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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솔리니, 반역의 영화 시인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영화세계
2007.04.10 / 이병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4월 4일부터 2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회고전'이 열린다. 초기작 <아카토네> <맘마 로마>부터 정치적인 직설법으로 논란이 됐던 <백색 치즈> <종이꽃다발> 등 총 21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회고전에 앞서 파솔리니의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조망한다.

파솔리니의 삶은 욕망하는 기관처럼 다재다능하게 펼쳐져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21편의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었을 뿐 아니라, 26편의 소설, 6권의 시를 쓴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크리스티앙 메츠, 롤랑 바르트와 더불어 영화기호학에 관한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한 이론가였고 화가이기도 했다.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비극적인 죽음으로도 유명하다. 지금 서울에서 파솔리니의 영화를 만나는 것은 그의 폭력적인 삶과 죽음 속에 숨 쉬는 원시적인 열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성경과 신화, 문학의 정전들을 통과하는 급진적인 그의 영화들은 성과 정치적인 알레고리로 읽힌다.

죽음, 삶의 몽타주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죽음을 건너뛸 수는 없다. 파솔리니는 1975년 11월 2일,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 해안에서 동성애 상대자인 17세 소년에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그것은 사망 3주 전에 완성된 <살로, 소돔의 120일>(1975)과 데자뷔를 일으키는 순간이다. ‘성자의 날’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파졸리니의 죽음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잔인한 폭력으로 가득한 알 수 없는 미궁 같았다. 파솔리니의 죽음은 동성애공포증과 좌파혐오증에 빠진 수구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음로론을 대두시킨 일종의 ‘X파일’ 같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생전에 그는 "죽음은 삶의 몽타주를 제공한다. 정말 중요한 순간을 선택하고 배열해 우리의 불안정하고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현재를 정돈된 과거로 만들어준다.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삶은 우리가 무엇인지 말해준다"고 말했었다.

파솔리니는 <수난>이라는 6개의 연작시를 통해 죽음을 앞둔 예수의 수난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 바 있다. 이는 마치 그의 인생이 끊임없는 수난과 열정의 반복이었음을 상기시킨다. 파솔리니의 수많은 작품과 인생역정은 생명력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이야기의 원형을 찾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순례자의 그것과 유사하다. 정치적인 수난과 종교적인 열정으로 고난당한 예수의 성스러운 최후야말로 살아 꿈틀거리는 이야기의 정수였으며 그의 삶 자체였다. 그가 그러한 주제를 자신의 영화주제로 가져온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1964년 봄 촬영이 시작된 <마태복음 Il>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파솔리니의 어머니 수산나가 예수의 어머니를 연기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치 11년 뒤 아들과 자신에게 닥칠 비극을 예견이라도 하듯, 수산나는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슬픔으로 몸부림치는 마리아를 연기했다. 이런 맥락에서 <마태복음 Il>을 다시 보면 폭력적이고도 성스러운 죽음을 통과하는 예수의 수난과 열정이 그에게 전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마태복음 Il>을 통해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혁명가 예수를 만난다고 한다. 하지만 파솔리니는 선동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동정 어린 감정의 동일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성경 구절을 그대로 옮겨오는 방식의 대사와 건조한 사막의 광야를 가로지는 무표정한 대기들을 그저 바라보게 하고, 의도적으로 중립적인 높이의 아이레벨의 카메라로 예수의 세계를 따라갈 뿐이다.

