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서동진입니다. 저는 일전 임태훈씨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글을 한겨레신문의 왜냐면의 지면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이 게재된 이후 끼리끼리의 활동가로부터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제 입장을 간략하게나마 밝히는 것이 커밍아웃이라는 쟁점을 다시금 생각하고 이를 통해 동성애자 운동의 전환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되어, 짧게나마 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그 활동가의 입장이 동성애자의 삶을 향한 그의 뜨거운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그의 태도와 다르지 않기에 성적 소수자 사회의 벗으로서 그에 대꾸를 하고자 합니다. 모쪼록 이것이 아웃팅, 나아가 커밍아웃을 둘러싼 동성애자 운동의 건강한 토론을 만들어내고 동성애자운동의 전망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들어 커밍아웃을 반대하는 기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한 명의 개인적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살 권리라면 비겁하고 또한 옹졸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제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에 대한 비난과 토론을 지켜보며 그러한 입장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남용하며 평범한 동성애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폄하하고 있다는 끼리끼리의 주장은 매우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특권적인 주체와 보통의 평범한 게이라는 이분법을 내세워 마치 아웃팅 반대 중심의 동성애자 운동에 대한 제 자신의 발언을 명망가이자 권력을 쥔 자의 오만한 횡포로 재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웃팅 중심의 운동인 것이지 제 개인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마치 그것을 제 자신의 특별한 처지에 대한 오해와 교만으로부터 비롯된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외려 끼리끼리 측의 불손함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커밍아웃에 관한 한 성적 소수자는 어느 누구도 특권을 가질 수 없음은 끼리끼리 역시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을 한 이들은 끼리끼리가 언급하듯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소외당하고, 사회적인 활동영역을 아주 잃어"버리는 차별과 적대를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저 역시 그로부터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뚜렷한 근거 없이 마치 제가 평범한 동성애자들이 직면한 절박한 두려움과 고통에 대한 이해 없이 커밍아웃하지 않는 보통 동성애자들의 삶을 비하하고 있다는 끼리끼리의 태도는 자신의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이없는 궤변일 뿐입니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상대적으로 박탈당할 것이 적었을 것이라는 것이 특권이라면 그것은 분명 특권입니다. 또한 동성애자라는 그의 소수자적인 삶의 위치가 그의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빛을 더하게 하였을 것이라는 점 역시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가 살았던 친밀한 삶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누려볼 만한 "이익"이자 "특권"인지는 의문입니다. 아마 그렇다면 그는 동성애자로서의 명성에 의탁해 자신의 영위를 추구하는 속물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저는 저를 비롯하여 커밍아웃을 결단한 이들의 한결같은 출발은 바로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감춘 채 살아야한다는 데 대한 실존적인 분노, 견딜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한 증오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웃팅에 관한 제 의견을 간단히 밝히겠습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폭로당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사회적 권리가 침해되는 것과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살 수 있는 권리를 프라이버시의 권리란 이름으로 옹호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이 동성애자로서의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서의 삶을 다루는 것이라는 상식에 따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동성애자로서의 삶의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은 끼리끼리 역시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웃팅의 문제를 프라이버시의 문제로 다루는 것에 반대할 뿐입니다. 성적 소수자란 점을 폭로하고 그로부터 그의 사회적 권리를 침해하고 위협하는 아웃팅이라면 이는 단호히 반대해야할 일입니다.

동성의 상대와 사랑을 나누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나누는 실존적인 개인으로서의 동성애자 역시 동성애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서의 동성애자는 성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는 침실의 동성애자가 아니라 직장에서의 동성애자, 학교에서의 동성애자, 병원에서의 동성애자, 가족에서의 동성애자입니다. 동성애자가 임금과 사회적 급부와 보장, 교육의 권리, 건강과 주거의 권리, 결혼과 가족화된 권리의 향유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당연히 자신을 그러한 권리의 주체로 주장하고 그런 권리의 내용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조건과 권리가 실현될 때 동성애자들은 더 이상 아웃팅의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운동"으로서의 동성애자운동은, 즉 시민으로서의 동성애자 되기는 불가피하게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을 "강요"합니다. 그것은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개인의 윤리적인 강요와 명령이 아니라 이성애주의적 사회의 강요이자 명령입니다.

