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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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는 테레비가 무심히 켜져 있었고,
몇몇의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테레비로 향해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한 남자, 수줍게 앉아 있는 소년에게 눈길을 흘린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컴컴한 다른 방 안에
들어가 아무말 없이  조용히 눕는다.

뒤따라온 남자.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남자가 말한다.

"착해보여요. 정말로."

소년은 작은 소리로 킥킥댄다.
그리고, 남자의 떨리는 손이 소년의 어깨를 감싼다.

"몇살이에요?"

소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나이를 펴 보인다.

"착해보여요. 정말로."

소년의 머리를 쓰담아 주는 남자.
소년도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남자에게서 낯익은 향기가 풍겨져 온다.
얼마 전에 맡았던 어떤 남자의 향기.

"이렇게 안고 있어도 돼죠?"

소년은 더욱 더 깊이 남자의 품에 파고든다.

"전 안아주는 것 밖에 못해요. 전 잘 몰라요."

소년은 남자의 가슴 안에서 혼자 미소를 짓는다.

"이름이 뭐에요?"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형씨라고 부를게요. 편하게..안 이상하죠?"

남자는 계속적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태원은 가봤어요?"

소년의 말투에서 장난끼가 묻어난다.

"한번이요. 홍석천씨가 하는 가게에 가서 혼자 맥주마시다가,
점원한테 물어 봐서 빠에 갔어요. 참 신기했어요."

갑자기 소년의 얼굴에 우울함이 묻어난다.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너무도 흡사한 이 남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하지만 소년은 내색하지 않고 쾌활한 목소리로
남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남자의 손길은 점점 더 떨려오고,
가느다란 숨소리가 흘러 나온다.

소년은 그런 남자를 놀리기라도 하듯,
남자의 젖꼭지를 살짝 핥고선 그대로 남자의 품속으로 숨어 버린다.
남자의 희미한 웃음.

"저 놀리시는거죠?"

남자는 소년에게 입을 맞추려다 그만 둔다.

"잘 안돼요.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소년.

"착해보이네요. 정말로."

소년과 남자는 섹스를 한다.
너무도 어설퍼서, 흡사 아이들이 장난치는 듯한 모습이다.

"미안해요. 잘 안돼요."

남자는 소년에게 팔베게를 해준다.

"우리 친구할 수 있을까요?"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어려운 부탁이죠?"

소년은 피식 웃어 버리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인다.

"잘 해주고 싶어요."

소년과 남자는 곧 잠에 빠져 들고,
남자는 소년을 향해 나지막히 속삭인다.

"착해보여요. 정말로."

아침.
소년은 눈을 떴다.
팔베게를 해주던 남자는 사라졌고, 헝클어진 이불 위에
덩그란히 홀로 남겨있는 자신을 확인한 소년은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꿈.
모든 것이 꿈처럼 그렇게 아스라히 사라졌다.
소년의 귓가엔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적으로 맴돈다.

"착해보여요. 정말로."





피터팬 2004-05-14 오후 22:48

누구에게든 아릿한 추억은 하나쯤 있다.

사랑은 때로는 격정적인 환희로
때로는 무너지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거부하지 말라!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