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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2004] 경쟁작 리뷰 <트로피컬 맬러디>



출처 : FILM2.0

2004.05.20 / 칸=주성철 기자  

<트로피컬 맬러디>는 올해 경쟁작들 중 가장 다른 ‘개념’과 ‘발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영화는 종종 멈춰 서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며 그 고요한 시간은 무한정 지속된다. 무성영화 스타일의 원시적 기운으로 넘어 간 영화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침투한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쿨의 세번째 영화 <트로피컬 맬러디>는 가장 극단적인 평가를 얻었다. 칸영화제 데일리 ‘스크린 인터내셔널’지의 별점 평가로는 현재까지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더불어 1.4점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트로피컬 맬러디>는 지금껏 상영된 경쟁작들 중 가장 많은 야유가 쏟아진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일부의 열렬한 지지자들 또한 만들었다. 또 다른 데일리인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 평가로는 프랑스 매체인 ‘까이에 뒤 시네마’와 ‘레페라쥐’가 황금종려상에 해당하는 가장 높은 점수를 줬다. 올해 칸영화제에 태국 영화로는 사상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한 아피차퐁 위라세타쿨의 <트로피컬 맬러디>는 벌써부터 올해 칸의 가장 의미심장한 컬트영화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젊은 군인 켕(반롭 롬노이)과 시골 소년 통(사크다 카에부아디)는 동성애 관계에 있다. 번잡한 도심과 한적한 시골 마을을 오가며 둘은 풋풋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통이 행방불명되고 마을의 가축들이 하나 둘 잔인하게 죽어 나간다. 통이 사는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이 무시무시한 요괴로 변하여 위험한 짓을 저지른다는 설화가 내려져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 통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통을 사랑하는 켕은 실종된 통을 찾으러 정글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는 암전과 자막을 통해 마치 무성영화를 보듯 설화를 들려준다. 여기서 정글은 또 하나의 살아있는 주인공이다.

아피차퐁 위라세타쿨 감독은 이미 다큐멘터리인 <정오의 신비스러운 사물 Mysterious Object at Noon>(2000)과 극영화인 <친애하는 당신 Blissfully Yours>(2002)으로 두 차례 칸의 ‘주목할만한 시선’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친애하는 당신>으로는 부산영화제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그의 차기작은 바로 부산영화제의 PPP 프로젝트이다. 그는 마치 대만의 차이밍량처럼 태국 영화산업의 스튜디오 시스템 바깥에서 고집스레 독립영화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트로피컬 맬러디> 역시 올해 경쟁작들 중 가장 다른 ‘개념’과 ‘발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영화는 종종 멈춰 서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며 그 고요한 시간은 무한정 지속된다. 정글에서 갑작스레 무성영화 스타일의 원시적 기운으로 넘어 간 영화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침투한다. 태국의 전래 설화와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울창한 자연 아래에서 두 주인공의 몸짓은 한없이 무상해 보인다. 아피차퐁 감독은 “현대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들 하나 씩의 질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트로피컬 맬러디>는 바로 그 무의식의 병을 치유하는 영화이자, 한 편의 아름답고 원시적인 퀴어무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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