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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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서 2004-04-13 16: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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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채윤님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부대표이자 최근 ‘웹진’으로 전환한 동성애 잡지 ‘버디’ 편집장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기획한 ‘두 번째 커밍아웃’ 토론회에서 한채윤님이 발표한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 10년 연도별 총평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1994, ‘친구사이’와 ‘끼리끼리’의 탄생


동성애를 성적으로 타락한 서구 사회의 산물 정도로 생각할 뿐, 동성애자는 한국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고 믿을 정도로 인식 수준이 낮았던 그런 시기에 ‘친구사이’와 ‘끼리끼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93년 12월에 결성된 ‘초동회’가 해체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의 뿌리가 깊은 한국사회에서 아무리 동성애자라지만 남성과 여성의 활동 방식과 내용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종로 낙원동과 같이 자체 커뮤니티가 있었던 게이들은 ‘친구사이’를 바로 조직했지만, 레즈비언은 자체조직을 만들 역량과 인원이 부족했다. 초동회 창립 멤버인 전해성씨는 친구사이 소식지에 홍보를 하는 등 10개월을 기다려 5명의 레즈비언을 만나게 된다. 이들이 뜻을 합치게 된 것이 바로 ‘끼리끼리’의 탄생이다.


1995~1996, 성정치학과 동성애자인권운동


서울대와 연세대에 동성애자 모임이 발족되자 신문지면은 소란스러워졌다. 당시 이정우씨와 서동진씨는 전국 대학을 중심으로 초청강연 등의 활동을 펼쳐나갔고, 동성애를 학술적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페미니즘을 비롯한 성담론이 활발해지는 시점에 미셸 푸코, 성 정치학의 국내소개가 맞물려 동성애 담론은 유행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1995년 6월엔 4개 단체가 연대하여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를 결성하고 기자회견까지 열게 된다. PC통신에 동성애 논쟁이 크게 일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96년의 동성애 커뮤니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전의 커뮤니티는 게이바든 인권 단체든 사람들이 모인 곳을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면, PC통신 모임의 등장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다른 동성애자들과 만날 수 있게 했다.


또한 MBC와 SBS에서 비슷한 시기에 금기의 벽을 깨고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가 나온 점도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1996년은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을 둘러싼 논쟁으로 뜨거웠다. ‘송지나의 취재파일’은 처음으로 레즈비언만을 다루었다. 전해성, 이해솔, 김은하 씨 등 4명의 레즈비언(끼리끼리 회원)의 커밍아웃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고, 이 날 이후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인구가 2배로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1997~1998, 거리로 나온 동성애자


1997년에 1월 14일은 “한국 동성애자들이 처음으로 거리시위를 한 날”이다. 당시 노동법과 안기부법이 날치기 통과되자 노동계는 총파업에 돌입했고, 그 시위에 용기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깃발과 유인물을 들고 참여했다. 7명으로 시작한 연대시위는 날이 흐르면서 70여명으로 늘어났고, 유인물 제작기금 모금운동도 있었다. 이 때의 경험은 6월,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있었던 ‘동성애를 차별화하는 교과서를 개정하기 위한 집회’로 연결된다.


동성애자의 모임은 각각 PC통신모임, 153모임, 인권운동모임, 대학모임 등으로 나누어지고, 단체명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전국적으로 30개에 달했다. PC통신 모임들도 모두 정식 동호회로 승격되면서 통신공간 상에서 동성애 동호회는 더 이상 소수라는 이름표를 떼게 된다. 전국 동성애자 단체 23개가 모여 결성한 ‘한국동성애자단체협의회’는 인권과 친목이 더 이상 대립이 아니라 하나임을 표방한다.


