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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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9-10 10:49:56
+2 1623


앎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머리도 식힐 겸, 뭔가 자극을 받을까 시나리오를 쓰다가 그 동안 한 쪽에 계속 꿍쳐 두었던 영화 한 편을 보았더랬습니다.
FOR A LOST SOLDIER(네덜란드, 1992)

예전에 96년도쯤, 고색창연하고도 유치뽕짝스러운 중편 소설 하나를 습작했었습니다. 제목도 유치해서 군인들의 인식표를 염두에 둔 '은빛 휘파람'. 군인과 소년의 사랑 이야기였더랬지요. 지금은 원본 자체가 없어진 소설입니다. 뭐 잘 쓴 게 아니니 잃어버려도 그닥 아쉬운 건 없지만 이럴 때 증빙서류처럼 나 스스로 내 앞에 제출하고픈 욕망이 이는군요.

오늘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제 소설도 함께 떠올렸다면 믿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랬습니다. 이상하게도 영화의 감정 라인과 제가 쓴 습작의 감정 라인이, 그것도 소년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어가는 라인이 거의 똑같았습니다.

제작 당해년도에 튜린 게이-레즈비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했지만 이 영화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허점이 수두룩한 편이지요.

헌데도 영화 보는 내내 간만에 심장을 졸이며 봤습니다. 필경 제 마음 속에 은연히 가라앉아 있는 페도필리아는 부정 못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세계 2차 세계 대전의 끝물 풍경을 다루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소년과 캐나다 군인의 사랑. 너절하게 은유를 사용하지 않고, 게이 관객을 노리는 직설적 표현들로 처음부터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변방 풍경을 다루는 영화들이 거개가 다 그렇듯 이 영화도 군인이 떠나면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이미 마흔 줄에 접은 무용 선생은 당시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맨 마지막 컷, 바랜 흑백 사진을 몇 천 배 확대해서 얻은 인식표의 군번은 이 영화가 게이 멜러로서 가진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지요.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소년애를 소년의 관점에서 견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법 도발적이지요? 허나 소년의 섹슈얼리티를 관용하는 농부 목사만큼이나 이 영화의 관용도는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습니다.

더 늙기 전에 이런 영화도 찍어봐야 할 텐데요.

2004-07-14

모던보이 2004-09-10 오후 12:28


Space Cowboy - 06:21, 1994

애시드 재즈 요즘 자주 듣는데 도회적 정취가 물씬하네요.
요즘 한국에서 뜨는 캐나다 교포 남매 보컬의 클래지콰이도 자주 듣고 지금 들리는 곡의 자미로콰이도 자주 듣고 있습니다.

라이카 2004-09-10 오후 20:46

초등 학교 때였나 어렴풋이 소년과 군인과의 '우정'을 그린 소설 작품이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다른 건 거의 기억이 없는 백지 상태인데 그 소설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로 봐선
이미 그 때부터 정체성이 발현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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