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한중렬 2004-04-14 05:29:46
+1 725
선거가 코 앞에 다가오니 괜히 이런 글도 쓰고 싶어진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상적 선거'란 보수적인 행사이다.
자신의 의견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일인데다가,
일상적 상황에서 대표들이란 모두
무지개정책(극보수에서부터 진보 정책까지 몽땅 다 수용할 수 있는 척 하는 정책)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란 한마디로 현상유지, 즉 보수이다.

그러나 상황이 일상적이지 않고 커다란 사건을 전후로 벌어지는 선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변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변수가 안보에 관련된 것이면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테고
개혁에 관련된 것이라면 당연히 진보주의자들이 좋아할 것이다.

이틀남은 국회의원 선거는 차떼기와 명분이 부족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변수로 인해
기본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이 좋아할 일이다.
그리고 예상과 마찬가지로 지금 민주노동당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인기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독일의 녹색당의 인기에 버금간다.)

어라? 열린우리당이 아니고? 라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을텐데,
열린우리당은 강령이나 주장 자체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이다.(이라크 파병이 대표적)
우리당의 좌익날개인 유시민은 아주 애매모호한 진보주의자로,
이미 90년대부터 그의 논리들은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스러웠다.
때문에 순전히 '한나라당이 꼴보기 싫어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진보주의자라기보다는 단순히 정치개혁(정치판의 판도변화일뿐인)을 바라는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국회가 너무 싫어서, 한나라당이 너무 싫어서 열린우리당을 찍겠다는 것이다.

위의 행동은 일견 대단히 진보적인 행동으로 보일 지 모르겠지만,(상황이 그렇게 몰아감)
사실은 단순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투표라는 행위 자체가 진보와는 별로 상관없는 행위인데,
거기에 특정 정당에 대한 미움이 결합한다고 갑자기 진보적일리는 만무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을 찍는 것을 통해 스스로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려면
좀 더 전략적으로 정치개혁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염원하는 국회 지도는 다음과 같다.

1. 자민련 몰락.
2. 한나라당 소수당으로 전락(50석 정도?)
3. 열린우리당 과반수 이상
4. 민주노동당 20석 이상
그래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지도가 그려진다면 선거가 끝난 후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커다란 사안, 예를들어 파병이나 집시법, 안기부법, 친일파 문제, 경제문제, 파업 등에 대해 논란이 생기면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3당(우리당, 한나라당, 기타 뭐 하나 있겠지)은 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그들이 펼칠 정치가 한나라당보다야 낫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바리케이트가 첨예하게 형성되는 사안에 대해선 별 차이를 못 느낄 것이다.
우리당은 한나라당보다는 보다 '성실하게' 보수적인 정책을 통과시킨다는 차이점뿐?
조선일보와 같은 극우민족주의 세력들과의 싸움에서나 튈까..

따라서 국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원하는 뭔가가 이루어진다면
그건 민주노동당이 얼만큼 수완을 발휘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과는 별관계 없다.

고로, 열린우리당을 위해 민주노동당이 희생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주로 사표논리인데, 둘이 경합하다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으면 안된다는 식의)
참으로 보수적인 주장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하락은 그 당이 계속해서 보수적인 정책들만
어필하기 때문이지 결코 민주노동당이 선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원래부터가 한나라당을 좋아한다.
열린우리당이 괜히 어줍게 보수적인 척하면서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들을 지지했던 '열린우리당을 진보당이라고 착각했던' 사람들만 떨어져 나간다.

유시민의 말이 맞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경쟁상대이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둘이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싸움에서 각각 다른 편에 서서 경쟁하는 것이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표를 갉아먹고 싶다면
보다 진보적인 척을 해야했을 것이다.
그래야 대다수 사람들이 진보주의자들의 말을 듣고싶어하는 이번 선거판에서
한나라당을 묵사발 낼 수 있었을 것이다.(민주노동당과 함께)
바람이란 원래 이렇게 타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민주노동당에게 사표논리를 내세우니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그들이 잡았어야 할 사표란
민주노동당의 표가 아니라 그들의 어설픈 보수주의보다 확실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에게 이끌렸던 어설픈 보수주의자들의 표다.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어설픈 진보주의자들, 또 어설픈 보수주의자들
흔히 말하는 부동층을 하나도 잡지 못했다.

처음의 애기로 돌아가, 이번 선거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유리한 변수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확실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유리하다.
열린우리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민주노동당은 그렇게 했다.
선거가 전략싸움이라면 민주노동당의 전략이 승리한 것이다.
승자가 의석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사표 논리 따위에 휘둘릴 필요, 전혀 없다.

한군 2004-04-16 오전 06:34

형..퀴어노트 보고 파요..ㅠ_ㅠ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
1184 더는 참기 힘든 고참님의 포옹 +5 모던보이 2004-04-19 1217
1183 휴~주말 게이가 집에서 주말을 보내니 힘들구만~ 황무지 2004-04-19 1388
1182 故 육우당, 오세인 추모제 동인련 2004-04-19 575
1181 성 소수자 전문상담센터 자원활동가를 모집합니다... +4 성소수자전문상담센터 2004-04-19 573
1180 의회 노동자, 조승수의 다짐 신윤동욱 2004-04-19 724
1179 무더운 일요일 오후.. 2004-04-19 508
1178 영문번역자원봉사자를 구합니다 러브포원 2004-04-18 524
1177 축하드립니다....^^ +1 기즈모 2004-04-17 782
1176 영수증 보내주세요.. +1 송가연 2004-04-17 557
1175 무료 메시지 발신 프로그램 올려요... +2 poemtoon 2004-04-17 649
1174 한국속의 난민,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마'인들... 국제민주연대 2004-04-16 769
1173 감동 +3 모던보이 2004-04-16 756
1172 떳다! 여의도 개표 번개!! +5 신윤동욱 2004-04-15 667
1171 유시민 씨, 열우당에게 가는 게 사표입니다 +1 모던보이 2004-04-15 802
1170 4월 19일 영화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 시... +10 친구사이 대표탑 2004-04-14 1000
» 모두가 전략가가 되는 선거 D-2 +1 한중렬 2004-04-14 725
1168 4월 15일 ~!! 성 소수자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꼭... 붉은이반 2004-04-14 593
1167 내가 민주 노동당을 좋아하는 이유..? 나도 몰라~ 황무지 2004-04-14 678
1166 나는 동성애자, 민주노동당을 지지합니다 모던보이 2004-04-14 562
1165 오늘 저녁 영화 <라이어> 시사회 번개!!! +5 친구사이 대표탑 2004-04-13 926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