성과 정치의 이중 인화

파솔리니는 관객으로 하여금 논리적인 내러티브를 수동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관습적인 영화에 반대했다. 내러티브의 논리적 기능에서 자유로운 '시적인 영화'는 내러티브보다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고 익숙해진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성할 것을 주창했다. 파솔리니는 이러한 전복적 힘을 가진 시적인 영화를 강조했다.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파솔리니는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가학적인 관찰자의 눈을 통해 학대받는 자의 얼굴과 몸을 깊이감이 다른 렌즈로 번갈아 촬영했다. 잘 발효된 빵처럼 사물들을 팽창시키는 렌즈로 줌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역광을 사용해 고의로 눈부신 빛을 만들어낸다. 들고 찍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보여주거나 이동촬영을 많이 하고 표현효과를 위해 일부러 잘못된 몽타주를 연출하기도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이 모든 촬영 테크닉은 규칙에 반대하는 파솔리니의 무정부적이며 유희적인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기존의 질서를 파괴해가는 파솔리니의 촬영 테크닉은 후대 영화인들에게 또 하나의 촬영규범으로 자리 잡아갔다. 수많은 감독들이 그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것에 머물 뿐 폭력적인 질서에 반하는 파솔리니의 정신 자체는 아니었다. 그의 영화는 전후 정치적 분위기와 맞물려 이탈리아의 현실을 거부하는 수단이 됐다. 마르크시스트였던 파솔리니는 마르크스주의의 원리인 '부정의 변증법'을 통해 급진적 태도를 보여줬다. 파솔리니는 단순히 종교, 섹스, 정치 사이의 변증법적인 모순을 내면화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작품 속에는 정치적인 알레고리와 해방적인 태도가 집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파솔리니의 첫 장편 <아카토네>는 수영복을 입은 남자들의 육체가 맑은 햇살을 받아 단아하게 강가를 거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치 플라톤의 <향연>을 옮겨놓은 듯 남자들의 육체가 빈민가의 어둠을 대신해 태양 아래 빛난다. 파솔리니의 페르소나로 십여 편의 영화에 반복 등장하는 프랑코 치티는 서슴없이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시도하거나, 다른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흐느끼는 요상한 애교로 화면을 향해 신호를 보낸다. 창녀의 기둥서방으로 한밤의 폭력을 꾸미고, 백일몽처럼 스스로의 죽음을 예시하듯 장례식 행렬과 마주쳐 걸어간다. 이탈리아 코미디 스타 토토가 등장하는 <매와 참새>(1965)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버디가 건설 중인 도로와 건축물을 지나 황량한 길을 따라가며, 타임머신처럼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말하는 매가 동행하며 들려주는 ‘매와 참새’ 우화를 통해 강자와 약자를 사유하고, 13세기 성 프란체스코와 문답을 나누며, 농가의 사유지를 침입해 곤경에 빠지거나 집시들을 만나 아기의 탄생을 목격하고, 그 길의 끝자락에서 쿠바 혁명의 현장을 마주한다.

파솔리니는 이 로드무비를 통해 시간을 초월한 사건의 연대기를 보여주고 동시대 혁명과 맞닿은 단면들을 이탈리아의 현재 위에 포개어놓는다. 더 나아가 베르톨루치, 고다르 등과 함께 연출한 옴니버스 ‘사랑과 분노’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인 <종이꽃다발>에서는 그의 영원한 소년 전령사 니네토 다볼리가 커다란 종이꽃을 들고 로마 거리를 배회한다. 소년은 공사 중이거나 꽉 막힌 차들로 즐비한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붉은 꽃을 들고 기쁨에 가득 찬 성스러운 표정으로 바람에 실려 날아가듯이 몽환적인 표정으로 거리를 달린다. 그 위로 2차 세계대전, 달에서 본 지구, UN 국제회의, 거리시위 등의 뉴스릴이 이중 인화되면서, 꽃은 든 소년의 달리기는 마치 정치적인 스트라이킹을 하거나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하는 해방적인 몸짓으로 완성된다. 도시 로마를 지나 파솔리니의 영화적 공간은 신화적인 열린 세계로 확장된다. 그는 그리스의 신화적인 서사 위에 자신의 기억과 무의식을 투사한다.

