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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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news 2004-12-25 21: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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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455쪽, 9800원

영화 ‘북경반점’과 ‘총잡이’의 시나리오를 썼고, 현재 영화연출을 준비중인 특이한 이력의 늦깎이 소설가 천명관(40)씨는 ‘소설이 별거냐, 결국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의 두번째 소설로 그에게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안긴 장편소설 『고래』는 다채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많은 표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는 소설가가 아니라 소설도 쓰는 시나리오 작가이거나, 시나리오와 소설의 경계는 과연 무엇이며 그런 구획짓기가 무슨 소용이냐고 묻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관은 이런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일점 일획 어긋남이 없다는 성서조차 의심을 받는 판국에 세상에 떠도는 얘기를 믿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뚜렷한 반증도 없이 무턱대고 의심만 할 수도 없는 노릇…”(82쪽)


어쨌든 ‘믿기도 그렇고 의심하기도 뭣한’황당한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풀어놓는 그의 입심은 대단하다. 그리고 이야기감들은 변화무쌍하다.


우선 소설의 주인공 춘희부터 초현실적으로 설정돼 있다. 4년 이상을 어미 금복의 몸 안에서 정충 형태로 지내다가 태어날 때 이미 7㎏에 달했던 춘희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100㎏을 넘어선다. 천하장사인 그녀는 벙어리이지만 곡마단 출신 아프리카 코끼리 점보와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금복은 자신의 홀아버지가 딸에 대한 음욕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을 선택하도록 몰아갔을 정도로, 사내를 홀리게 하는 암내와 딱 벌어진 엉덩이가 두드러진 육감적인 여인이다.


천씨는 금복에 눈이 뒤집힌 부둣가 건달 ‘칼자국’을 통해 일본 야쿠자의 세계를 그려보이기도 하고, 창녀 ‘수련’을 통해서는 성전환과 동성애를 선보인다. 금복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이상 분비로 남성화된 결과 수련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또 800명이 숨진 화재의 방화범으로 수감된 교도소 안에서 춘희는 연쇄살인범 ‘미장이’와 이종격투기 성(性)대결을 펼친다.


이야기감에 대한 천씨의 무자비한 식욕 앞에는 성역도 없다. 남성화되기 전 한창 바람기가 동했던 금복은 교회 신축용 벽돌을 기부하라며 찾아온 젊은 목사를 유혹, 침실로 이끈다. 나중엔 예배당은 지어주면서 왜 절은 안 지어주냐며 스님까지 따지러 온다. 지식인 사회를, 잘못 끼어든 승냥이를 냉담하고 잔인하게 쫓아내는 이리 무리에 견주기도 한다.


때문에 첫 생리를 시작하기 전 자연과 교감하고 동물들과 감응하는 춘희의 모습을 서정미 넘치는 문장으로 묘사한 대목(255쪽) 역시 소설의 재미를 위해 동원된 수많은 ‘표정’ 중 하나로 느껴진다.


소설의 뼈대는 금복과 춘희 모녀의 인생유전이다. 금복은 아버지를 피해 가출한 후 바닷가에서 목격한 고래를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로 여긴다. 고래처럼 큰 것, 빛나는 것을 추구하다 벽돌공장을 차리게 되지만 얼마든지 다른 업종으로 대체 가능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반면 춘희에게 어린시절 벽돌공장은 북적대는 인부들 틈에서 외롭거나 쓸쓸할 겨를이 없었던, 행복했던 공간이었다. 결국 춘희는 10년을 복역한 후 벽돌공장으로 돌아가 늙어 죽을 때까지 ‘명품 벽돌’을 만들고 훗날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추앙받는다. 다분히 우화적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한국전쟁·군사정권 등 현대사가 등장하지만 이야기 전개에서 멀찍이 물러나 앉은 배경일 뿐이다.


그 때문에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다채로운 이야기 거리와 그것들을 유쾌하고 짜릿하게 버무리는 천씨 특유의 입심에서 나온다. 가령 금복과 벽돌제조의 달인 문(文)이 기찻길 옆에서 정사를 벌이는 대목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


문학동네작가상 심사를 맡은 소설가 임철우씨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뜻밖에 굉장한 흡인력을 발휘하면서 결말까지 숨가쁘게 몰입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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