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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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2004-07-23 08: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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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런치 (Naked Lunch, David Cronenberg, 1991)

네이키드 런치를 끝으로 1980년대 이후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은 대충 다 본 것 같습니다.

역시 악명이 높은 만큼 '네이키드 런치',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군요. 고급 관객(?)을 노린 이렇게 난해한 작품들을 용감하게 내놓는 감독들, 혹은 이런 풍토들, 부러운 일입니다.

'네이키드 런치'를 이해하는데 윌리암 S. 버로우즈의 원작 '네이키드 런치'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아내를 권총으로 살해한 경험이 있는 버로우즈의 주변 인물들과 그가 한때 살았던 모르코 지역에 대한 정보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긴 하지만, 크로넨버그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해독하는데는 부족한 구석이 많습니다.

영화 '네이키드 런치'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심판', '성'의 우화이기도 합니다. 또, 보들레르의 '인공의 왕국'의 영화적 구현이기도 합니다. 느닷없는 체포, 커다란 바퀴벌레로 변한 타자기와 사람 등에 달라붙은 보들레르의 괴물 조각상, 윌리엄 텔 놀이나 하자며 아내의 머리를 총으로 달려버리는 장면 등 초기 설정들은 카프카와 보들레르의 세계를 세밀하게 짜맞춘 페스티쉬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건 '한 발' 늦었다는 겁니다. 이래서 영화를 많이 봐야 하는가 봅니다. 보들레르의 '인공의 왕국'의 에세이 중, 아내의 머리를 쏘아 버리는 그 장면을 나중에 꼭 영화에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가 미리 선점해버렸군요. 아내의 머리를 쏘아버린 남편의 호모섹슈얼리티를 카프카의 소설 '성'의 호모-소셜한 분위기로까지 확장하는 크로넨버그의 내공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크로넨버그 영화들의 키 포인트는 '카프카'입니다.  (200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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