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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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끼리끼리의 한 활동가인 이민정입니다.

이번의 논의들이 아웃팅과 커밍아웃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로 발전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서,
중전 님의 글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짧게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지속적으로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벌여 나가고 있습니다.
동성애 혐오적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서는 공감하실 거라 믿습니다.

'아웃팅'은 분명히 폭력이고 범죄입니다.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노출되었을 때에 당할 수 있는
직간접적인 폭력, 집단으로부터의 배제 및 소외, 생명의 위협 등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무게감을 갖습니다.
동성애 혐오적인 한국 땅을 떠나 조금은 덜 억압스러운 외국으로 이주하는
성소수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더러 도망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망명을 한다' 고 말하곤 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입니다.
아웃팅 방지 캠페인의 유의미함을 폄하하시는 분들은
그게 도망가는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며 욕을 하실지 모르겠군요.

다소 오해가 있는 듯하여 밝히는 것이지만
저희 단체가 이야기하는 '아웃팅 방지 캠페인'은  '커밍아웃 반대 캠페인'이 아닙니다.
성소수자들에게는 '커밍아웃 할 권리'와 '커밍아웃 하지 않을 권리'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또한, '아웃팅'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커밍아웃 하지 않기'를 선택한 상대에게 그 개인의 성정체성을 노출시키는 것은
가능한 한 폭력의 범위 바깥에 있고자 하는
성소수자 개인의 '적극적 판단과 선택'을 무시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커밍아웃이 침묵에서 벗어나 서로를 지원하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활동의 출발점'임을
이야기하는 서동진 씨의 견해를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커밍아웃할 수 없는 현실을 힘겹게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모습을
'비겁하고 옹졸한 행위'로 폄하하는 서동진 씨의 견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한 문구를 굳이 뽑아내어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간 서동진 씨가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기형적이고 굉장히 보수적인 움직임' 이라고
매도해 왔던 것의 연장선 상에 있는 비슷한 문구에 대한 비판입니다.

중전 님의 글을 보면
마치 제가 양심적병역거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서
딱 한 문구만 잡아내어 '트집'을 잡는 것처럼 매도하시는데,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문제에 있어서
'커밍아웃'과 '아웃팅' 에 대해 입장을 내는 행동이
결코 사소한 걸로 트집잡는 걸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적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이어서 하도록 하지요.)

서동진 씨와 같은 입장에서 '아웃팅 방지 캠페인' 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아웃팅' 을 시켜서 많은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일단 '드러내는' 것이
- 그 개인이 어떤 폭력의 피해자가 되든 말든 -
전체 성소수자 인권향상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마 생각하시는 건지도 궁금하군요.
인권이 짓밟히는 상황 속으로 개개인을 들이 밀어놓고서
전체 인권의 향상을 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느냐고 묻고 싶은 겁니다.

저 역시,
어느 범위 내에서는 커밍아웃을 하지만
그 밖의 범위에서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으면서(못하면서) 살아가는
한 명의 성소수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러한 저의 현실에 대해 결코 부끄럽거나 옹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현실을 자꾸만 바꿔나가야 한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이처럼 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저와 비슷한 입장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대사회적으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그 이상 좋을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수차례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상황이 한스럽고 억울할지언정, 결코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활동을 위해 일정 범위 내의 커밍아웃을 하고서 혹은 하지 않고서
뒤에서 묵묵히 열심히 활동하는 활동가들,
그리고 성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각 개인의 여건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그저 격려를, 칭찬을 보내주고 싶을 뿐입니다.

절대로
'어째서 적극적으로 활동에 가담하지 않느냐',
'드러내는 것도 운동의 한 차원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며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못내 스스로를 부정하고 성정체성 문제로 인생을 비관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대사회적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람이
'너는 옹졸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라고 말하는 것은 대체 무슨 오만함입니까.
여전히 일상에서 심각한 호모포비아와 부딪치며
벽장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성소수자들을 생각할 때,
움직일 수 있는 이만큼의 여지라도 가지고 있는
저의 '여건'에 대해
저는 그나마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임태훈 씨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행위는
국가폭력에 대항하는 무척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 마지 않습니다.
분명 군대의 계간 금지법이라든지,
성정체성이 드러날 경우 군 정신병원에 구금시킨다든지 하는 현 상황은
꼭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끼리끼리가 여기에 지지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문제는 그 활동주체가 '임태훈'씨 라는 데에 있습니다.
임태훈 씨는 그 폭력적인 활동 방식과 비도덕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10개의 성소수자 인권 단체 및 커뮤니티와 개인의 입장으로 연대한 60여명의 성소수자들에 의해 동성애 인권 진영에서 탄핵된 바 있습니다. 임태훈 씨는 거기에 대해 일절 사과하거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상,
임태훈 씨가 다시 동성애자 활동가의 이름으로 어떤 활동을 벌여나가든,
당시 탄핵 움직임에 참여했던 끼리끼리로서는 결코 그의 활동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임태훈의 양심적 병역 거부 활동' 에
끼리끼리의 '아웃팅 방지 캠페인에 대한 노력' 에 보다
더욱 많은 가치를 부여 하는 중전 님의 견해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것은 끼리끼리 운동의 커다란 한 축을 단지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읽혀졌으며,
따라서 중전 님의 글도 결코 예의 있는 글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운동 진영 내에서
커밍아웃과 아웃팅에 대한 심화된 고민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글 마치겠습니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