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까지 한 이 년 정도 집에 몹시 안 좋은 일이 생겨 경기도 북쪽 지역에서 산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가난한 마을이었었는데 우리 집은 그 마을에서도 제일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야만 있었다.
그래도 집 뒤쪽으로 산도 있어 가을이면 밤도 주워 먹으며 여동생과 혹은 또래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던 거 같다.
눈이 엄청 쌓여 있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의 손에는 산타에게 받은 거라며 여자 아이들에게는 조그만 인형 등이 그리고 남자 아이들에게는 모형 칼이나 장난감 등이 들려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마을이래도 자신의 어린 자식들이 눈치 받는 것이 싫은 부모님들이 화려하진 않지만 큰 맘 먹고 사 주신 것들이리라.
아이들은 손에 쥔 것들을 흔들고 서로 바꿔보며 한창 난리들을 부렸다. 자신에게는 왜 산타가 오지 않았나 하는 섭섭함과 아이들이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에 아무 말 없이 눈이 촉촉해진 여동생과 달리 난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고 따라서 모든 원망이 부모님에게로 쏠렸다.
심술이 잔뜩 오른 난 아이들에게 그건 산타가 준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부모들이 머리맡에 두고 속인 것이라며 땡깡처럼 회방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기분이 한창 오른 아이들에게 나의 회방은 먹힐 리가 없었다.
난 동생을 데리고 언덕에 올라 비닐 푸대로 눈 미끄럼을 타며 분을 식히고 있었다. 날은 어둑해져 저 멀리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집으로 들어가자며 보채는 동생의 칭얼거림이 있었지만 난 한참을 그러다 마지 못해 동생과 집으로 들어갔더랬다.
옷은 당연히 눈 범벅, 흙 범벅이 되어 젖어 있었고 어머니의 꾸중이 시작되었다. 식사 때가 되어서 걱정하는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고 옷을 망쳤다고 나무라시는 어머니에게 심술과 속상함이 극에 달한 난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물었다. 다른 집에는 다 왔다간 산타가 우리 집엔 왜 오지 않은 거냐고? 갑자기 당황하시는 어머니의 얼굴빛을 뒤로하고 좀 분이 풀린 난 득의양양 TV 앞으로 와 딴 짓에 열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추위로 얼굴이 빨갛게 시린 어머니가 주섬주섬 뒤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사실 어제 산타가 주고 갔던 건데 어머니가 깜박했노라며 꺼내 놓으신 건 다름아닌 과자 ‘산도’ 한 박스였다. 그나마도 반만 남은..
동생은 그거라도 좋다고 반색이 되어 산도를 집어들었지만 틀림없이 어머니는 얼른 가게에 가셔서 주머니 사정에 맞는 팔다 남은 산도를 사 오신 것이리라.
어린 깜냥에도 어머니에게 잘못했다는 마음과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섭섭함 등의 복합적인 맘이 섞여 한 손에 쥔 산도 위로 굵직한 눈물 방울깨나 떨어뜨렸더랬다.^^
지금은 잘 먹지 않지만 가끔 가게에서 산도를 볼 때면, 특히 요즘같은 크리스마스 철이면 그 날에 대한 생각이 나서 잠시 싸한 웃음 한번 머금게 된다.
사무실에 오다가 산도 한 상자를 사 왔다. 이거 까 먹으면서 부모님에게도 전화하고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도 연락 한번씩 돌려야겠다.^^
노래 : christmas song (Dave Matthews 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