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간 (The Children's Hour, 윌리암 와일러, 1961)


'로마의 휴일', '벤허' 등의 명장 월리암 와일러 감독의 숨겨진 소품 수작.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가 매카시즘이 끝날 때여서 그런가요? 상업영화치고는 꽤 도전적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긴 이때만 해도 '빌리티스의 딸'이라든지 사회주의 성향의 동성애 인권 단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펼 때니까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죠.

당시 미국 사회가 동성애를 어떻게 바라보았나에 대한 훌륭한 텍스트입니다. 못된 여학생의 거짓말로 인해 기숙 학교 두 여선생이 레즈비언 관계라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을 모두 집으로 불러들였고, 급기야 학교는 문을 닫게 되지요. 설상가상으로 막 결혼하기로 되어 있던 선생(오드리 햅번 분)은 자신을 의심하는 남자 친구 때문에 결국 이별을 하게 되고 맙니다. 마지막에 더욱 비극적으로 끝나게 되는데 아이들의 거짓말 때문에 이 사단이 났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레즈비언으로 의심 받은 여선생(셜리 맥클레인 분)이 목을 매달아 자살하게 이르게 되지요.

헌데 공교롭게도 아이들의 거짓말은 진실이었습니다. 여선생 한 명(셜리 맥클레인 분)이 정말로 오드리 햅번을 남몰래 사랑하고,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겁니다. 거짓말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말이 되는 이 기묘한 역설이 영화의 짜임새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어요. 헐리우드 문법에 비교적 충실했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독특한 컷 구사 방식. 헐리우드 문법에서 컷을 나누어 찍을 때는 대개 앵글을 바꾸어서 리듬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윌리엄 와일드는 이 영화에서 거의 같은 각도에서 앵글도 바꾸지 않은 채 그냥 '따고' 들어가더군요. 약간 튀는 점프컷처럼 보이는 게 상당히 많습니다. 배우들의 리액션이 영화의 1/4 정도 모두 뒤틀려 있어요.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더군요.

오드리 햅번의 젊은 날... 여전히 인형처럼 예쁘군요.


P.S
동성애자 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 가장 늦게까지 사회적 모럴과 싸우는 항목 중 하나가 '학교 선생의 동성애'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수업시간에 동성애에 대해 우호적 발언을 했다 해서 파면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 GLSEN 같은 전국 교사 네트워크 조직이 있는데, 이들 중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드문 편입니다. 그만큼 난제겠지요.


200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