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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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8

우리 엄마는 어떻게 보리밥을 먹냐고, 하지만 건강에 좋다니 양푼으로 퍼먹으라고 한다.

전화를 받자마자 '울랄라깔리료울라&%64#%&^$#@!'라고 소리치자,

"영어를 그렇게 하면 어떻게 혀?"
"그럼 어떻게 해?"
"헬로우 샥샥.... 그렇게 해야지."
"어, 그래. 엄마 나 보리밥 먹으러 가."
"어떻게 보리밥을 먹냐? 나 옛날에 하도 먹어서 지겹다 지겨워."
"어, 그래."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가기 시작한 두부 전문점이 하나 수유 역 근처에 있는데, 보리비빔밥 맛이 그만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끼리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종업원들이 눈총을 받으며 혼자 상 하나를 기어이 차지하고 마는 나.

까짓껏 외롭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다. 남원식당에서야 스포츠 신문을 하나 꿰어 차거나 테레비 리모콘를 꿰어차고 밥을 먹으면 그만이다. 집에서? 음.... 냉장고 폭파 사건이 있은 후 집에서 밥을 해먹지 못했다.

헌데 오늘은 스포츠 신문이나 테레비 리모콘이나 남원식당의 아줌마들 수다도 없이 혼자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꾸역꾸역 보리밥을 목구멍에 밀어넣자니 괜히 속이 쓰리고 목울대가 간지럽다. 부엌으로 통하는 창문으로, 가끔 혼자 와서 손님 많은 시간에 상을 차지하는 후질그레한 노총각을 깔끔이는 종업원들의 눈총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래도 용감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나, 튼튼한 위장 운동을 과시한다.

그런데 옆 밥상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에 오늘은 그 뻔뻔함이 금새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막 새로 사귄 듯한, 삼십 줄의 한 남녀. 대충 귀동냥으로 듣자하니 남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같고, 여자는 이혼녀 같다. 아까 둘이 담배 피우다 눈꼬리 뾰족한 여종업원한테 혼난 커플이다. 여자는 참 못생겼고, 남자는 참 고생 주름이 많다. 근데 참 그네들이 이뻐 보인다.

벌써 소주 세 병을 해치우고 마저 네 병째를 시킨 남자가 손을 거두고 나서 여자를 정면으로 보지도 못한 채 눈을 살포시 내려깐 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저번에 엄마한테 그랬어요. 나도 나중에 묻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냐고? 친구가 있어, 각시가 있어, 그렇다고 형제들이 살갑지도 않고....."

못난 이를 드러내고 히죽 웃는 남자. 나도 저렇게 포르포즈 해야지...

숱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MSN 메신저 아이디 '찬양하라 이 천재를'를 고수하고 있는 멍청한 나,  담박 머릿속이 지구를 한 바퀴를 돌고 내처 3억 광년 우주까지 쏜살같이 달려갔다 헉헉거리며 두부집에 다시 당도한다.

그래 나도 나중에 죽으면 묻어줄 사람이 있을까? 요즘엔 병원이다, 경찰서다 해서 혼자 방에서 꽥 죽어도 설마하니 그대로 썩게 방치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꼴깍 숨 넘기는  순간에 내 입에서 흘러나올 역사에 길이 남겨질 '명대사'를 받아적을 사람은 필요하지 않을까? 미국 놈들은 '죽음의 사회화 과정'에 한 술 더 떠서 '늙은 게이들을 위한 장례 서비스 사업'까지 한창 벌이고 있단다. 자식 없이 홀로 죽은 게이들을 푸른 잔디로 덮인 무덤에 안치시키겠다는 서비스 사업인 셈이다.

아, 그건 아닌 거 같다. 내가 가끔 술 먹으면 농담으로 주절거리는 질문, 내가 죽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진정으로 울까? 에 버금가는 이 '나도 묻어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새로운 화두 때문에 곧장 보리밥이 서걱이는 모래알처럼 변하고 만다. 밥맛이 뚝 달아났다.

혼자 차지하고 있는 밥상이 너무 커 보인다.


p.s
요즘 딱 2년 전 심정입니다그려.

Between The Bars, 엘리엣 스미스


노무현은 즉각 철군하라!

차돌바우 2004-06-23 오전 01:02

난 죽으면 화장 안하고 그냥 썩고 싶어.
묻을때 잘썩는거 같이 뿌려서 묻으면 뼈까지 다 없어지지 않을까?
화장하면 연료낭비에 환경오염까지 되자노.

생각해 보니 수장도 괜찮겠군.
고기들도 먹여 살리구 말이야.

모던보이 2004-06-23 오전 01:09

아냐, 차돌바우는 친구사이에서 일 열심히 하는 대가로 티벳식 장례를 치뤄줄께.
손도끼로 잘근잘끈 쪼아서 독수리에게 던져줄께. 편견만 버리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평생 살찌는 것 땜에 고생한 대가로 날렵하게 비상하는 독수리 영혼밥이 되는 거지. ^^

차돌바우 2004-06-23 오전 02:57

그것두 괜찮구려 ^^*
자네가 직접해줘 ^^

황무지 2004-06-23 오전 04:06

이쁜 소리 골라 하고 있군~~ ^^;;

미모의 여비서 S 2004-06-23 오전 09:08

자연파괴에 힘쓰시는군요 두분 다

아이언 2004-06-23 오전 11:52

형!밥 먹을때 전화해요.울집하고 가깝잔아요....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혹시 알아요..빚갑는 셈치고 파란 잔디이불 덥어드릴지....ㅎㅎ

ㅋㅋㅋ 2004-07-01 오후 19:10

동성애자중 한명 고르려다 여위치 않아서 ...걍 포기하고 모 단체 후원회원으로 등록 했다우~~혹시 나중에 부탁좀 할려그..웃고 말은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슴아픈 일이져..니기미~~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