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모던보이 2004-11-23 05:26:11
+2 700
2002/12/23

정말로 진창으로 취한 날엔 그 못된 술버릇이 외출 나갔다 살포시 젖은 발 들이미는 밤의 영혼처럼 재귀하곤 한다. 전화를 거는 일이 그렇다.  

이 놈 저 놈에게 전화를 하지만 정작 술에서 깨어났을 때 난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 지겹게 반복되는 낭패감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정말로 진창으로 취한 날'에 어김없이 발동되는 이 못된 버릇.

술 취해서 전화 거는 일을 외로움에 지친 영혼들의 노크 소리, 라고 이쁘게 미화해보았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그깟 술 젖은 노크 소리에 꼭 닫힌 문 흔쾌히 열릴 리 만무하고, '쿨' 한 시대에 살고 있는 동시대 청년들이 나 같이 질펀한 촌뜨기의 주접을 받아줄 리도 없는 탓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전화를 돌려댔던 것 같다. 예전처럼 술만 먹으면 술집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오래된 사진의 뒷면을 슬쩍 훔쳐보듯 그렇게 과거의 인간들과 새로 만난 인간들에 관한 기억들을 조각조각 몽타쥬하곤 한다.

더 낭패인 것은 예전에는 그렇게 취해서 전화를 해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나중에 전화 받은 사람한테 욕찌기를 좀 얻어먹어야 환기했는데, 요즘에는 요 핸드폰 단말기에 고스란히 전화 번호들이 남겨져 있어 빼도 박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나한테 한 번이라도 괴로움을 당한 사람이라면, 자다 말고 깨어나 몽당 연필 자루 같이 잘 쥐어지지 않은 내 혀 꼬부라진 소리에 고문을 당한 사람이라면 다음부터 아예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런 게 쿨하고 좋다. 그러면 나도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 번호를 확인하고 낭패감을 곱씹는 일이 좀 줄어들 게다.



2004-11-22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전화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Elvis Costello | GloomySunday

라이카 2004-11-23 오전 07:38

저도 한창 술마시고 다닐 때, (가장 피크는 제대 후 복학한 즈음) 술버릇 중에 하나가 전화하기 였지요. 아침에 일어나 통화기록에 남겨있는 이름들, 그리고 야이 xx야, 로 시작되는 전화받은 이들의 성토(?) 전화들.
지금은 저도 그 버릇을 고쳤어요.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쓸데없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은 이기심이 더 작용했던 듯 싶어요. 지금은 만땅 취하면 오히려 입이 굳게 닫혀 버리곤 해요.

2004-11-24 오전 05:31

술이 취하면 자기가 전화걸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그 봄날의 간다의 유지태 처럼,술자리에서 몰래 빠져나와 술취한목소리로 많이 보고싶다는 고백같은거.참 기분좋은 느낌인데,(받는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술취한 애인에게 많이 보고싶다는
전화받으면 기분좋죠..아~~ㅠㅠ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수
2044 12월 4일 인권콘서트합니다. 민가협 2004-11-24 615
2043 27일 밤엔 여기서 한잔 하시는 것이 딱입니다. 한채윤 2004-11-24 728
2042 27일에 정기모임 있어요.~~ +6 라이카 2004-11-24 694
2041 죄송합니다. 밑에 제 글 좀 지워주세요 ^^:: 다시... 김치문 2004-11-23 697
2040 늙은 죄밖에는, 그리고 패러디 +2 명품 미모 2004-11-23 797
» 술버릇 +2 모던보이 2004-11-23 700
2038 佛유명카페 문학상에 美 게이소설가 +14 눈 멀 미모 2004-11-23 2188
2037 48세 나이에 성정체성을 깨닫다 queernews 2004-11-22 777
2036 만화 : 미스터 레인보우 눈부신 미모 2004-11-22 1933
2035 사랑니 +16 스탠바이미 2004-11-22 849
2034 지엠(G.M 대우아님^^)이미지광고 1탄 +1 한중렬 2004-11-22 708
2033 감사드립니다 +6 물바람 2004-11-22 530
2032 여성과공간문화축제'김공주,궁전예식장 점거하다' 여성문화예술기획 2004-11-22 595
2031 하느님께서 그렇게도 단호히 동성애를 반대하시는... +5 하나님 2004-11-21 914
2030 11월26일 동화작가 박기범과 성소수자들의 반전평... +2 동인련 2004-11-21 665
2029 추억의 율동 삼인조, 소방차 +1 플라스틱 트리 2004-11-21 1062
2028 11월 27일 HIV/AIDS감염인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나누리+ 2004-11-20 569
2027 아버지와 아들 +2 모던보이 2004-11-20 1021
2026 마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7 이쁜 게 죄야? 2004-11-20 2960
2025 Lies of handsome men / 아마 '올해의 내 노래' ... +3 기즈베 2004-11-20 750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