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처음으로 고백하는 건데, 나는 다른 상어들이랑 달라. 여태까지 이걸 숨기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몰라.”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샤크’(원제 Shark Tale)에서 상어계의 보스인 아버지 돈 리노(목소리 로버트 드 니로)를 피해 달아난 레니(잭 블랙)가 피라미같은 작은 물고기 오스카(윌 스미스)에게 자신은 채식주의 상어임을 ‘커밍 아웃’하는 장면의 대사다. 레니는 상어답지 않게 매우 감성적이며 예민하고 친절하며 예쁜 것을 좋아하고 이 때문에 ‘정상’인 다른 상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장면 아닌가? 그렇다. 이 영화에서 ‘채식주의’를 ‘동성애’로 살짝 바꿔치기 해도 모든 상황이 들어맞는다. 실제 미국의 한 동성애 사이트인 ‘게이 라이프’에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꼭꼭 숨기고 살아왔던 많은 남성들이 이 작품을 본 뒤 우리에게 수십통의 메일을 보냈다”는 내용이 담긴 영화 리뷰가 실리기도 했을 정도다.

‘샤크’에서 채식주의자 상어 레니가 남성동성애자들(게이)에 대한 은유이며, 이 작품이 동성애에 매우 우호적인 영화(pro-homosexual)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드림웍스의 전작인 ‘슈렉’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에는 현대 미국 사회와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기호와 약호들로 넘쳐난다. 바닷속 세계는 코카콜라, 버거킹, 마사 스튜어트, CNN 등을 패러디한 광고판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고, ‘조스’, ‘씨비스킷’,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 등 영화들이 우스꽝스럽게 인용된다. 전체 극구조는 갱스터 영화와 수퍼히어로영화, 스타탄생기 등 장르를 비틀고 뒤집고 섞어놓았다.

이 중에서도 이 영화의 가장 돋보이는 매력 중 하나는 목소리를 연기한 할리우드 스타(로버트 드니로, 윌 스미스, 잭 블랙, 르네 젤위거, 안젤리나 졸리, 마틴 스콜세지 등)를 꼭 닮은 상어와 물고기들의 캐릭터. 그중에서도 채식주의자 상어 레니의 존재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잭 블랙이 여성스러운 목소리톤으로 연기하는 채식주의자 레니는 육식동물인 상어세계에서 ‘비정상’으로 취급받고 흉포한 아버지 돈 리노로부터 냉대를 당한다. 그는 ‘가업’(fammily business)을 이어받을 것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마초 아버지와 폭력적인 상어세계로부터 도망쳐 작은 물고기인 오스카와 친구가 되고 기꺼이 그의 일을 돕는다. 그는 돌고래로 변장하기도 하고, 원색적인 예쁜 옷으로 치장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트랜스섹슈얼’(성전환)이나 ‘트랜스베스타이트’(옷 바꿔입기) 등에 대한 암시이다. 가부장적 질서나 이성애중심주의를 상징하는 상어세계의 경우에는 폭력성과 공격성, 호전성이 강조되는 데 반해 게이인 레니는 친절함과 섬세함, 감성, 부드러움을 갖춘 캐릭터로 묘사되는 것도 재미있다.

픽사의 ‘인크레더블’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 가족(가업!)이 악한과의 대결에서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가족주의와 가부장적 질서 등 보수주의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데 비해 드림웍스의 ‘샤크’는 슈퍼히어로영화의 장르적 틀에 기대면서도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난 레니와 오스카가 힘을 합쳐 상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샤크’는 내년 1월 7일 개봉한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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