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title_Marine
오랫만에 야근을 안하고 7시반쯤 회사를 나오니 밖은 아직도 벌건
대낮이다.
이렇게 햇빛이 있을 때 퇴근하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가...
이런 날은 왠지 지하철을 타기가 싫어진다.
어차피 이동할 때는 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지만,
밖이 껌껌한 터널일 때와 햇살이 내리쬘 때의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어쨌든 종로 2가까지 가면 집앞에 바로 내리는 버스가 있기에
4가에 있는 사무실에서 2가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천태만상들...
벌써 얼큰하게 취해있는 종묘 공원 앞의 노인분들, 술에 곯아떨어져버린
노숙자들...야쿠르트 아줌마인지, 노인과 뒹굴고 있는 아줌마...
그날의 장사를 준비하고 있는 포장마차 주인들...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는지 열심히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들...
이런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이런 날은 피곤하지만 서서와도 별로 짜증이 나지 않는다.

집에 들어오는 길은 긴장이 풀려서인지 왠지 무겁다.
터덜 터덜 집에 들어오면 나를 반기는 것은 불꺼진 방과 아무것도
없는 고요함과 침묵...
글쎄 이미 10여년간의 독립된 생활 탓인지 별로 외롭거나 불쾌하진
않다. 오히려 약간이나마의 안식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벌써 시간은 8시를 넘긴 시각...밥도 안먹었으니 일단 밥을 해야했다.
대충 옷만 벗고, 손을 씻은 후 아침에 룸메이트 쉐리가 안 치우고 간
그릇들을 설겆이 하고, 쌀을 씻는다.
어차피 밥을 짓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밥을 앉혀놓고는 그때부터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오랫만에 청국장을 끓여본다.
이모님께서 직접 띄운 청국장이라고 가져다 주신 것...
멸치로 다시 국물을 내고, 마늘을 다지고, 청양고추를 채썰어 놓는다.
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다진 양념들과 한꺼번에 끓이기 시작하면
청국장을 3-4술 떠넣는다. 그리고 두부도 넣는다.
글쎄 다른 사람은 어떤 순서로 끓이는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끓여도
맛만 좋다.
보글 보글 끓고 있는 청국장을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하얀 살색을
드러내던 김치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간다.
삼투압에 의해서 체내의 수분이 밖에 나오게 되는 것이 아마도
그렇게 보이는 것일런지도...
글쎄...점점 나이를 먹으며 사회에 적응해가는 내모습같기도 하고...

몇 일 전에 올렸던 "련애 박사의 동성련애 108문답"...맞나?
거기서 보면 동성애자가 짝사랑하는 이성애자 어빠는 무적이다.
맞다. 내가 지금껏 4번이나 짝사랑을 했을 때...이성애자 어빠들
무적이었다. ㅠ_ㅠ

우습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이구 이것들아 니들이 나 놓친거 정말 손해본거야.
요즘 뇬들이 밥하나 제대루 할 줄 아뉘?
나 봐라,신체 튼튼하지, 집안 일 잘하쥐, 술 잘먹쥐,
인간관계 좋쥐, 건전한 대한민국 건아 아니냐? -_-;'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맨날 서로 집안 일하라고 타박하는 평생에 도움 안되는
식충이 같은 친구쉐리 말구...
이제는 누군가 내가 끓여주는 청국장을 먹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지어놓고 같이 먹어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소위 말하는 데뷔 8년째...
남들보다 정체성에 대해서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연애한번 못해보고, 지금껏 짝사랑만 해온 한심한 인생...
인연이 안되었으려니 위안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러다가 정말 평생 혼자 사려나 하는 궁상맞은 생각도 들기도 하고...
분명히 친구사이에도 앞으로 평생을 함께 할 친구들은 있으리라...
하지만 친구와 연인은 누가 뭐래도 다른 것 아닐까?

물론 해봤자 내 나이 이제 28이지만, 난 넘들은 나보다 10살 덜
먹었어두 연애질만 잘하더라.
누가 그렇게 생기랬냐고?
그러게 말이다. 뜯어고칠 돈두 없구. ㅠ_ㅠ

아~~~ 어쨌든 나도 애인이 있었음 좋겠따.

damaged..? 2003-07-08 오전 10:23

분명 좋은 사람 만나실 거예요... 그 날까지 요리 + 살림 실력 업! *^^* (전 청국장은커녕 제가 끓인 라면도 맛대가리 없어 못 먹는 사람인데, 엄청 부럽네요~ 나 게이 맞아?? @.@;)

2003-07-08 오후 22:14

청국장 끓이는 솜씨를 보니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있을것이야. 기다려.
근데 돈까스는 언제 줄꺼야?

날아가기 2003-07-08 오후 23:09

청국장에 돈까스...주부 클럽 같어

차돌바우 2003-07-09 오전 00:19

난 라면 잘 끊여~!!

도토리 2003-07-09 오전 01:52

난 라면 많은뎅~~~

erick 2003-07-09 오전 03:34

한입만 주라..ㅡ.ㅜ(청국장 먹어본적 읍는데..ㅋㅋㅋ)

erick 2003-07-09 오전 03:36

더불어 내가 맹글어주는 라면이랑..달걀 후라이 먹어줄 사람 나두 만나구 싶다~ㅜ.ㅜ

차돌바우 2003-07-09 오전 04:50

여기 신부수업 클럽이었어? -.-;

아류 2003-07-09 오전 07:25

신부수업 클럽 맞아...몰랐어? -_-;

아류 2003-07-09 오전 08:05

글구...난 라면은 안먹어...그 시간과 그 정성이면 떡국 끓여먹지...-_-+
달걀 후라이는 글구 너무 정성이 없다구 생각하지 않수...-_-+
같은 달이라도 달팽이 정도면 모를까...^_^

철^^ 2003-07-09 오전 08:30

옆에 누가 있다고 행복한건 아니지...ㅡ.ㅡ^^
청국장을 끓일 여유가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도 있자나...
라면이든 청국장이든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먹어라...건강이 최고지^^

아류 2003-07-09 오후 17:51

여유라...시간을 쪼개서 만드는 거쥐...-_-+
아시다 시피 설계사무소 다니면서 시간 여유가 어딨냐? 앙? -_-+
그래도 마음에 여유는 조금 있으려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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