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 (Les Valseuses, 베르뜨랑 블리에, 1974)
베르뜨랑 블리에의 3대 수작 중 두 번째를 봤군요.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은 90년대 초반에 누군가가 구해온 비디오로 보며 참 이상한 영화군, 하며 속으로 읊조렸던 영화.
'고환'은 베르뜨랑 블리에의 처음 히트작입니다. 대략, 프랑스판 히피즘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영화는 원래 파격적인 성 묘사로 유명했었는데, 그거야 당시의 관점일 테고 지금 보면 뭐... 그렇네요. 연상 여인과 두 남자와의 쓰리섬 관계는 '이투마마'를 연상시키는 대목이고요.
두 남자와 한 여자간의 사랑을 다룬 거개의 영화들은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남성들간의 유대을 확인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가부장적 전략을 취하곤 합니다. 이브 세지윅의 주장처럼 여성을 교환하는 남성 유대체 내부에서 동성애는 대부분 생략되거나 거부되기 마련이죠. 야쿠자, 군대, 사창가를 찾으며 우정을 찾는 머슴애들 등등. 헌데 영화에서는 에로스의 깊이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호모에로틱한 이미지들을 그 사이에 집어넣기도 합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의 버디 무비들에서도 간간히 그런 흔적이 드러나며, 이투마마에서도 이런 감정 라인이 등장하지요.
이 영화 '고환'의 특이할만한 점은 아예 초반부터 여성을 교환하는 이 프랑스판 히피 두 남자 사이에 '섹스'를 설정해버린 점입니다. 비록 컷으로 생략되긴 하지만 끊임없이 이 사건을 두고 둘이 시비를 걸며 다투는 장면은 꽤 웃긴 구석이 있더군요. 계속 쌍둥이처럼 옷도 거의 똑같은 걸 입고 다니며 설쳐대는 장면들도 재미있습니다. 또 이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게, 주인공들이 '사랑'을 소유로 인식하지 않는 점입니다. 사랑은 그저 짧은 '점유'의 시간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소유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히피즘의 강령을 그대로 영화에 옮겨 적은 꼴이지요. 하지만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이성애 남성 자아의 아마추어적인 관습에 대한 저항을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상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꽤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도둑질을 하다 고환에 총을 맞고, 자신들이 좋아했던 연상 여인이 쓰리섬을 즐긴 후 성기에 대고 권총을 쏘아 죽는 등의 '쎈' 장면들도 포진되어 있고요, 사물이든 사람이든 소유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 대로 시간을 활용하려는 70년대 젊은이들의 치기어림이 프랑스 특유의 영화 색깔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베르뜨랑 감독과 계속 작업을 했던 제라르 드빠르디유의 비교적 젊은 날도 볼 수 있고요.
베르뜨랑 감독의 정점이라 불리우는 '손수건을 꺼내라'를 보고 싶은데 쉽게 찾을 수가 없군요. 쩝.... 이 영화 '고환'의 업데이트라고들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