말이다.

이건 에피소드 소개가 아니다. 백인선수들이 욕을 하면서 나갔다는 장면을 그렇게 재미있게 재연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백인들의 사고방식을 ‘정당하게 설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성애를 일부러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미국의 역설적 문화표현을 비꼬지는 못할망정, 미국인이 이러하니 ‘우리 정신 차리자!’는 식의 전달이다.

이건 간단하다. 만약 동성애자가 이 장면을 보았다면? 아주 불쾌한 일이다. 자. 누군가가 불쾌하다. 그럼 다음 질문은 간단하다. 이들을 불쾌하게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당연히 없다. 왜? 이들이 범죄자인가? 사기꾼인가? 아니면 우리 '앞'에서 그들끼리 성관계라도 가진다 말인가?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은 '욕 먹을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들을 불쾌하게 대한다. 이 용감한 행동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부터일까? 그 근원에 바로 이러한 여과없는 방송매체의 '자연스러움'이 한몫하고 있다. 박찬호 선수의 에피소드는 '불쾌한' 미국문화를 미국인들 스스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우리의 불쾌함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 어렵다. 그래서 보통의 느낌으로 갈 뿐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래서 이게 문제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자유다. 동성애자를 인정하라고 '강요할' 권한 역시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그 편견은 '본인의 생각'으로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방송은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정당성 있는 판단'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이 정당성이라는 암묵적 합의때문에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동성애를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나와서 포함시키면 안 된다고 연설까지 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동성애자를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그저 '빨간 별'이 빨간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원래 빨간 색인걸 어떡하라는지에 대해서 짜증을 내겠지만 그 빨간 색은 원래 빨간 색이 아니다. 빨간 색이 '아님'을 의심하지 못한 사회문화 속에서 형성된 빨간 색일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이런 방송이 무섭다는 거다.

지금 나는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동성애자를 '비난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음을 말할 뿐이다. 종교에서도 '하느님의 뜻'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로 제시할 뿐이다. 즉 하느님의 뜻을 모르는 자에게는 그 합의는 전혀 효력이 없는 것이다.

정신차리자, <1박 2일>. 박찬호 선수 올해 맘 편하게 선발 10승은 해야되지 않을까? 사회적 가치관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흘러가면 문제가 되는지 정도는 '스태프'라면 정신 바짝차리고 생각하자. 고작 3-4분 방송분량이었다. 상근이로 그 장면 채워도 되니까 제발 '저질 생각'은 그만하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마 이 글에 전혀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무섭다는 것이다.

오찬호/칼럼니스트

원문은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9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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