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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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2004-05-07 11: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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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용문객잔 (Good Bye, Dragon Inn, 2003)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의 배경을 한국으로 옮긴다면 정확히 '파고다극장'이 될 것이다. 사라져버리는 것들, 유령들의 출몰, 발자국 소리가 그렇다.

차이밍량은 내일이면 문 닫는 3류 극장 안의 2시간을 담담히 응시한다. 이 극장과 화장실은 호모들 몇몇에 의해 점령되었고, 장애를 가진 여성이 표를 팔거나 청소를 하고 있고, 호금전의 '용문객잔'에 출연한 노배우들이 극장에 수줍게 앉아 용문객잔을 떠나보내며 조용히 눈물 흘리고 있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모두다. 옛것을 떠나보내는 이들의 공허함이 극장 가득히 고여 있다.

40여 개 컷으로 구성된 차이밍량표 롱 테이크를 버틸 수 있다면, 적잖은 감동으로 우리 역시 '안녕, 용문객잔'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좌변기에 다 들러붙은 채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5분 여의 롱 테이크는 가히 숨이 막히고, 영화 끝난 후 빈 극장을 바라보며 좀체로 움직일 줄 모르는 카메라의 담담함은 옛 영화와 옛 극장에 대한 아쉬움을 극점으로 상승시킨다. 또, 장애 여성이 절뚝거리며 썰렁한 극장 안에 구두 발자국 소리를 잔향으로 뿌려놓는 그 살벌한 롱 테이크는 사람 없는 3류 극장의 공허를 가장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베니스 경쟁작이었던 이 영화가 영화제에 상영되었을 때 이탈리아 관객들은 이 엄청난 롱테이크에 야유를 보냈다. 차이밍량의 롱 테이크가 낯설었던 것이다. 비어있되, 흐느낌과 정서를 가득 채울 수 밖에 없는 그 여백이 못내 낯설었던 탓일 게다.

당신이 조금의 인내만 갖고 차이밍량을 대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미치도록 소통하고픈 역설을 대면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인으로 차이밍량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분명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게다가 그는 커밍아웃한 게이다. 이렇듯 정적인 영화에서도 극장 안 호모들의 크루징을 다룰 때만은 그 역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신작이 나왔을 때 영화관이나 영화제로 달려가게끔 자극하는 감독이 과연 몇이나 될까?


p.s

영화 마지막에 영사 기사로 나오는 차이밍량의 페르소나 이강생... 흠 많이 나이든 듯한 느낌인데 외려 그게 더 멋있어졌다는 느낌입니다. 유령으로 잠시 출연하는 양귀미 모습도 반갑네요.

가중 2004-05-08 오전 02:25

워낙 영화와 담쌓고 사는 요즘이지만, 차이밍량.. 말씀대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수박씨 까먹던 양귀매씨... 너무 매력적이었고(구멍에서 불렀던 "오빠는 풍각쟁이야~"류의 립씽크가 더 멋졌지만...), 덕분에 다음주 잠깐... 대만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룰루 2004-05-08 오전 04:05

구멍, 갑자기 뮤지컬이 나오길래 깜짝 놀랬던 영화였죠. ^^ 이강생은 팬티만 입고 있어도 멋있는 것 같아요. 다녀오는 김에 이강생 싸인 좀 받아다 주세요. ^^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timm 2004-05-08 오전 07:38

2004 퀴어문화축제에서 상영을 목표로 열심히 섭외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겠지요... 만약 상영이 결정된다면.. 많이들 보러오세요.. 퀴어문화축제는 6월 19일 부터이구요 영화제는 6월 25일부터 열릴 예정입니다. 오호호호호호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