아버지와 파시즘에 대한 분노

파솔리니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의 품 같은 프리울리의 대지를 담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고향이며, 시적 세계의 원형이었던 어머니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파솔리니는 자신이 "어머니의 배 속에서 긴 여정을 보냈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일관된 사랑을 자전적인 시에서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도 그는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해에 태어난다. 파시스트 독재정권은 그 어떤 대안도 아니었으며 혼란에 사로잡힌 정부와 지도자들의 무능한 선택이었다. 그런 파시스트의 권위와 허세로 가득했던 전형적인 현역 군인장교인 아버지와 농부의 딸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의 결혼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으며, 그는 아버지와 파시즘에 대한 분노와 모순 속에서 성장했다.

<외디푸스 왕>(1967)은 마치 어린 시절 발생한 정신적 외상과 편집증적인 모성애의 추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모와의 관계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분석적인 틀로 신화적인 서사의 알레고리를 통해 구현한 셈이다. 현재적인 감독의 시선을 투사하듯, 영화는 현대의 시제로 아이가 바라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에서 시작해 고대의 서사로 들어간다. 그는 어머니를 향한 본능적인 충동과 아버지와의 비교관계에서 드러나는 애증의 실체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니라, 아버지를 가해자로 몰고, 자신과 어머니를 피해자로 생각하는 일이었다. 어머니를 가정적 비극의 희생자로 보며, 자신 역시 어머니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며 동일시했다. 따라서 결말도 다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실명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아 상징적인 비극성이 극대화되면서 끝을 맺는다. 그와는 달리 파솔리니는 구원의 틈을 열어놓는다. 두 눈을 잃은 채 그대로 현재로 다시 돌아와 도시의 거리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주인공 옆에는 그와 동행하는 뮤즈 같은 소년이 함께한다. 단순한 희생자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과도 같다.

더 나아가 <메데아>(1970)에서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마리아 칼라스라는 페르소나를 통해 비극적인 폭력과 잠재된 광기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메데아는 변절한 남편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응수하는 마녀다. 남편의 새 신부에게 마법에 걸린 옷을 선물하여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죽게 만들고, 남편이 분신처럼 애지중지하는 두 아들마저 모두 죽여버리고 만다. 버림받았음에도 침묵하던 메데아는 폭발하는 분노를 한 번에 쏟아내며 절규한다.

새로운 신화

<외디푸스 왕>과 <메데아>는 그리스가 아닌 상상의 공간을 찾아 지형과 지표를 알 수 없는 광야로 이동한다. 중세의 문학적인 정전을 각색한 욕망의 3부작 <데카메론>(1971), <켄터베리 이야기>(1971), <천일야화>(1974)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솔리니는 서구의 남성 중심적인 이데올로기 안에서 작동하던 신화와 문학의 내러티브적 원형들을 원시적인 열정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탐구한다. 그는 영화의 풍경을 재발견하기 위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인도, 그리고 제3세계의 어느 곳으로 이동한다. 예컨대 <메데아>의 공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일본의 가부키극의 연주와 흥얼거리는 노래들, 티베트 라마 불교의 종교적인 제의들이 가득한 소음들과 이접되면서 마력이 가득한 상상의 신화로 새롭게 형상화된다. 서방과 동방의 시공간이 맞부딪쳐 현실을 초월하는 제3의 공간감과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광야는 그런 관점들이 모든 이데올로기와 욕망이 협상하는 열린 공간이며, 치유의 공간이다.

이렇게 파솔리니의 영화는 멈춰선 시간의 지표를 떠나 동시대로 미끄러지듯 부유하며 우리에게 날아 들어온다. 고대와 동시대, 서구와 비서구가 혼종적으로 녹아 있는 기이한 영화적인 순간들을 허락하며, 새로운 상상을 통해 신화를 구현한다. 파솔리니는 파시즘과 전후 정치적인 혼돈을 수난과 열정으로 통과하면서 68년의 부르주아적인 혁명의 잔상들을 냉소적으로 응시한다.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 동시대적인 언어로 바꿔놓는 그의 작품들은 영화를 통한 새로운 신화였다. 파솔리니의 영화들을 만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번역된 내러티브의 원형들이 어떻게 영화적인 상상을 만들어내는지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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