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 동아리 친구들과 무척 친하게 지내는 편인데
제가 알기에 그 가운데 또렷한 동성애자는 저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 동성애에 대해 나름대로 진지하게 토론도 많이 하고
다들 생각이 열려 있는 것 같아서
저는 몇 주 전 가볍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단 한 명이 집에 내려가 있는 관계로
제 커밍아웃을 듣지 못 했습니다.
별다른 나쁜 결과가 없었고
저는 다시 편안하게 그들과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제 커밍아웃을 듣지 못한 친구가
의외로 호모포비아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군대에 있었을 때 “여성적인 고참”이
성추행 비슷한 짓을 여러 번 했다는 후유증인 듯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한 뒤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희 동아리 사람들끼리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날이 있었습니다.
다들 굉장히 취했고, 특히 평소 무척 인격적이었던
한 선배도 발음이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취했습니다.
그 순간 그 선배가 제가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친구를 지칭하며,
“(그 친구도) 이미 알고 있지?”, “(너의 동성애에 대해) 말해도 되지?”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다지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선배가 그렇게 제게 닦달하듯이 고백을 유도하는 것은 강요에 가깝지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선배는 계속 반복해서 물었고
호기심이 유난히 많은 그 친구는 제게 캐묻듯이 자꾸 재촉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그 질문을 따돌리기 위해 무척 애를 먹는 날이었습니다.
전 며칠 후 그 선배가 멀쩡할 때 진지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고백한 것과 타인이 알리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누군가에게 짐작 가능한 언지를 주는 것은 잘못됐으며
말하라고 윽박지르는 행위는 그릇된 것 같다고 알렸습니다.
그 선배는 처음에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더니
나중에 제게 그 정도의 깜냥도 없으면서 커밍아웃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유일하게 커밍아웃하지 않은 그 친구도
자기 생각으로는 게이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그 친구가 게이인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를 섣불리 게이라고 의심한 뒤 추측내용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나쁜 것 같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또, 설령 그가 게이일지언정 예민한 사안을
함부로 발설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표현했습니다.
그 선배는 무척 자존심이 상한 듯 형식적으로 사과한 뒤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일단 그 선배에게 불쾌했고
제 고백을 쉽사리 정치적으로만 다루려고 하는 태도가
화가 치밉니다. 전 제 삶에서 얘기를 한 것이지
세미나 하기에 좋은 실례를 보이기 위한 정치적인 실천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