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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욜의 Rainbow +action!] '커밍아웃'을 통해 '인권'을 얘기하다

정욜(동성애자인권연대)  / 2008년04월17일 11시49분

이른 아침, 어머니에게서 "나 쓰러진다. 못난 짓거리 하는 거 신문에서 봤단다. 제발 마음 좀 편하게 해주라"라는 문자를 받고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 게다. 난 전화기만 붙잡고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전화를 해서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변명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놔야 할까하는 고민이 들었다.

뒤늦게 들은 말이지만, 총선시기 참세상의 최현숙 진보신당 후보와의 대담 기사에 실린 사진이 문제였다. 내가 동의한 일이었지만, 파장은 예상보다 컸다. 동생 친구들이 보고 동생한테, 동생이 바로 어머니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은 기자에게 부탁해 사진을 기사에서 내린 상황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담을 취재한 기자도 매우 놀랐을 것이다. 힘들게 전화했는데, 전화기 멀리 들려온 것은 깊은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난 다음날 어머니와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한층 더 수척해진 모습으로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멀리서 바라보는데 어머니 얼굴은 내 입에서 "잘 못 나간 기사였다. 잘 못 봤다." 라는 말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난 용기를 내서 세 번째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십자가

난 20대 초반 군대에서 아우팅에 대한 공포로 인해 탈영이라는 큰 사고를 저질렀다. 물론 당일 복귀해서 군법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정신과 병동에 2개월 정도 입소하게 되었다. 그곳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용인하는 곳이다. 온갖 욕설과 비아냥에도 난 죽기 살기로 버텼다. 그곳 군의관에 의해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 규칙이라는 미명아래 벌어진 아웃팅이었지만 난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하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1998년, IMF라는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노동자 부모에게 군대에 있는 난 그 자체로 효자였다. 그런데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부모님은 절망했다. 다시 돌아가 제대하라는 말과 편지를 마지막으로, 꽤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일언반구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난 힘든 군 생활을 마치고 나의 존재를 가족에게 철저히 감춘 채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을 또 시작했다.

대학 졸업 무렵 난 어머니에게 또 다시 나의 이야기를 꺼냈다. 군의관이 부모님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몇 년 동안 궁금했던 터였다. 변할 거라는 말이 전부였고, 군대에서는 그런 친구들이 간혹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있고, 한참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또 다시 시도를 했다. 어머니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며, 교회를 업으로 삼고 있는 친척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세 번째 커밍아웃. 군대를 제대한 지도 10년이 넘었고, 요즘 난 31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늘 결혼이라는 압력에 시달려왔던 터였다. 성소수자 운동을 시작하며 모자이크 화면 처리에 너무나 익숙한 나였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마주 앉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변명이라도 해보라는 어머니 앞에서 난 군대 이후 10년 동안 가족에게 숨기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솔직한 나의 삶을 말했다.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앞에서 난 또 다시 죄인이 되었다. 십자가가 예수의 것 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결국 나는 그 십자가를 어머니 가슴에 안기게 되었다. 봄, 가을 친구 자식들 결혼식장을 취미삼아 다니던 분에게 난 취미를 빼앗은 아들이 되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분에게 어쩌면 평생 손자/녀를 단 한명도 안겨드리지 못 할지 모른다. 뭐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사진까지 나왔냐는 어머니에게 난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의 존재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에게 십자가를 안겨드렸지만 난 10년의 응어리와 죄의식을 다 날려버렸다고 했다. 평생 둘이 함께 살자는 자조적인 말과 아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어머니에 말 속에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전해져 손을 꼭 잡아주며 감사하다고 했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난 사무실로 향했다. 앞으로 어머니의 한숨은 더 깊어질 것이다. 아버지까지 설득하기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결혼과 예수, 한나라당만을 이야기하는 친척들이 추천해주는 맞선 자리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커밍아웃으로 좀 더 자유로워졌지만 어머니는 세상과 소통하는 길 하나를 잃었다. 어머니의 문자가 도착했다. "그래도 바르게 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네 번째 커밍아웃을 준비해야 될 것 같다

축하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에게 평생 꿈꾸는 로망 가운데 하나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만 가 봐도 커밍아웃 성공사례는 늘 부러움에 대상이 된다. 어머니와 만남이후 난 회원모임에 갔다. 모두들 잘 되었다고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언제쯤 할 수 있을지 날짜계산에 들어갔다. 밤늦도록 나의 커밍아웃은 회자되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들에게 자신감, 자신에 대한 긍정,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혹자는 굳이 자신을 표현해야 하냐고 되묻지만 우리 자신을 보이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진보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에 민주노총에 그리고 여타의 시민단체들에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기고 있음을 잘 모른다. 단지 성소수자 운동을 표방한 단체에만 그 일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커밍아웃이라는 용어는 이미 사회화되었다. 정치, 연예 막론하고 커밍아웃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은 삶과 맞닿아 있다. 커밍아웃으로 인해 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학교에서 검열을 당한다. 가족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사례다. 자신을 긍정하는 순간, 원점보다 더 후퇴된 삶의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커밍아웃은 행위이지만 한 순간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이라는 지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관계는 자신이 나이가 든 만큼 다양해지고 더 넓어지기 마련이다. 일순간 우호적인 사람과 집단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화, 환경을 접할 때마다 늘 되풀이 되는 고민과 압력에 휩싸일 것이다.

난 또 제자리이다. 혹시나 회사에서 사진이 실린 기사를 누가 봤을까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가지고 출근을 준비할 것이고, 하루의 절반 이상의 시간동안 나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주말에는 마음에 드는 친구들과 종로 한 귀퉁이 게이바에서 일주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게 신나게 술을 마실 계획을 세울 것이다. 어머니를 통해 삶을 배우고, 가족의 사랑도 느꼈지만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나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혹시나 밝혀질까 두려워하는 삶의 방식을 생각하면 매우 역겹다. 잘못한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데 결국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 앞에서 '누군가' 만들어 놓았을 벽의 위엄을 하염없이 느낀다.

커밍아웃, 또 다시 시작이다. 좌절의 순간과 맞닿을 것을 뻔히 알면서 나를 포함해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의 인권'을 이야기 할 것이다.
* 차돌바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0-20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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