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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담] "여사제는 불법인데…" "그건 바티칸의 법일뿐"

[조선일보 2005-06-20 03:05]    

"사제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군림않고 동행하는 사제 되고파"
세계여성학대회 참가위해 방한



[조선일보 김윤덕, 조인원 기자]

사제로 서품될 4명의 여성 중 한 사람인 빅토리아 루(59) 새너제이주립대 교수가 19일 한국에 왔다. 20일 서울에서 개막하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루 교수를 그의 절친한 친구인 현경 미국 유니언신학대 교수가 만났다. 이들은 21일 오후 1시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여성운동과 종교’라는 주제로 세션을 갖는다.


현경=다음달 가톨릭의 여성사제로 서품받게 된 것을 축하한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그날 서품식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빅토리아 루=매우 전통적인 가톨릭 미사 형식을 따르지만, 아주 독창적인 풍경이 연출될 것이다. 일단 강에 배를 띄우고 성례전을 집전한다. 옛날에는 사제들이 주교 앞에 엎드려 서약을 했지만, 우리는 주교들 대신 하늘을 향해 엎드린다. 또 하나, 우리는 하느님을 ‘He’나 ‘Father’로 부르지 않는다.


현=로마 교황청이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예수가 12제자를 모두 남자로 삼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자들은 예수와 육체적으로 닮지 않았다”고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루=로마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성 프락세디스 성당 바닥에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 313년에 제작된 벽화로 거기엔 띠아도라라는 이름의 여성 주교와 3명의 여성 사제가 그려져 있다. 여자들이 사제 서품에서 배제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이후부터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가톨릭 역사에 여성 사제는 없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현=지난 2002년에는 서품을 받은 7명의 여성 사제가 2주일도 채 되지 않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99% 아닌가.


루=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 7명의 여성들을 사제로 안수한 남자 주교들은 로마 가톨릭이 정식으로 인정한 주교이므로 그 서품은 합법이다. 바티칸에서는 물론 불법이라고 할 것이다. 바티칸 법 1024조에 남자만이 안수를 받을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티칸의 법이지, 하느님의 법은 아니다.


현=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루=세계의 평화를 위해 앞장섰던 것, 그리고 아주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종교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린 것이 그의 가장 큰 공로다. 늙어가면서 자신의 고통을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도 인상적이다.


현=그의 뒤를 이어 베네딕토 16세가 즉위했다. 그는 2002년 ‘다뉴브 7명의 여성 사제’들을 파문한 장본인이었다.


루=에콰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에게 일어났던 기적이 베네딕토 교황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로메로는 아주 보수적인 인물이었지만 가난과 학대로 고통받는 에콰도르의 민중들을 보고 정의로운 투사로 거듭났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아무리 보수주의자라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미국 가톨릭 신자의 67%가 여성 사제 임명에 찬성했다. 전체 가톨릭 사제의 숫자가 40만명으로 정체된 상태에서 평신도들은 여성 사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현=당신의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루=독실한 가톨릭 집안 8남매 중 맏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일생을 바칠 곳이 아니었다. 대신 여성운동과 연극운동에 뛰어들었다. 차별받고 고통받는 여성들,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고 연극을 만드는 것이 곧 나의 신앙이었다.


현=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뭔가?


루=1980년대 초 니카라과를 여행하고 나서다. 혁명 직후의 니카라과에서 해방신학과 가톨릭 기본 공동체를 만난 뒤 내 인생이 달라졌다. 그곳에선 깨끗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고, 전등을 다는 것 하나까지 모두 기도였다. 이 땅에 정의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현=학자로 남아있지 않고 사제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루=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어서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주노동자와 동성애자, 그리고 식물인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관심이 많다. 내가 모델로 삼고 있는 사제는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신부들이다. 평신도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동행하는 사제가 되고 싶다.


현=가톨릭에서 동성애는 용서할 수 없는 죄로 분류된다. 당신이 동성애를 비롯한 사제의 결혼 허용 등 성(性)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루=가톨릭 교회는 몸과 성을 비밀스러운 광에 가둬놨다. 그러나 한 번도 섹스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제가 어떻게 결혼 상담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모르면서 어떻게 신도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가. 인간에겐 아주 다양한 종류의 섹슈얼리티가 존재한다. 이성애(異性愛)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현=“여자가 가톨릭 교회 안에서 남자와 평등해지려는 것은 흑인이 KKK단에서 백인과 평등해지려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세기의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는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당신은 교회에 남아 투쟁할 생각인 것 같다.


루=가톨릭을 바꾸고 그 안에서 정의를 함께 누리려면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나의 몸으로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이번 안수도 그와 맥을 같이한다.



(글=김윤덕기자 [ sion.chosun.com])

(사진=조인원기자 [ join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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