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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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news 2005-02-11 2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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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천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과 괴로움도 크지만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차별받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창원씨(37)는 G피플, 게이다. 1년 전에 커밍아웃, 즉 동성애자임을 고백해서 주변 사람들도 그의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그의 삶은 무거운 굴레를 벗어놓은 듯 가벼워졌고 그를 비롯한 게이들을 보는 시선과 상황도 달라졌지만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편견의 벽이 두텁기만 하단다.


그는 국내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유학을 마친 엘리트다. 한국과 일본, 프랑스 등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약혼자도 있다. 물론 약혼자도 탄탄한 전문직의 남자다. 이들은 10년 동안 사랑해온 지순한 커플이다. 게이 후배들은 이들이 약혼식을 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해주었다. 흔히 동성애자들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이거나 수시로 애인을 바꾸는 것으로 알지만 든든한 전문직도 갖고 정상 연인들처럼 사랑을 가꿔나가는 것이 부러워서였단다.


'누가 여자 역할 하냐' 듣기 싫어

"제일 듣기 싫은 질문이 '너네들은 누가 여자 역할을 하냐'는 겁니다. 그렇게 역할을 정해놓은 커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서로 사랑할 뿐이지 역할 분담을 하지 않아요. 다른 것은 비슷한데 성적으로 동성에게 끌린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우리도 서로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는 보통 연인들 같아요."


이창원씨가 스스로 게이임을 느낀 것은 사춘기 때. 물론 어릴 때부터 권총이나 구슬보다는 인형놀이나 소꿉놀이가 더 재미있었고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 더 흥미가 있었지만 자신이 비정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성인잡지의 여자 누드를 보며 흥분했지만 자신은 남자친구에게 더 끌리고 핸섬한 미술 선생님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서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은 경험도 있고, 직장 동료에게 연애편지를 썼다가 그후로 단 한마디도 그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서글픈 추억도 있다. 우연히 그가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보통 남성들에게 받았던 잔인한 모멸감과 차별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였다. 정신병자 혹은 지독한 보균자 정도로 그를 대했단다. 그런 유전자를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기도 했지만 이젠 오히려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감사하게 되었단다.


"우리는 남자이면서도 여자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보통 남자들은 도저히 가질수 없는 섬세함, 배려, 예술성 등이 장점이라면 여자들보다 질투심이나 시기심도 더 심해요. 최근에 패션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게이들이 맹활약하며 재능을 인정받는 이유는 그런 특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요즘은 언론, 금융은 물론 공직에까지 폭넓게 활동하긴 하지만요."


이씨에 따르면 호텔매니저 등 서비스직의 경우 게이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투숙객의 입장에서 수건 한장, 실내온도 등까지 다 신경써서 쾌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 단골 투숙객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도 챙기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무신경한 남자들에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 애인에게 살해당한 베르사체를 비롯, 이브생로랑, 톰 포드 등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대부분 게이인 이유도 비슷하다. 남자이면서도 여성성이 있는 그들은 남자들이 보기에 가장 사랑스러운 옷이 어떤지, 여자들이 입었을 때 얼마나 관능적인지를 알고 환상적인 느낌의 드레스를 만든다. 반면 여자디자이너들은 입어서 편안하고 예뻐보이는 실용적인 옷을 만든다.


게이들은 여성들에게도 인기만발이다. 남성과 여성의 취향과 심리상태를 고루 갖춰 연애상담을 하거나 쇼핑을 하는 데 최고의 파트너이기 때문. 섹스를 요구하지 않고 영원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남자친구여서 전문직 싱글여성들은 일반 남성보다 게이 친구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부모에게 커밍아웃 가장 힘들어"

그가 가장 경멸하면서도 불쌍해하는 이들은 동성애자이면서도 그 사실을 감추고 이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가는 이들. 사회의 편견을 감당하기 힘들어서라고 이해하면서도 주변을 속이고 무엇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동성애 성향을 보였으나 성인이 되어 이성애자로 전환된 경우도 있지만 동성애는 바뀌거나 치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동성애 성향은 부모의 성격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씨는 강조한다.


"게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대부분 엄마가 굉장히 기가 세거나 무서운 반면 아버지는 무력하거나 가족들에게 관심이 없는 분들이더군요. 어린 남자들에게 이상적인 역할모델을 해줄 아버지상이 없으면 강인하면서도 자상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고 무섭고 강한 여자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되어 동성애자가 되는 것 같아요."


이씨는 아들이 여성적 취향을 보이거나 동성애에 관심을 갖는다면 부모가 무조건 야단치고 흥분하기보다 아이에게 남성,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단다. 가족의 이해가 절대적이지만 대부분 게이들은 가장 고백하기 어려운 상대가 부모라고 한다. 이씨 역시 지방에 사는 부모에겐 직접 털어놓고 말하지 못했다.


"편견과 질시에 시달리는 성적 소수자로 살다보니 여성, 장애인 등 마이너리티그룹에 대한 이해가 커집니다. 호주제 폐지는 물론 소수자들의 인권보호에도 눈을 떠서 그들을 위한 일도 하려고 해요. 우리 사회나 구성원 모두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기사제공 : 뉴스메이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