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title_Free
모던보이 2005-02-15 19:54:37
+10 1138



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조셉 맨키위츠, 1959)
캐서린 햅번, 몽고메리 클리프트, 엘리자베스 테일러


근사한 퀴어 고전 영화.

이 영화의 크레딧을 자세히 보면 흥미진진한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각색가가 테네시 윌리암스와 비어 고달로 되어 있어요. 원작자가 원래 테네시 윌리암스였는데 비어 고달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거지요. 뭐가 특이하냐고요? 이 원작은 테네시 윌리암스가 자신의 희곡들에서 이미 많이 써먹은 주제를 변주하고 있는데, 당대 커밍아웃하지 못했던 동성애자 테네시 윌리암스와 숨겨진 게이들을 솎아내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비어 고달이 함께 이 작품을 썼다는 게 일단 흥미로운 거지요.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들 대부분에서 다뤄지는 '욕망이란 이름의 추상적 리비도'는 가족 제도에 의해 일단 억압된 것들이지만, 테네시가 자신의 동성애를 드러내기 위해 외연에 치장한 각종의 미끼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동성애가 억압된 사회에서 동성애자 예술가들은 종종 억압된 여성의 욕망 등을 비롯한 각종의 리비도에 대해 언급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한꺼번에 죽고, 한꺼번에 살자는 거지요.

윌리암스는 희곡을 통해 집요하게 가족 제도를 공격했습니다. 콩가루 집안의 숨겨진 내막을 낱낱히 파헤쳐서 그늘진 욕망의 해부도를 드러내야만 직성이 풀렸던 양반입니다. '피크닉', '뜨거운 양철 지붕의 고양이'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협연해내는 욕망의 교향곡은 대책이 안 설 정도지요. 또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지난 여름 갑자기'를 통해 자신의 동성애에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억압된 동성애가 어떻게 한 가족을 풍지박산내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넓은 의미의 퀴어 문예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여름 갑자기' 역시 더욱 노골적으로 이것을 드러내고 있어요. 어머니와 사촌 여동생을 미치게 만든 것은 아들의 동성애였던 겁니다.

연극적인 영화입니다. 딱 세 시퀀스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장난이 아니네요. 여성 영화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조셉 맨키위츠. 차일피일 미뤄뒀는데 그의 '이브의 모든 것'도 얼른 봐야겠어요. 흠.... 캐서린 햅번의 카리스마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녀가 입만 열어도, 눈을 지긋이 내려깔면서 상대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압도하는 힘이 뻗쳐나오는군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녀의 카리스마 앞에서는 영 힘을 못 받고 있네요. 이 영화로 두 여자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었습니다. 외려 늙어버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두 여자의 카리스마에 짓눌린 형국입니다. (공교롭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더불어 한때 세기의 꽃미남으로 분류됐던(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사후에 바이섹슈얼이었던 게 알려졌지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씨퀀스 1
돈이 없는 신경외과 존에게 어느 귀부인이 후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귀부인 집에 가서, 그녀의 아들이 만들었다는 기괴한 정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요. 귀부인은 그에게 자신의 조카딸이 자기 아들의 죽음 때문에 미쳐버렸으니 그 정신병을 고쳐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병원을 지어주겠다고요.

씨퀀스2
존은 병원으로 조카딸을 데리고 와 상태를 관찰하지요. 하지만 이상한 게 미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해대는데, 직감적으로 의사는 귀부인의 아들의 죽음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귀부인은 얼른 조카딸을 뇌수술하기를 바라지요.

씨퀀스3
아들이 죽기 전에 지어놓은 정원에서 모든 사건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귀부인과 조카딸은 아들에게 '미끼'였습니다. 동성애자인 아들은 그녀들이 '꼬셔서' 데리고 온 남자들에게 관심이 있었고, 두 여자는 서로 생산력을 놓고 다투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아들과 조카딸이 유럽으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거기에서도 가난한 미소년들을 돈과 조카딸의 미모로 꼬시던 아들은 결국 그 지역 소년들에 의해 살점이 뜯겨가면서 죽게 되지요.

마지막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회상 씬이 압권입니다. 독특한 디졸브 방식으로 회상과 테일러의 고백을 뒤섞은 솜씨가 참 매력적이네요. 이 영화의 대사처럼 '진실은 바닥이 없는 우물의 바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진실 하나를 드러내기 위해 가족들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걸 꼼꼼히 그려낸 수작.

못 읽어보신 분이라면 테네시 윌리암스의 희곡 한 편 정도는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되던 시절에 가족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또 어떻게 구성원들의 욕망이 억압되고 분출되는지 그 리비도 역학의 지독한 통증을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연극 포스터



흑진주 2005-02-16 오전 01:43

모던보이님 다시 서울로 올라오셨나봐... 반갑군요. 언제 한번 술 한잔 해야지요... 다만 내사랑 몬티를 꽃미남이 아니라고 한 건 용서할 수 없써!!!

백진주 2005-02-16 오전 05:32

흠.... 뭐라니? 내사랑 몬티는 또 뭐니? 얼마나 거시기하게 생겼으면 기억도 안 난다 얘.

파란진주 2005-02-16 오전 09:27

에궁, 가짜 진주 판치는 구나.

사파이어 2005-02-16 오전 09:50

니네 세 명 가짜 진주들 혼난다. 이 진주가 되다 만 텁텁 모래알들아. 호홍,~

라이카 2005-02-16 오전 09:52

축, 마음의 귀향^^

파란진주 2005-02-17 오전 02:19

난 진짜 진주라니깐. 칫.

기즈베 2005-02-17 오전 10:10

진지모드로..
이 영화 어데서 구할 수 있을까요?? 형님??
물론 자막은 있겠죠?.. 자막없이 형이 보진 않았을테고..

돼지 2005-02-17 오전 11:44

진주들아 싸우지덜 말어 너희하나하나 엮어서 나의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려무나..하나하나 모두다 사랑해주께..싸우지덜 말어

안진주 2005-02-17 오후 18:05

나 진주 안할래...!

참 진주 2005-02-17 오후 20:46

이제 진주는 내가 접수했다. 호홍,~

기즈베야, 진주모드로 대답할께.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절대미모신공으로 지성을 드려야 구할 수 있느니라.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