한편 언론의 동성애 관련 기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 3월에는 동성애 잡지 <버디>가 한국 최초로 정식 출판 등록을 하고 서점 유통을 시도했다. 이외 무가지인 게이잡지 <보릿자루>, 레즈비언 잡지 <니아까>의 활발한 활동, <게이문학>지의 발간과 레즈비언 바의 수필모음집이 묶여지는 등 출판활동도 상당히 활발히 진행됐다. 또한 1997년 당국의 압력으로 무산된 서울퀴어영화제가 9월에 성공적으로 개최가 된 것도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999~2000, 인터넷 천하 속 홍석천 커밍아웃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으로 많은 동성애자들이 몰리게 되면서 ‘엑스존’, ‘강아지방’, ‘블루디스’, ‘tgnet' 등이 대표적 동성애 사이트로 떠오르며 다수의 이용자들이 점하게 된다. 동성애자 커뮤니티는 2000년에 접어들면서 완전히 인터넷 중심으로 전환되고, 동성애자 사이트는 양적, 질적으로 급속한 팽창을 나타낸다.


이런 인터넷상의 빠른 움직임과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사회적으로 별다른 이슈거리도 없고, 단체들도 모두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기에 접어든다. 반면 조금씩 생겨나던 이태원을 중심으로 한 게이바들은 99년에 이르러서 종로보다 더 큰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이 때부터 중년층 동성애자는 종로, 청년층은 이태원, 레즈비언은 신촌이라는 공식이 자리잡는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동성애자 인터넷 까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또 하나의 세력권을 이루게 되었다. 이런 변화에 연관되어 성인 위주의 동성애자 모임에서 환영 받지 못하던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제목소리를 내며 청소년 동성애자 문화가 독자적인 위치를 갖게 된다. 특기할만한 것은 ‘퀴어문화축제-무지개2000’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2000년도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홍석천의 커밍아웃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갑자기 터진 것이다. 동성애자 활동가들은 사회단체들과 연합하여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커밍아웃에 의한 불이익을 막아보고자 하였으나 다수 동성애자들이 뒷심을 모아주진 못했다.


2001~2002, 하리수를 넘어


2001년은 ‘여자보다 이쁜 여자’ 하리수가 3월 모화장품 회사의 CF모델로 성공을 거두면서 이른바 ‘하리수 신드롬’이 불어 닥쳤고, 이것은 전년도의 홍석천 커밍아웃과 더불어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없애는 높은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하리수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결국 외모지상주의의 발로이고,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되는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그리고 청소년보호위원회와의 본격적인 싸움판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도 있다. 정통윤에서 해외사이트검열을 하면서 세워놓은 기준에서 동성애를 퇴폐2등급으로 한 사실을 발견해 공식 항의서한을 보내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2002년엔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이 청보위와 정통윤을 상대로 ‘청소년 유해매체물 고시 무효 확인’ 행정소송을 냈다.


또 한 가지 매우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와 동성애자인권연대간의 매우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급기야 10개 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와 커뮤니티, 그리고 동성애자 63명이 한 단체 대표를 한국의 시민단체사회에 고발하고 탄핵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로 나아갔다. 밖으로 표출되어 더욱 증폭된 갈등은 2002년도 말까지 계속 이어졌고 이것은 한국동성애자연합,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12월 마침내 하리수의 성별 정정이 받아들여지면서 이후 법원에서 성별 및 성명 개정을 허가하는 판결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외 컴투게더, 사람과사람 등 대학 동성애자 모임을 비롯해 동인련, 끼리끼리 등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동성애자 차별 시정의 기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한 해이기도 했다.


2003, 사회와 동성애의 정면충돌


2003년 상반기는 자살과 청소년이 최대의 키워드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 내 동성애 차별 조항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내리고 몇 년 동안 요지부동이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함으로써 매우 뜻 깊고 소중한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종교의 편협함을 질타하며 16세의 윤모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유난히 동성애자의 안타까운 자살 소식이 이어져 큰 슬픔을 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청소년의 동성애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반기에 들어서는 연이어 수혈로 인한 HIV 감염 사례가 재차 보도되면서 동성애자의 헌혈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또한, 법적인 권리 투쟁에 있어서도 동성간의 동거를 사실혼 관계로 보지 않는 판결과 엑스존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에서 다시 패소하게 되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한 해였다. 반면 홍석천의 방송복귀라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고, 전문적인 동성애자 에이즈 예방팀이 생기는 등 진일보하는 변화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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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