물론 커밍아웃이 무엇보다 많은 개인적인 동성애자에게 두려움이자 공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의 딜레마이며 또한 지난 십여년 간 놀랄만큼 변화한 우리 성적 소수자사회가 직면한 곤혹스러운 한계인 것도 사실입니다. 직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는 그저 인간 일반 즉 이성애자로 가장한 채 살아야 합니다. 바와 클럽에서, 동성애자 웹사이트와 동호회에서, 동성애자 인권단체와 모임에서,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은밀한 이성애자 벗들과 가족 혹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동성애자로 살아갑니다. 물론 이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인 노력과 서로의 삶에 대한 지지와 격려 속에서 이뤄낸 위대한 성과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성적 소수자들의 의지와 서로를 향한 사랑에 언제나 경외감을 느끼고 또한 진정으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신과 같은 이들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 이 모두는 우리가 꿈꾸고 또한 얻어내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우리 성적 소수자들이 여기에 안주하지 않도록 채근하는 것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의무라고 믿습니다. 자신들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생존을 지배하는 사회적인 삶의 영역에서 이성애자로 가장한 채 살고 여가와 소비, 친밀성의 영역에서만 동성애자로서의 삶을 사는, 우리의 분단된 삶을 극복해내는 것, 이제 이것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이 해야할 일 아닐까요. 동호회와 클럽의 동성애자를 넘어, 시민으로서의 동성애자되기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임무 아닐까요. 저는 이런 생각에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한 아웃팅, 사회적 주체로서의 시민-동성애자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동성애자"의 권리에 머물려는 동성애자의 현실안주적인 경향을 부추기는 아웃팅 반대에 반대합니다. 저는 끼리끼리가 동성애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해결하고 그들의 행복과 권리에 대한 관심에 헌신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여성이 처한 사회적 생존의 위협을 직시하고 자신의 사회적 삶을 재생산하는 문제가 가족화, 사유화되는 흐름 속에서 여성의 빈곤화를 간파하며, 레즈비언 운동의 전망을 지혜롭게 사유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성의 사회적인 생존이 더욱 이성애적 결혼에 의해 규정되고, 가족을 통해서만 보장되는 현실이 레즈비언 여성에게 미칠 위험하고 해로운 영향을 깊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곁의 많은 레즈비언 벗들이 레즈비언으로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엄청난 성공과 안정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민이라는 사회적 주체로서, 성별화된 여성 주체로서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 레즈비언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차별과 억압, 배제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우리를 자극하고 또한 성숙시킬 동성애자 운동의 과제를 제시하기를 꿈꾸고 싶습니다. 이제 자신의 삶은 자기가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운명은 자기가 책임지고 자신의 처지는 자신의 능력의 계발에 달려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태도가 시대정신이 되어갈 때, 프라이버시는 그런 사악하고 위험한 시대정신의 알리바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평등한 분배의 문제를 제기하는 박탈당하고 착취당한 이들의 사회적 요구를 가진 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불순한 요구라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참담한 분노를 느낍니다.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고 그를 침해하는 아웃팅은 동성애자 운동가로서 목숨을 걸고 반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때의 아웃팅 비판은 그가 동성애자이기에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고 침해해야한다는 이성애주의적 권력의 비판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아웃팅 비판이 자신의 동성애자로서의 사적인 삶을 보호하는, 동성애자로서 겪어야 하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보호받는 유일한 방편이 그의 성정체성을 은폐하는 것이라는 비극적인 현실을 온존하는 것이라면 저는 아웃팅 반대에 반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임태훈씨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는 임태훈씨가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 많은 동성애자 운동 단체로부터 비판을 받아온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또한 그가 운동가로서 보여온 태도가 많은 운동가를 실망시키고 또한 상처를 주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용서받고 묵과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윤리적인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여도 또한 설령 그가 금치산자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충정을 부정하고 그가 겪어야 하는 부당한 처지에 대한 무관심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끼리끼리 활동가의 이야기처럼 임태훈과 저의 개인적인 친밀함이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다수의 비판을 고려하지 않은 지지를 낳았다는 억지는 저의 윤리적인 결단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의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것은 그의 양심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일일뿐입니다. 또한 어떤 이가 그 무슨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하더라도 그가 정당한 재판을 받고 그의 인권에 따른 대우를 받으며 자신을 변호할 충분한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 인권에 대한 본래적인 태도라는 저의 소박한 믿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존의 행적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반감을 억제하며 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인권을 존중하는 자의 태도라는 저의 개인적인 믿음이 잘못이라면 그것을 비난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끼리끼리 활동가의 비판이 동성애자인권운동이 직면한 현안을 새롭게 사유하고 서로의 지혜를 함께 발휘하는 뜻깊은 일이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비판이 저의 의견에 대한 비판에 머물지 않고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는 동성애자 모두의 대화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서동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