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슈슈의 모든 것 (リリィ シュシュのすべて, 2001)
이와이 슌지의 조명에 대한 이해와 색감은 타고난 듯하다. 한국, 일본을 통털어 그만큼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없는 듯. 늘 들고찍기에다, 최소 3개의 다른 앵글로 나눠 찍은 다음 속도감 있게 편집을 하는 감각도 뛰어나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스크립트가 엉망인 경우가 많다. 이전 컷에서는 앞에 있던 물건이 다음 컷에서는 뒤에 있는 식이다. 들고찍으면서 각을 달리할 때 생기는 현상이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편집 리듬이 유려하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이른바 '이와이 월드'라 불리워지는 이와이 감독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집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난 여전히 그에게 동의하지 못한다. 성숙하지 못한 소녀 취향의 눈으로 세계를 보려는,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은 이젠 지겹다 못해 영화 보는 일이 무척 고단한 노역처럼 느껴진다. 비록 이 영화가 '언두'에서 '하나와 앨리스' 사이에서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해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이와이 슌지의 장점은 만화적 이미지를 두 겹, 세 겹 접어서 디테일을 풍성하게 하는 데 있지만 난 그가 가공해낸 이와이 월드가 지리멸렬한 작금의 일본 영화 주류에 대한 안티테제로 기능할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탐미적 영상으로 실재계를 소거시키며, 만성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의 현재 젊은이들을 여전히 소비 주체로 호출하고 있는 다분히 퇴행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릴리 슈슈의 음악이 이지메가 가득한 악위적 세계를 구원하지 못하듯, 그가 열렬히 바라는 순수함에 집착은 때론 현실을 직시하는 눈을 멀게 만들기도 한다.
(근데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닌데, 내가 이와이 슌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것은 그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고 상정하며 영화를 보기 때문일 것. 늘 감정과잉 상태로 조금 더 들어가거나, 조금 더 빠지거나, 조금 더 왼쪽 오른쪽으로 감정을 잡아 늘여빼는 카메라 워킹을 그의 영화 대부분에 도배하고 있는 매너리즘. 가만히 그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양푼에 넣고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는 듯한 느낌.
영화를 못 찍고 있으면 이렇게 독설만 늘어가는 모양이다. 이러다 이와이 팬들에게 몰매 맞겠군.)
2004-12-10
P.S
국내에는 6월 23일, 며칠 뒤 개봉 됩니다. 이와이 슌지 영화 중 제일 낫다고 하는 영화예요. 이와이 팬들은 한 번 보심이. 개인적으론 '언두'에서 '하나와 앨리스'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스왈로테일 버터플라이'를 그나마 가장 좋게 봤다는.
All About Lily Chou Chou O.S.T
영화 같이 보실분...ㅋㅋ